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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엑손모빌 vs 로열더치셸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6.26
조회수
4,689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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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엑손모빌 vs 로열더치셸

신동아| 기사입력 2013-06-25 10:33
[신동아]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발표한 ‘2012년 미국 500대 기업’ 중 매출 1위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이었다. 최근 발표된 ‘2013년 미국 500대 기업’에서 엑손모빌은 월마트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2012년 회계연도에 이 회사는 4207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는 동안 무려 448억 달러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자사가 2008년 세운 기록인 452억 달러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임직원은 7만6900명. 1인당 평균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547만 달러, 58만 달러가 넘는다.

이런 대단한 기업을 위협하는, 아니 어느 면에서는 이 회사를 뛰어넘은 존재가 있다. 영국 주식회사지만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로열더치셸이다. 미국에 엑손모빌이라는 맹주가 있다면 유럽에는 로열더치셸이라는 슈퍼스타급 에너지 회사가 있다. ‘포춘’에 따르면 로열더치셸의 지난해 매출액은 4672억 달러로 엑손모빌보다 많았다.

 

록펠러의 ‘작품’

엑손모빌의 시작은 18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석유왕’ 존 D 록펠러가 그해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정유, 수송, 판매 관련 업체들을 통합하면서 몸집을 불려갔다. 1882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40여 개의 정유·수송회사를 거느리며 초대형 에너지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거대 기업은 30년 후 산산조각이 났다. 1890년 의회를 통과한 미국 내 반(反)독점법이 발목을 잡았다. 미 연방 대법원은 1911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하고 회사를 해체하라고 명령한다.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결국 34개 기업으로 갈라진다.

창업자 록펠러는 이 가운데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만 맡았다. 이 회사는 흔히 ‘저지 스탠더드’로 불렸다. 이 회사가 나중에 엑손이 된다. 저지 스탠더드는 1919년 남미 사업에 진출했고, 이듬해엔 최초의 상업적 정유제품인 이소프로필알코올을 생산했다. 1928년에는 중동 원유 수입권을 확보했고, 1948년엔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의 지분 40%를 인수하는 등 중동 원유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회사명을 ‘엑손(Exxon)’으로 바꾼 것은 1972년이다.

뉴욕에 거점을 둔 ‘뉴욕 스탠더드 오일’도 1911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에서 떨어져 나온 34개 기업 중 하나였다. 이 회사는 훗날 모빌오일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뉴욕 스탠더드 오일은 ‘스코니’라는 이름을 쓰다 1931년 베큠 오일과 통합해 스코니-베큠이 됐다. 이 회사는 1950년대에 ‘스코니-모빌 오일’로 재탄생했다. 모빌은 이 회사 판매제품의 브랜드였다. 그런데 모빌의 인지도가 계속 높아지자 1966년 사명을 아예 ‘모빌 오일’로 바꾼다.

이렇듯 한 몸에서 분리된 두 개의 회사는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며 20세기 말까지 함께 성장했다. 그러던 1999년 11월, 세계 석유시장 1위를 지키던 엑손은 세계 4위 모빌오일을 전격 인수했다. 에너지 기업의 황제 엑손모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엑손이 치른 흡수합병 금액은 무려 835억 달러에 달했다. 그때까지 석유산업계에선 유례가 없는 최고의 인수비용이었다. 한층 막강해진 엑손모빌은 세계 최대 석유회사의 입지를 다졌다.

 

런던 골동품 가게서 태동

로열더치셸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는 쉘은 200년 전 영국 런던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시작해 성장한 기업이다. 창업자 마르쿠스 새뮤얼은 이 가게를 열어두고 극동 지역으로부터 조가비를 사와 패션 소품을 공급하는 일을 했다. 아들인 마르쿠스 주니어와 샘은 수입 및 수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고, 사업은 점차 번창했다. 1886년 내연기관이 발명되면서 운송 연료의 수요가 급증했다. 새뮤얼 형제는 증기선 몇 척을 빌려 아예 석유를 대량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이들이 처음으로 띄운 유조선 ‘뮤렉스(Murex)’의 첫 항해는 석유 운송에 혁신을 몰고 왔다. 이 유조선은 1892년 수에즈 운하를 횡단한 최초의 유조선으로 기록돼 있다. 형제는 1897년 회사 이름을 ‘쉘 운송·무역 회사’로 바꿨다.이 회사는 중동에서 활동하던 중 네덜란드 국적의 에너지 회사인 로열더치페트롤리엄과 만난다. 당시 전 세계 오일 시장을 장악하던 스탠더드 오일에 맞서기 위해 이들은 1907년 로열더치셸그룹으로 합병한다.

1920년대 후반 로열더치셸그룹은 전 세계 원유의 11%를 생산하고 유조선 수송량의 10%를 차지하며 세계 최대 석유 회사 자리를 꿰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로열더치셸그룹은 세계적인 경제부흥 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로 사업을 적극 확장했고, 1947년에는 멕시코 만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가치가 있는 해상 석유광구를 시추하는 데 성공한다. 세계대전 종전 10년 뒤인 1955년 로열더치셸그룹이 전 세계에서 시추하던 광구는 300개나 됐다.

 

 

 

 

1970년에 찾아온 중동발(發) 석유파동은 한편으론 로열더치셸그룹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1969년 리비아의 정권을 거머쥔 무아마르 카다피는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중동의 다른 생산국들도 경쟁적으로 생산량을 줄였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석유 파동은 극에 달했다. 불과 몇 주일 사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석유 가격을 4배나 올리고 2개월 동안 석유 판매를 보이코트하기도 했다. 이런 석유파동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은 재앙 수준이었다.

로열더치셸그룹으로서는 이즈음이 북해와 남아메리카에서 유전을 개발할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였다. 유전 개발은 불확실성이 크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 다. 그러나 중동의 석유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수직계열화로 시장 장악

엑손모빌은 전 세계 석유의 약 3%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보유 중인 유전과 가스전의 매장량은 세계 14위 규모. 이 회사의 사업은 크게 업스트림(석유 및 가스의 탐사, 채굴, 수송), 다운스트림(정유, 주유소, 마케팅), 화학 부문으로 나뉜다. 성공적인 수직계열화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를 통해 보다 싼 가격에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시장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엑손모빌 전체 이익의 70~80%는 업스트림 부문에서 나온다. 이 회사가 에너지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는 이유다. 2011년의 경우 신규 유전 및 가스전 탐사에 역대 최대인 368억 달러를 투입하기도 했다. 앞선 2009년 에너지 기업 엑스티오(XTO)를 410억 달러에 인수한 것도 셰일가스라는 미래 에너지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엑스티오는 136억 BOE(석유환산배럴)에 이르는 거대한 셰일 유전을 확보하고 있다.

다운스트림의 경우 엑손모빌은 전 세계 21개국에 36개의 정유공장을 갖고 있다. 북미, 유럽, 아시아에 30~40%씩 골고루 분포된 것이 특징이다.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정유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고, 현재 엑손모빌의 정유제품이 팔리는 곳은 120여 개국에 달한다. 화학 부문에서는 폴리프로필렌과 폴리에틸렌 등 각종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최근 들어서는 화학 부문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올 1분기 95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전년 동기보다 5000만 달러(0.5%)가 많은 수준이다.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은 전년 동기보다 다소 감소한 반면, 화학 부문 매출액은 크게 늘어났다. 업스트림 매출액은 70억3700만 달러로 지난해 1분기보다 7억6500만 달러(9.8%)가 줄었다. 미국 내에서 8억5900만 달러, 그 외 국가에서 61억7800만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다운스트림 매출액도 지난해 1분기 15억8600만 달러에서 올 1분기 15억4500만 달러로 4100만 달러(2.5%) 감소했다. 미국 내 매출액은 10억39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4억 달러 이상 늘었지만, 해외에서의 매출액이 5억600만 달러로 1년 사이에 반 토막이 났다. 화학 부문은 지난해 1분기 7억100만 달러 수준이었다가 올 1분기 11억3700만 달러로 무려 4억3600만 달러(62.2%)나 늘어났다. 특히 미국 내에서의 증가폭(433억 달러→752억 달러)이 컸다.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

 

10만 직원 이끄는 에너지 왕국

유럽연합(EU)에 이은 유로화 경제권 출범으로 로열더치셸그룹도 새로운 시장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1907년 쉘과 로열더치페트롤리엄이 로열더치셸그룹으로 합병한 후 사실상 하나의 회사처럼 영업활동을 해왔지만, 주주들은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요구했다. 이에 2005년 5월 로열더치셸그룹은 합병보다 한층 강력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법인을 로열더치셸로 정식 단일화했다.

로열더치셸은 원유·석유제품·연료·석탄·가스·윤활유 공급, 화학제품 생산 및 판매 등 다양한 에너지 사업분야로 영역을 확대했다. 로열더치셸은 과거부터 ‘세븐 시스터스’(엑손 모빌 텍사코 셰브론 걸프오일 BP 로열더치셸)의 일원으로 세계 석유산업을 지배해왔다. 세븐 시스터스 가운데 엑손과 모빌이 합병했고, 걸프오일은 셰브론이 인수했다. 로열더치셸은 지금도 유럽 최대 에너지 회사로 세계 에너지시장을 호령한다.

이 회사는 올 1분기 75억2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분기 72억9700만 달러보다 2억2300만 달러(3.1%) 늘어난 수치다. 업스트림 영역에서는 56억4800만 달러의 매출액으로 전년 동기 62억7000만 달러보다 6억2200만 달러(9.9%)나 줄어들었다. 반면 다운스트림에서는 지난해 1분기 11억2200만 달러에서 올 1분기 18억4800만 달러로 7억2600만 달러가 늘어났다. 1년 새 무려 64.7%나 증가한 것이다. 로열더치셸은 현재 145개국에 진출해 47개가 넘는 정유소와 4만여 개에 달하는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 수는 10만 명을 헤아린다.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1975년 엑손모빌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잔뼈가 굵었다. 1989년 미국의 중앙 생산본부장을 맡으면서 텍사스, 오클라호마, 아칸소, 캔자스 등에 있는 대형 원유·가스 생산을 책임졌다. 2001년 8월 엑손모빌의 수석부사장을 지냈고, 2006년 1월부터 7년째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 CEO

그의 전임자는 업계의 전설적인 CEO 리 레이먼드였다. 틸러슨으로선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0년간 엑손모빌에 몸담아온 그는 CEO의 자리도 그다지 어색해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신규 에너지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그는 너끈히 이겨냈다.

틸러슨은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각국 정부와 협상에 나설 때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탐독한 다음 수완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단력도 있다. 그는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하자 “경제 복구에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선 투자를 진작해야 한다” “해외 무역을 확대하는 기술 혁신을 위해선 정책 뒷받침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틸러슨은 1952년생으로 올해 61세다. 미국 텍사스 주 위치토폴스에서 태어났고, 텍사스-오스틴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입사 후 국내외의 엑손모빌 계열사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1995년에는 엑손-예멘 회장을, 1998년엔 러시아 사할린의 엑손 네트가스 회장으로도 일했다.

그는 외부 직함도 다양하다. 미국석유협회(API)의 정책집행위원회 부장, 미국과 러시아 사업위원회 국장,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 이사, 국립석유위원회의 회원, 미국기업인 원탁회의와 에너지특별위원회의 회원, 국제이해의 산업위원회 명예 이사, 미국무역을 위한 비상위원회 회원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피터 보서 로열더치셸 CEO.

 

업계 마당발 CEO

피터 보서 로열더치셸 CEO는 2009년 7월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기가 급추락하던 시기였다. 원유 수요가 줄면서 정유업계에도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보서는 다양한 경험과 투명한 리더십을 내세워 위기를 극복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기술전문대학(UAS)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82년 셸에 입사했다. 스위스 영국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서 재무나 사업 부문을 담당했고, 1997년 초 영국으로 돌아와 그룹 최고 감사직을 맡았다.

1999년엔 셸 유럽 오일 프로덕트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됐다. 2001년 글로벌 오일 프로덕트의 CFO를 거쳐 2004년부터 로열더치셸 그룹 CFO를 맡아왔다. 스위스 출신인 그가 영국계 네덜란드 기업의 수장에 오른 것은 업계에서 적잖은 화제가 됐다.

보서 CEO는 업계의 마당발로, 사외 활동도 활발하다. 2006년 4월까지 네덜란드 보험사 아에곤의 감사회 일원이었고, 2005년 4월부터 5년간 UBS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2011년에는 스위스 헬스케어 리서치업체인 로셰의 이사회에 참여했다. 현재는 세인트갈렌 재단의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엑손모빌이 세계적인 기업의 자리를 10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다. 록펠러는 오늘날 ‘악덕 재벌’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에 자선사업과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회계장부 정리는 그의 상징이기도 했다. 엑손모빌의 투명한 회계는 창업자의 일상으로부터 전해져온 전통이다. 엑손모빌은 특히 환경 분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7년 국제 환경단체에 660만 달러를 기부했고, 2005년부터는 이익의 1%가량을 대체에너지 연구에 투자하며 업계의 환경보호를 선도하고 있다.

로열더치셸의 기업정신은 쉘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쉘은 엄격한 사규를 통해 뇌물수수 등 부패 척결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쉘의 모든 직원은 행동 강령인 ‘일반 업무수행 원칙’을 따라야 한다. 이 중 기업 활동의 성실성 항목에는 ‘직간접적인 뇌물의 제공, 지불, 회유와 수취는 어떠한 형태로든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전 직원은 1년에 한 번씩 자체 감사를 받는다. 1997년 자체 감사에서 23건의 뇌물수수 사례가 밝혀지자 액수를 불문하고 관계자 전원을 해고한 바 있다. 쉘은 또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선물을 주고받은 경우에도 그 내역을 모두 공개하도록 했다.

쉘은 정치적 중립성도 유달리 강조한다. 이 회사는 1976년 이탈리아에서 450만 달러의 정치 헌금을 강요받자 지사장을 해고한 뒤 곧바로 철수했다. 그 후 14년간이나 이탈리아에서 사업을 벌이지 않았다. 또한 쉘은 인권 옹호를 핵심 가치로 내걸고 있다.

예를 들어 쉘이 운항하는 유조선은 베트남을 탈출한 난민들을 구조한 경우가 유독 잦았다. 이른바 ‘보트피플의 수호신’으로 유명했던 것. 쉘에 따르면 1979~85년 6년간 쉘의 유조선이 구한 보트피플은 500명이 넘는다.

 

원유 유출 사고 후유증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에도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엑손모빌’ 하면 늘 떠올리는 사건이 있다. 1989년 알래스카 해역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의 원유 유출 사고가 그것이다. 사상 최악의 해상오염 사고 중 하나로 아직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알래스카산 원유 5300만 갤런을 실은 엑손모빌 소속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는 1989년 3월 24일 새벽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알래스카 만의 해협에서 좌초했다. 선장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선체가 부서지면서 선적한 원유의 20%인 1080만 갤런(24만 배럴)이 흘러나왔고, 이는 알래스카 만 일대를 뒤덮어버렸다. 무려 2000km 이상의 해안이 시커먼 기름에 뒤덮였고 수십만 마리의 조류와 해양생물이 희생됐다. 분산제를 뿌리기도 하고, 기름을 태워 없애는 방제법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모두 별무효과. 그러는 사이 해양생태계 파괴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엑손모빌은 이 사고로 여러 건의 소송을 당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법원의 배심원단은 1994년 연방정부와 피해 어민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엑손 측에 실제 피해보상금 2억8700만 달러 외에 엑손의 당시 연간 이익에 해당하는 50억 달러의 징벌적 배상 평결을 내렸다. 엑손모빌이 이에 항소한 뒤 징벌적 배상액은 25억 달러까지 낮아졌고, 2008년 연방대법원은 이를 다시 5억750만 달러로 최종 확정했다. 1심 배상금 50억 달러, 항소심 25억 달러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최근에는 지하수를 오염시킨 사건에 따른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 처지가 됐다. 뉴햄프셔 주정부는 휘발유 첨가물(MTBE)을 통해 지하수를 오염시킨 혐의로 엑손모빌 등 다수의 석유회사를 고소했다. 엑손모빌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소송이 시작되기 전 모두 합의했다. 미국 뉴햄프셔주 배심원단은 지난달 9일 주 정부가 엑손모빌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2억3640만 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평결했다. 엑손모빌은 물론 항소했다. 발데스호 사건 때처럼 배상금액이 줄어들지, 중간에 주정부와 엑손모빌이 합의할지 주목된다. 세계 최고의 에너지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이래저래 무색해지는 사례들이다.
김창덕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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