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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의 나무들 모여 협동조합의 수풀로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6.26
조회수
2,830
첨부파일
-
협동의 나무들 모여 협동조합의 수풀로
| 기사입력 2013-06-25 19:56
[한겨레]
[사회적 경제] 은평의 협동 생태계
서울의 은평지역은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잘 뿌리내린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캐나다나 유럽처럼 신협이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이끄는 아름다운 사례가 국내에도 등장한 것이다.
요즘 서울 은평두레생협의 선영숙 상무는 두 다리 쭉 뻗고 잠잔다.
“지난달 28일 응암역 입구에 우리 생협의 새 매장을 열었어요. 2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잘못되면 어떡하나, 한없이 가슴을 졸였어요. 처음 개점하고는 잠도 제대로 못 잤죠. 그런데 웬걸, 첫달부터 흑자 나게 생겼습니다.”
이달 17일과 19일 은평두레생협 응암역점을 두차례 방문했다. 그때마다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매장에 활기가 넘쳤다. 벌써 하루 250만~300만원의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한달도 안 되는 사이에 조합원 가입이 400건 가까이 들어왔다. 매일 10명씩 꾸준히 조합원이 불어난다. “참 재미납니다. 반응이 아주 좋아요. 생협 하면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힌 것 같아요. 첫해부터 흑자 낸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월 8000만원 매출을 올려야 하는데, 여름철 비수기를 감안하더라도 거뜬히 해낼 것 같습니다.”
신협, 생협, 의료생협이
삼두마차 구실을 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사업체와 단체들은
구산역 근처 골목 주변에 모여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은평두레생협의 새 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구산역 입구에는 또하나의 은평구 대표 협동조합으로 자리잡은 살림의료생협이 있다. 지난해 8월 살림의원을 개원하자마자 주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원장의 ‘사려 깊은 진료’에 푹 빠진 조합원이 벌써 1150명을 넘는다. 안정적인 흑자기조에 올라서진 못했지만, 살림의원의 살림도 제법 괜찮은 편이다. 7월에는 조합원들이 모임을 가지면서 운동처방 등의 건강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간도 개설한다.
“새 공간의 이름을 ‘우리마을 건강활력소 다짐’이라고 지었어요. ‘다짐’은 우리말의 ‘다’(모두)와 영어 ‘짐’(gym)을 붙인 거죠. 마을사람 모두 이용하는 체육관이란 뜻이죠. 은평 주민들의 진정한 건강활력소가 될 거예요.” 유여원 살림의료생협 사무국장의 말이다.
나이 70줄의 김상백 은평신협 이사장은 은평두레생협과 살림의료생협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은평두레생협이 새 매장을 내고 살림의료생협이 큰 어려움 없이 살림을 꾸리기까지 은평신협에서 보태준 ‘협동’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새 매장 내는 데 2억1000만원이 들었습니다. 은평두레생협에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내부유보금으로 절반을 충당했습니다. 생협연합회에서 일부 융자받고 모자라는 자금 7500만원 전액을 은평신협에서 대출받았습니다. 전세보증금 담보대출 형식인데, 연 2%의 초저금리 조건이에요. 신협에서 정말 큰 힘을 보태주었죠.”(선영숙 상무)
김 이사장의 은평신협은 지난해 살림의원 문을 열 때도 저금리 조건으로 5000만원의 전세보증금 담보대출을 제공했다. 다음달 살림의원에서 ‘다짐’ 공간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비용으로 또 5000만원의 신용대출(자립예탁대월)을 공급한다. 은평신협은 이사회의 특별결의 절차를 거쳐 동료 협동조합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캐나다나 유럽처럼 신협이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이끄는 아름다운 사례가 국내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이사장은 “같은 지역에 있는 협동조합끼리 서로 협동하는 것은 협동조합운동의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생협 매장을 이용하잖아요. 제가 얼마 전에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의료생협 덕을 단단히 봤습니다. 이웃에서 서로 잘 아니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찾아야죠.” 은평신협의 민병규 상무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움 주는 게 아니라, 우리도 다른 협동조합 덕을 단단히 본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살림의료생협은 출자금 조성부터 병원 입출금까지 모두 우리 신협 계좌를 이용해요. 은평두레생협도 직접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모두 우리 계좌로 거래하죠. 얼마 전에는 은평지역의 에너지협동조합에서도 우리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권유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찾아왔어요. 다른 협동조합들이 신협과 거래해야 한다고 힘을 써준 거죠.”
서울의 은평지역은 일찌감치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마을에 잘 뿌리내린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신협, 생협, 의료생협이 가장 힘차게 끌어가는 삼두마차 구실을 하고 있다. 은평의 세 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전국 최초로 지역단위 사회적경제협의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최연장자인 김상백 은평신협 이사장이 줄곧 대표를 맡고 있다. 사회적경제협의회의 은평 모델은 서울 성북지역 등지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신협이 이웃 협동조합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사례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세 협동조합이 은평의 사회적 경제를 대표하는 규모있는 사업체라면, 서울형 사회적 기업인 ‘마을엔’과 공동육아협동조합인 ‘소리나는어린이집’은 은평의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산실 구실을 한다. 여러 사회적 경제 사업체와 단체들은 구산역 근처의 골목 주변에 한데 모여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자가발전해 나가고 있다.
마을엔의 역사는 12년 전인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조동꿈나무도서관을 자원봉사로 운영하던 ‘꿈지기’라는 학부모단체의 초창기 회원 7명이 이끌고 있다.
“10년 가까이 도서관 운영을 같이 하던 엄마들이 2009년에 ‘마을엔 카페’를 열었습니다. 200만원부터 1200만원까지 형편껏 출자했지요. 바느질, 도자기, 목공 공방과 뜨개 모임을 운영하고 논어 강독도 하고 영화 상영도 해요. 마을 여성들의 일공동체이자 교육공동체예요.” 마을엔에서 공방 운영을 맡은 박상미씨는 “회원들이 각자 재능이 있는 사업을 벌이고 운영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마을엔카페에서 골목 안쪽으로 수십 미터 들어가면 ‘작공’이라고 써붙인 작은 청소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작공’이란 단어는 작심하고 공부하는 곳, 작은 공동체, 작은 공연장 등 여러 뜻을 담고 있다. “청소년들이 머무는 공간이에요. 꿈나무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공원에서 담배 피우고 침 뱉는 아이들을 품기 시작했죠. 도서관에 들어오도록 했더니 ‘배고파요, 밥 주세요’ 하더군요. 지난해 말 지금 이 자리에 아담한 공간을 열었어요. 우리 ‘마을엔’ 회원들이 운영하죠.” ‘마을엔’에서는 얼마 전부터 ‘알아차림’이라는 점심 뷔페 사업을 시작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자고 새 수익사업을 벌였지만, 만만치가 않다.
작공에서 골목을 조금 더 들어가면 남성 주민들이 공동출자로 운영하는 ‘아빠맘 두부’ 가게가 나온다. 17년 역사의 마을 터줏대감 ‘소리나는어린이집’은 바로 그 안쪽에 있다. 소리나는어린이집을 끌어가는 엄마들은 생협, 의료생협과 같은 협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가족 전체가 지역의 사회적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소리나는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먹이는 식재료를 모두 생협에서 공급받는다. 은평두레생협에서는 ‘아빠맘 두부’에서 매일 만드는 건강한 두부를 매장에서 판매해 준다. 협동조합 간 협동의 기운이 은평의 골목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초록길도서관, 꿈꾸는 다락방, 산새마을, 물빛마을, 참다래장독대, 두꺼비하우징 등 이름도 재미있는 여러 공동체 사업체들이 은평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자양분을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농부협동조합과 주택협동조합 등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구체적이다. 은평구청이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을 거드는데 적극 나서고 있으며, 서울시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이 지역에 들어선 곳도 힘이 되고 있다.
김상백 은평신협 이사장은 “협동조합 사람들끼리 밥 한끼 같이 먹고 사이좋게 지내는 게 참 중요하다. 은평지역은 그런 풍토가 자리잡히고 있다. 우리 은평의 협동조합원 10만명 시대를 더디지만 착실하게 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협동의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
| 기사입력 2013-06-25 19:56
[한겨레]
정태인의 협동의 경제학
태어난 지 1년 남짓한 그야말로 갓난쟁이와 어른 원숭이 중 어느 쪽이 더 남을 잘 도울까? 어쩌면 둘 다 ‘유인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두 개체 앞에서 한 어른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이 더미를 스테이플러로 묶는 단조로운 작업이다. 방에서 나갔던 어른이 종이 뭉치를 들고 다시 돌아와서 스테이플러를 찾으려 두리번거린다. 두 ‘유인원’은 스테이플러가 탁자 밑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누가 어른에게 스테이플러 위치를 더 잘 알려줄까? 놀랍게도 우리 아가들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토마셀로 등이 2006년에 한 이 실험에서 한살 아가 24명 중 22명이 손가락으로 어른들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원숭이도 그런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만(자기에게 이익이 되거나 당위적인 이유가 있을 때) 그랬다. 돕기, 알려주기, 공유 등 이타적 행위에 관한 각종 실험에서 우리의 아가들은 침팬지나 원숭이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런 행위에 보상을 한다고 해서 아가들이 더 열심히 남을 돕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역효과를 낳았다.
교육과 같은 사회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아가들도 협동할 줄 안다. 말하자면 인간은 협동의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생존경쟁의 운명을 인간이라고 해서 어찌 벗어날 것인가?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봐서 어디 하나 잘난 것이 없는 인간은 무려 100만년 동안의 수렵채취 시대에 맹수들의 습격, 혹독한 기후변화, 굶주림을 이겨냈다. 오로지 인간만이 수십명에서 수백명 단위의 집단을 이뤄 성공적으로 협동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위대한 성공이었는지 이제 인간 스스로 기후변화를 만들어내 지구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다. 이런 진화의 역사가 인간 유전자에 알알이 박혀 있다고 추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뇌경제학(neuroeconomics) 실험은 인간이 서로 돕거나 불공정한 인간을 응징할 때 쾌락(비물질적 효용)을 느낀다는 것을 밝혔다. 인간은 생물학자 노바크(Nowak)의 표현대로 가히 ‘초협력자’이다.
낮에는 보육원 아이를 돌보고 밤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털모자를 짜는 우리 아내 ‘차 여사’가 느끼는 행복은 어쩌면 인간의 이런 본성을 되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렇다면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망은 그 본성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죽하면 자살률 세계 1위일까? 만일 경쟁의 장으로 느껴지는 직장에서 거꾸로 협동의 기쁨을 매 순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사회적 경제가 바로 그곳이다.
사회적 경제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 집단 생존의 터전이었다. 농경시대에는 두레나 품앗이, 계가 있었고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 형태가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구성원들이 협동의 규범, 상호성의 규범을 잘 지킬 때만, 즉 진정한 협동을 이룰 때만 효율성(경제적 목표)과 연대(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협동의 규범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걸 지키고 북돋울 수 있을까? 4주 뒤의 다음 칼럼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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