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창조경제, 인문학에 달렸다
| 기사입력 2013-06-19 00:12 | 최종수정 2013-06-19 06:45
윤형두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인간의 욕구는 물론 기호와 감정,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까지 반영한 상품이 주목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기술 중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상품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 좋은 예가 스티브 잡스가 이끌었던 애플사의 제품 탄생 과정과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열망하는가에 대한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함께 반영된 제품만이 시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국정 과제로 창조경제를 채택했다. 창조경제란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에 접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체제라고 한다. 많은 학자는 창조경제 실현은 인문학적 사고에 기반한 창의성과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미래의 국가 성장을 주도하는 전략적 추진 동력의 밑바닥에는 인문학적 토대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민에게 인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문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창조경제 조성에 어떻게 발휘되고 반영되느냐는 점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과학기술처럼 공식과 수치에 의해 발명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적 발상의 발현을 위해서는 당연히 인문학 부흥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다면 인문학 부흥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도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책 읽기다. 책이 사람들이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배우고 반성할 수 있는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의 장이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책이야말로 시대를 기록하고 공유하며 후대에 계승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책 읽기는 해마다 줄어들고 이로 인한 출판업계의 불황과 인문학의 몰락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협회가 발표한 2012 출판통계에 따르면 출판 종수는 전년 대비 10%, 발행 부수는 20%나 감소했으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전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서적 구입비 지출은 월 평균 1만9026원으로 전년 대비 7.5% 감소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독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포착된다는 점이다.
오는 19일부터 열리는 '2013 서울국제도서전'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독서하는 사회 분위기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19회째를 맞이한 서울국제도서전은 전 세계 26개국 500여 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국제행사로 매년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도 책 읽는 도시를 선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군포시가 책 읽는 도시 만들기를 선포하고 SK건설이 독서경영을 실시하는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현 시점에서 출판업계의 부활, 더 나아가 인문학 부흥을 위한 노력이 더 이상 관련 협회, 지역 그리고 기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인문학 부흥을 위한 노력은 결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며 그 의미와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 결과는 미미하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국민이 책으로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서 생태계의 부활이 인문학 부흥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 때 비로소 창조경제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윤형두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