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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와 소신 사이 '우리 뇌는 눈치 9단'

작성자
한민
작성일
2013.08.12
조회수
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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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을 지키기란 누구나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는 반면, 어떤 이들은 권력이나 다수의 의견에 쉽게 무릎을 꿇는다. 이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신경과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선 이를 '컨포미티(순응, 동조ㆍconformity)'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 사회의 적잖은 구성원들이 컨포미티를 따른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이나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좀 더 쉽게 생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리더들은 압력과 반대를 무릅쓰고 컨포미티를 거부했다. 그들의 소신이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발전시켰다. 인간과 동물이 구별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이 컨포미티를 주목하기 시작한 건 8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콩이 가득 들어 있는 투명한 병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콩이 대략 몇 개인지 짐작해보라고 했다. 각자 생각하는 콩의 개수를 적게 한 다음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토론을 시켰다. 토론 후 다시 각자 적어 낸 콩의 개수는 대부분 처음과 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원래 자기 생각과 달리 토론 중에 다수가 합의한 개수와 근사한 숫자로 바꿔 적은 것이다. 토론 횟수가 늘수록 처음 적어낸 숫자와 나중에 다시 써낸 숫자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 때 토론에서 합의한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은 이상 콩이 몇 개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토론에서 나온 숫자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가까운 숫자로 바꿨다. 원래 자기 생각이 정답일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대세를 따랐다는 얘기다.

물론 토론 과정에서 자기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더 논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생각을 바꿨을 수 있다. 하지만 적잖은 신경과학 실험들은 인간의 의사 결정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이뤄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의 또 다른 연구팀이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모니터로 각 당의 후보자와 그 후보자가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을 함께 보여주면서 지지자들의 뇌를 영상 장비로 찍어봤다. 그 결과 모니터에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후보자와 공약이 나타날 땐 기분이 좋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반대로 지지하지 않는 당의 후보자와 공약이 나올 땐 기분이 나쁠 때 반응하는 영역이 활성화했다.

연구팀은 이번에는 같은 공약을 당 이름만 바꿔 보여주면서 지지자들의 뇌를 촬영해봤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공화당 후보자가 내건 공약을 민주당이라고 표시해 보여주는 식이다. 그랬더니 민주당 지지자들의 뇌에선 대부분 기분이 좋을 때 반응하는 부위가 활성화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반대로 적용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보통 공약의 필요성이나 당론의 정당성 등에 공감하기 때문에 자신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실험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뇌에 선호하는 정당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KAIST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는 '사람들은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 처음부터 논리적, 합리적으로 따져 결론을 내리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편한 쪽으로 이미 결정을 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는 게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휴먼 디시전 메이킹 가설''이라며 '차근차근 따져보기보다 빨리 결정하고 판단하는 게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 같은 방향으로 사회에 적응해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콩 실험에서도 토론이 끝나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세에 따라야겠다고 결심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컨포미티냐 소신이냐를 결정해야 할 때 뇌는 이미 방향을 정해뒀을지 모른다. 그 방향은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이나 환경 등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을 터다. 일단 사람들은 뇌가 정해둔 방향에 따라 행동하고,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논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올 초 영국 연구팀이 내놓은 실험 결과를 보면 컨포미티를 따르려는 행동은 영장류에서도 나타난다. 연구팀은 긴꼬리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고 껍질을 쉽게 까서 금세 먹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훈련시켰다. 이 방법을 연습한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보다 바나나를 훨씬 잘 먹을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이 원숭이를 그런 연습을 해본 적 없는 원숭이 집단에 넣고 함께 바나나를 먹게 해봤다. 그 결과 원숭이는 기껏 훈련 받은 효율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비효율적으로 바나나를 까는 다른 원숭이들의 행동을 따라 했다. 집단 내에서 공격받지 않고 좀더 편하게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인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했다.

인간 사회에서 컨포미티는 다수의 의견이나 권력에 순응하는 행동을 뜻한다. 컨포미티와 소신이 일치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컨포미티가 비논?岵隔킬?불합리하다고 판단될 때 사람들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컨포미티를 거스르려면 안팎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럴 때 그냥 컨포미티에 따르는 사람과 그래도 소신을 택하는 사람의 뇌가 각각 어떻게 달리 작용하는지는 최근 신경과학 분야의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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