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중학 중퇴 옷가게 점원 세계 패스트패션 황제로
| 기사입력 2013-06-25 10:33
[신동아]“스페인의 유일한 안전자산은 자라(Zara)다.”-영국 일간지‘가디언’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압도적인 유통회사다.”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패션 디렉터 다니엘 피에트
한국에서 한때 의류산업은 ‘아픔과 눈물’을 상징했다. 10대 소녀들이 실밥 먼지가 풀풀 날리는 손바닥만한 공장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힘들게 재봉틀을 돌려 수출 한국의 역군 노릇을 했다. 이런 광경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제 눈물을 흘리며 일하던 어린 노동자가 한국 소녀들에서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등지의 소녀들로 바뀌었을 뿐 의류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영세한 산업구조는 아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마트폰, 컴퓨터, 평판TV를 만드는 첨단 전자회사와 원자재 가격 급등을 앞세운 정유회사들이 세계 대기업 순위의 최상위층을 독차지하는 상황에서 사양산업에 가까운 의류를 만들어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사람이 있다. 지난 1월 말 현재 전 세계 약 90개국에서 무려 1751개의 매장을 보유한 의류 브랜드 ‘자라’의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77) 인디텍스 회장이다. 자라의 모회사이자 캐주얼 브랜드 ‘풀 앤드 베어’, 속옷 브랜드 ‘오이쇼’등 모두 8개 의류 브랜드를 거느린 인디텍스는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매출이 2011년 대비 17% 증가한 113억6200만 유로를 기록했다. 지난해 스페인 주식시장에서 인디텍스 주가는 무려 70% 상승했다. 인디텍스는 오랫동안 스페인 증시 시가총액 1위를 지켜온 최대 통신회사 텔레포니카, 최대 은행 산탄데르를 뛰어넘고 스페인 최대 기업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블룸버그는 이처럼 자라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지난해 말 현재 오르테가 회장의 순 자산이 586억 달러에 이르러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478억 달러)을 제쳤다고 보도했다. 오르테가 회장은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3위 부자다.
유럽 재정위기 후 비틀대고 있는 스페인 경제 사정을 감안하면 자라의 선전은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스페인 정부는 디폴트(default·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를 선언하고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스페인 최대 갑부의 자산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불어나고 있는 것. 경제 전문가들이 “인디텍스의 놀라운 성장이 스페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있다. 자라야말로 스페인 유일의 안전자산”이라고 칭송하는 이유다.
‘자라’의 탄생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1936년 3월 스페인의 중소도시 레온에서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북서부의 궁핍한 시골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중학생이던 13세에 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 오르테가는 동네 옷가게에 배달원으로 취직해 푼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런데 명석한 두뇌를 지닌 소년은 옷가게 주인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작 시골 농민을 대상으로 싸구려 옷을 팔 따름인데 생산과 유통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이다. 원단을 원단 생산업자가 아니라 중개상을 거쳐 사들이는 것도 번거로워 보였다. 자신이라면 이런 복잡하고 낙후된 생산·유통과정을 개선해 더 빠르고 더 값싸게 옷을 만들어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옷가게 점원으로 13년을 일한 오르테가는 26세가 되던 1972년 갈리시아 지방의 소도시 라 코루냐에서 약혼녀와 함께 자신의 옷가게를 처음 열었다. 옷가게 주인이 된 오르테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원단업자에게 직접 소재를 구입한 것이었다. 원단 구매, 옷 제작, 완성품 옷 판매 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중개상이 개입한 탓에 제작기간과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이지만 한철 입은 후 유행이 지나면 미련 없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격이 저렴한 옷, 즉 맥도날드 햄버거와 같은 옷이라는 의미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신제품이 신속하게 출시되자 오르테가의 가게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오르테가 회장은 1975년 자신의 옷가게 이름을 ‘자라’라고 지었다. 원래 그는 브랜드 이름을 ‘조르바(Zorba)’로 짓고 싶었으나 이 이름을 선점한 회사가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라를 택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름에 상관없이 승승장구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스페인 내 매장을 늘리는 데 주력했던 오르테가는 1988년부터는 옆 나라 포르투갈을 시발로 미국 프랑스 멕시코 그리스 벨기에 스웨덴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왜 패스트패션인가
패션의 유행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옷이 낡고 해져서 옷을 버렸지만, 이제는 낡아서가 아니라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옷을 버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반 패션 상품의 제작 기간은 너무 길다. 일반적인 의류는 상품 기획에서 디자인, 제조, 유통, 매장 출시까지 약 6개월이 걸린다. 지금 유행하는 옷이 6개월 전에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유행이 빨리 변하고 세계 각국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속출하는 마당에 6개월 전의 유행이나 기후 예측이 잘 맞아떨어질 리 없다.
패션 유행의 주기는 날로 짧아지고 기후는 변덕스러워지는데 세계 금융위기 등으로 소비자의 지갑은 갈수록 얄팍해지고 있다. 이처럼 트렌드와 멋내기에 민감하지만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딱 맞는 옷이 자라(스페인)를 비롯해 유니클로(일본), H·M(스웨덴), 포에버21(미국) 등 세계 각국 패스트패션 브랜드다.
패스트패션을 의류업계 전문 용어로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고 한다. 비교적 싼 가격,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한 해당 시즌의 최신 유행 반영, 번화가의 초대형 매장, 자체 대량 생산시설 보유, 상품 주기의 빠른 전환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SPA 브랜드의 핵심은 ‘기획-생산-유통’ 프로세스의 수직적 통합이다. 즉 옷을 디자인한 후 생산 작업에 들어가고 그 이후 유통에 나서는 게 아니라 옷의 기획, 생산, 유통을 사실상 동시에 진행하는 작업이다. 유행을 예측하는 게 아니라 현재 거리에서 가장 유행하는 상품을 보고 이와 비슷한 여러 제품을 초고속으로 대량 생산해 늦어도 2주 안에 전 세계 점포로 투하한다.
대다수 패션 브랜드가 매해 2000∼4000종의 신상품을 내놓는 반면 자라는 무려 1만1000종의 신상품을 선보인다. 제품 교체 주기도 2주 정도에 불과하다. 새로 나온 옷이 며칠간 잘 팔리지 않으면 아무리 생산비가 비싸도 매장에서 가차없이 빼고 추가 주문을 모두 취소한다. 그러고는 유행에 맞는 상품을 새롭게 만들어 신속히 제공하니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오르테가 회장이 “우리는 유행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남의 유행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저가 전략의 비밀
그렇다면 패스트패션 브랜드, 그중에서도 자라는 어떻게 저가 전략을 구사해 세계 최대 의류 브랜드가 됐을까.
첫째, 사실상 ‘노 마케팅(No marketing)’에 가까울 만큼의 마케팅 비용 축소다. 대규모 매장, 자체 생산이라는 SPA 브랜드 특징은 언뜻 저가 전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생산에 6개월이 걸리는 일반 패션 브랜드는 6개월 전에 결정된 디자인으로 만든 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유명 스타를 내세운 광고를 제작하는 등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는다.
자라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만들기 때문에 굳이 대대적인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오르테가 회장은 ‘광고는 옷값을 부풀리는 쓸데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자라가 새 점포를 내거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점포의 입지 조건과 제품의 전시 형태뿐이다. 수십억 원을 주고 할리우드 스타를 고용해 광고를 찍거나 패션 전문지며 각종 언론매체에 비싼 옷 샘플을 보내주거나 카탈로그를 만들어 뿌리지도 않는다. 인디텍스의 총 비용 중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둘째,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재고 부담을 최소화했다. 신이 아닌 이상 6개월 후의 유행을 매번 딱딱 맞출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유행의 경향을 잘못 판단한 브랜드는 그 계절이 지나면 엄청난 재고 부담을 져야 한다. 하지만 유행이 지난 옷은 상해서 먹을 수 없는 음식과 비슷해서 아무리 폭탄 세일을 해도 이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라는 연간 1만1000여 종의 옷을 선보이지만 2주일에 한 번씩 전 세계 매장 물건의 70%를 교체한다.
빠른 변화는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옷을 지금 이 순간 구매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 매장을 찾아봐야 그 옷이 없다는 것을 고객이 잘 알기 때문이다. 매장의 옷이 자주 바뀌니 고객이 매장을 찾는 횟수도 훨씬 늘어난다. 인디텍스의 조사 결과 스페인 고객들이 번화가에 있는 자라 매장에 들르는 횟수는 1년 평균 17회였다. 경쟁사의 3회보다 6배 이상 많다.
셋째, 물류 혁신으로 인건비 부담을 대폭 줄였다.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제조 거점을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두는 많은 의류회사와 달리 자라는 스페인 내 생산을 고집해왔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스페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생산 기지를 지으면 물류, 배송, 재고관리 등에 더 많은 돈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는 이유다. 오르테가 회장은 자라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한 1990년대 중반 갈리시아에 축구장 90개 규모의 대형 물류기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상품을 각국의 점포별로 구분해 그 다음 주 목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각국 매장에 닿을 수 있도록 한다. 당연히 제품 배송은 비행기로 이뤄진다. 경비 절감을 위해 주로 배를 이용하는 다른 회사들과 대조적이다.
의류산업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구입을 줄이는 품목이 옷, 구두, 액세서리 등이다. 그렇지만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역설적이게도 자라의 성장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호황일 때 구입했던 고가 의류 대신 가격 부담이 작은 패스트패션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에 오히려 급성장
연이은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로 과거 선진국이라 불렸던 미국과 유럽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 또한 자라에 호기로 작용했다. 자라의 유럽 시장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다른 업체가 주춤할 때 더 치고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라 매출의 약 80%가 해외 시장에서 발생하는데, 그 대부분이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패스트패션의 신생 지역이다.
올해 신설할 매장 500개 중 절반 이상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짓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 경제대국은 중산층의 소득 수준이 아직 고급 의류를 살 형편이 못 된다. 하지만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가격은 감당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나라의 중산층 인구가 웬만한 서유럽 선진국 국가의 전체 인구보다 많다보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도 있다. 지난 1년간 자라의 아시아 및 아프리카 매장은 251개나 늘었다. 2011년 오너 오르테가 회장으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전문경영인 파블로 이슬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자라 확장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부동산 가격 상승 또한 금융위기가 오르테가 회장에게 가져다준 선물이다. 자라는 매장을 낼 때마다 해당 도시의 가장 번화가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건물을 찾는다. 자라의 평균 매장 크기는 약 1500㎡에 달한다. 이는 농구장 크기의 3배 반에 달하며 일반 의류 매장보다는 작게는 서너 배, 크게는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큰 매장을 짓기 위해 구입한 고가의 부동산이 금융위기 및 재정위기가 다소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것.
2011년 3월 세계 패션의 메카인 뉴욕 5번가 중심부에 있는 빌딩을 3억2400만 달러에 매입한 것이 좋은 예다. 티파니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5번가에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입점한 것도 화제였지만, 이후 뉴욕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이 빌딩의 가격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향후 매각 시 상당한 시세 차익이 기대된다. 오르테가 회장은 마드리드의 43층 초고층 빌딩인 토레 피카소를 비롯해 미국 뉴욕 시카고 보스턴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각지에 빌딩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이기도 하다.
은둔형 경영자
오르테가 회장은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1999년 이후 자신의 사진을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고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세계 3위, 스페인 최고 부자인데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해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평소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축구 경기를 관람하거나 길거리를 활보해 스페인 사람들도 그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가 넥타이를 마지막으로 맨 게 딸의 결혼식 때였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2011년에는 스페인 국왕이 부르는 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그해 스페인 총리가 자국 20대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한 자리에도 불참했다. 불참한 기업인은 그가 유일했다. 앞서 그는 2011년 초 모든 업무를 파블로 이슬라 CEO에게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때도 그는 화려한 퇴임식은커녕 주주와 직원들에게 메모 한 장을 남기고 퇴임사와 퇴임식을 대신했다.
이후 생활도 다를 게 없다. 주주총회는 물론 사교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비공식적으로 오르테가 회장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 때는 그 자신이 구단주이자 열렬한 팬이기도 한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 프리메라리가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경기를 볼 때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구설에 휘말리지 않고 사업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한 오르테가 회장의 경영 방식이 인디텍스 급성장의 밑거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자라의 성공이 자신의 탁월한 경영능력 덕분으로만 비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노력과 헌신이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일 뿐이다.”
환경오염, 노동자 착취 논란
자라를 위시한 몇몇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면서 환경오염과 제3세계 노동자 착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유행이 지나면 옷들이 마구 버려지거니와 옷을 싼값에 많이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염료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패션업계의 사회적 기업인 오르그닷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한 해 한 명이 버리는 옷의 무게가 평균 30㎏에 달하며 이는 여러 가지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
옷의 순환 주기가 짧아지면서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 해 1조 달러의 옷이 소비되고 있지만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3%에도 못 미친다. 디자인 모방 논란도 있다. 패션쇼 등을 통해 미리 향후 유행을 예측하고 디자인을 연구해 상품을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브랜드가 고심해서 내놓은 새로운 디자인을 베껴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옷을 만들고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르테가 회장이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경영자 중 한 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학교 중퇴 학력을 지닌 그가 노(No) 마케팅, 재고 최소화, 다품종 소량생산, 물류 시설 강화, 매장 위치 및 디스플레이 ‘올인’ 등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재에 실릴 만한 각종 허를 찌르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 혁신적 사고를 가미하면 사양산업인 의류도 가장 창조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분야가 될 수 있다는 점, 자라가 아직도 세계 각국에서 가장 빠르게 매장 수를 늘려가고 있다는 점 등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비록 CEO 직책을 내려놓긴 했지만 오르테가 회장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고자료:‘패스트패션 자라, 놀랍게 빠른 성장비밀’, 동아비즈니스리뷰 81호(2011.5.15), 장영재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