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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1948년 5월14일(5·10 남한 단독 총선거 직후) 일방 斷電, 1950년 6월25일 불법 南侵'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10
조회수
1,604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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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1948년 5월14일(5·10 남한 단독 총선거 직후) 일방 斷電, 1950년 6월25일 불법 南侵'

조선일보| 기사입력 2013-07-10 03:01 기사원문
1947년에서 1950년 사이 조선전업 신기주 급전과장이 쓴 업무 일지.
[본지, 韓電 전신 조선전업 과장이 쓴 1947년~50년 업무일지 입수]

- 1948년 5월14일 낮 12시

'送電 차단… 숙직, 美軍 대기"

- 1950년 6월25일 철야근무

'北, 새벽 5시~7시 越南 개시' 26~28일은 날짜만 쓴 채 공백

- 1950년 11월3일 16시 30분

'당인리서 영등포·오류동까지 66㎸ 서울 전력공급재개 OK'


북한의 5·14 대남 단전(斷電)과 6·25 남침 등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 국내 전력 상황을 담은 사료(史料)가 발견됐다. 사료에는 당시 전력 상황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도 생생히 담겨 있다. 사료에는 6·25에 대해서 북한의 남침과 남한 단독 선거 당시 북한의 강제 단전이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돼 있다. 기록의 주인공은 당시 국내 전력 수급 담당 실무자였던 신기조(辛基祚·90)씨였다.

 
①1948년 5·10 총선거가 열린 지 4일 뒤인 5월 14일 북한이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남한으로 내려보내던 전기를 차단한 상황이 적혀 있는 업무 일지. 페이지 왼쪽 상단에는 뒤에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五·一四 斷電(5·14 단전) 北韓(북한)에서 斷電(단전) 1948.5.14.12:00’이라고 적은 쪽지가 붙어 있다. ②6·25전쟁 발발 당일의 일지. 오후에 출근해 철야근무한 상황이 적혀 있다. 26일부터 28일까지는 날짜만 적혀 있고, 그 이후엔 아예 일지가 작성되지도 않았다. ③1950년 11월 3일 일지. 서울 당인리발전소에서 영등포와 오류동 등으로 전력 공급을 재개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명원 기자
한국전력거래소는 9일 '최근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전력 운영 상황 등을 기록한 업무 일지를 중앙전력관제센터 문서창고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내 전력 수급 담당 실무자였던 신기조 급전과장은 1970년대 한국전력 부사장과 한국원자력기술 수석부사장을 지내고 은퇴한 전력 업계 원로다. 조선전업은 1943년 조선수력·조선송전·조선전력·한강수력 등을 통합해 출범한 한국전력의 전신(前身)이다.

신 과장이 작성한 1948년 5월 14일 일지에는 '以北(이북)에서 各(각) 送電線(송전선) 遮斷(차단)함. 円滑(원활·圓滑의 일본식 한자 표기)한 解決(해결)이 있기 前(전)까지는 送電不能(송전불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1948년 5·10 총선거가 열린 직후 북한이 예고 없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은 상황을 기록한 것. 당시 발전설비 용량에서 38선 이북 비중은 87.5%였다. 북한이 갑자기 전기를 끊자 남한 내 공장 가동률은 10~20%로 떨어졌다. 모내기 시기와 겹치며 그해 55만석가량 수확이 감소했고, 서울과 부산의 전차 운행도 대폭 축소되는 등 남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국내 전력 당국은 영월화력발전소를 긴급 복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지에는 단전이 일어나자 이날 신 과장이 숙직했고, 미 군정(軍政) 관계자들도 밤늦게까지 대기한 상황이 나타난다. 일지에 '辛宿直(신숙직)함. Mr.Solvey, Mr.Moore 23H 00 退去(퇴거)'라고 적혀 있다. 일지가 적힌 페이지 상단에는 뒤에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五·一四 斷電(오·일사 단전) 北韓(북한)에서 斷電(단전) 1948.5.14.12:00'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6·25 상황 기록도 의미가 크다. 1950년 6월 25일 일지. '早曉(조효·이른 새벽) 05:00~07:00 北韓軍(북한군) 不法(불법) 越南(월남) 開始(개시) 14:30 出勤(출근) 徹夜勤務(철야근무)'라 적혀 있다. 이미 민간인들도 전쟁 당일 북한이 불법 남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또 일요일이었지만 북한 남침 때문에 조선전업 직원들이 황급히 출근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쟁 때문에 업무가 중단되면서 26일부터 28일까지는 날짜만 적힌 채 아무런 내용이 없고, 그 이후엔 아예 일지가 작성되지 않았다.

일지는 1950년 10월 27일 다시 시작된다. 9·28 서울 수복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27일 일지 내용은 '治安局情報(치안국정보) 수사과 中央分室(중앙분실)에서 不拘束取調(불구속취조)'. 경찰의 조사가 업무 재개 전에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회사는 10월 30일 정상 업무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6·25 발발, 단전 이후 언제 서울지역 전력 공급이 재개된 것일까. 이 기록에 따르면 11월 3일로 밝혀졌다. 당일 일지엔 '16:30 唐人里(당인리)에서 永登浦(영등포)-梧柳洞(오류동)-大和洞(대화동) 66㎸(킬로볼트) Charge(전력공급) O.K'라고 적혀 있다. 많은 전력 설비가 파괴된 상황에서 지금도 서울 마포구 당인동 같은 자리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당인리발전소가 당시에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1951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60% 이상 전력 설비가 파괴됐다.

전력거래소는 본사 내에 공간을 마련하고 이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다. 전력거래소 남호기 이사장은 '국내 전력사(電力史)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담은 자료'라며 '전력이 국력이라는 메시지를 잘 알릴 수 있도록 본사에 이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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