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신동아-미래전략연구원 공동기획 | 이념 vs 이념]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에 포획” “진영갈등은 未해체 냉전체제 탓”
| 기사입력 2013-06-25 10:33
[신동아]
한국 사회의 이념과 통일 한반도의 철학 | ‘이념 vs 이념’ 기획 취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고, 당당한 독립국가를 건설하고자 힘을 모았다. 산업화를 위해 매진했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분단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근 100년 동안 우리는 그처럼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런데 세상에서 자주독립과 민주주의·경제 발전의 모범 사례로 회자되는 사이에 ‘잃어버린 10년’ ‘민주주의 퇴보 5년’을 서로 탓하며 길을 잃었다.
더 이상 누구를 탓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달려온 길,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현재의 방향 상실에 대한 책임을 우리 자신에게만 돌릴 일은 아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의 해체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해야 했고, 외환위기를 겪으며 세계화한 금융자본주의의 냉혹함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마저 흔들리는가 했더니, 9·11 테러와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며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역사의 종말’이 아니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30여 년간 개혁·개방을 이끌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놀라운 ‘진화’를 보면,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 모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게다가 다시 심화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민족주의적 갈등 양상을 보면 겨우 수십 년 전 역사의 교훈도 도외시할 만큼 인간은 어리석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어느 이념·철학이 자기 사회를 망치기 위해 만들어졌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맹목적 희망에 눈먼 미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세계사든 한국사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혹한 전쟁·파괴·갈등을 떠올릴 수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을 굶주림과 가난으로부터 구해내고 잔혹한 폭압과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한 노력의 성과가 꾸준히 축적되어온 시간이었다. 한국은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로서 전쟁 위협과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도 그러한 성과를 가장 많이 누린 나라 중 하나다.
이 기획 토론은 광복 전후의 이념적 대립에 이은 남북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심화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극복하고 지향해야 할 이념과 철학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성찰과 논의를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한반도의 안정된 번영을 준비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공존을 위한 논의와 연계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전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 그리고 한반도의 갈등 고조로 상징되는 동북아 질서의 변동을 고려하고, 지식정보혁명이 초래하는 전반적인 사회구조 변동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논의는 단기적인 이념 갈등 해소의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고전적 정치이념에 대한 성찰과 함께 근래 한국에서 사회적 논의의 주된 논제로 떠오른 복지, 인권, 공화 등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주요 주제들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론적 차원에서 축적된 성과와 함께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어진 경험을 통해 더욱 절실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념과 철학에 대해 이론적 성과를 쌓아온 전문가, 현실에서 실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가 한자리에 모여 현재 각 이념 및 그 이념의 진영이 가진 문제의식과 실천적 방안에 대해 토론할 것이다. 격변의 현대사를 겪으며 한반도의 미래와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품고 살아온 전문가와 실천가를 풍부하게 갖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축복이다.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념과 통일 한반도의 철학’을 모색하며 그 논의를 확산해나갈 것이다. ①민주주의 ②자유주의 ③사민주의… 등의 순서로 10회에 걸쳐 이어진다.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일제침탈 시기에는 독립을 갈망했고,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정부를 염원했으며, 경제위기 때는 돈의 지배로부터 탈출을 꿈꿨다. 타율적 지배를 벗어나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는 본능적인 것인 듯하다. 식욕, 성욕에 비한다면 그것은 2차적 욕구에 속하겠지만, 적어도 생물학적 생존의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됐을 때 ‘자기 지배의 욕구’가 분출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무수히 봐왔다. 민주주의란 국민 모두가 이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이다.
하지만 식욕이나 성욕에 대해서는 늘 ‘과욕’을 경계하면서도 자기 지배의 욕구에 대해서는 과욕을 논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자기 지배의 욕구가 지나치게 충족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듯하다. 1987년 우리는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나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했고,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해 왔다.
그럼에도 자기 지배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요원해 보이는 것은, 국민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조정하고 타협해야 할 서로의 이해관계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권리와 의무의 선후(先後)와 경중(輕重)을 논의하며 ‘민주주의’에 한 걸음씩 더 다가가야 하겠지만,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민주주의 본질 앞에서 대의제, 대통령제, 재산권을 포함해 모든 것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We are the people”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한국은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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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한국은 산업화뿐 아니라 민주화의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김비환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개념 자체가 민주적 토론의 대상이다. 대세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지만 자유주의라는 낱말 또한 다의적이다. 상이한 문화권에서 상이한 형태로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근대의 자유민주주의가 다르고, 마르크시즘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 또한 다르다. 노르딕(북유럽) 민주주의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독특한 형태를 띤다.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에서 민주화 정도를 측정할 때 자유민주주의를 모델로 적용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도 논쟁의 대상이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부터 복지주의적 민주주의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신자유주의)에 국한해 자유민주주의를 이해하면 특수한 정치적 이해와 연관되게 된다.
이태호 말씀하신 대로 민주주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민주주의가 굉장히 가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에는 합의가 돼 있다. 자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 다양한 개념이 있다.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보통선거권 운동부터 살펴보자. 19세기 말 엥겔스 같은 이들이 “다수가 투표하면 다수가 권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보통선거 운동을 벌였다.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들도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89~1991년 사회주의가 무너질 때 사람들이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구호는 ‘위 아 더 피플(We are the people)’, 그러니까 ‘우리가 인민이다’였다.
김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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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혁명에 비슷한 구호가 나오지만 1989년 동독 라이프치히 촛불집회 때 이 구호가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민들이 ‘인민정권(동독 정부)이 인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외친 것이다. 소련이 붕괴한 지 20년 만에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같은 구호가 나오고 있다. ‘위 아 더 99%.’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세계 곳곳에서 어떤 민주주의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고사를 예로 들어보자. 주나라 여왕(周勵王)이 언론을 탄압하자 소공이 이렇게 충고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시냇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막으면 어느 날 봇물처럼 터집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주나라에선 실제로 민란이 일어나 왕이 쫓겨났다. 당시에 왕 없이 신하들이 통치하는 것을 ‘공화(共和)’라고 표현했다. 영어 ‘리퍼블릭(rebublic)’을 한·중·일 모두 공화라고 번역한다. 한자어 공화는 서구에서 발전해온 민주주의와 유사한 개념이다.
요컨대 시민불복종,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민주주의 논쟁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대중이 권력 통제하는 질서
김형찬 민주주의의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면 민주주의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사상적 요건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김비환 민주주의를 다수 시민이 정치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정치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면, 적어도 소수 엘리트의 정치권력 행사에 대해 대중의 통제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정치질서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통치행위를 하는 직위를 얻기 위한 엘리트들 사이의 경쟁이 존재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이뤄진다면 최소한의 민주주의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광범위한 시민적,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법의 지배가 확립되면 보다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그리고 시민들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규범들을 내면화하는 단계가 되면 성숙한 자유민주주의가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아무리 넓게 이해한다고 해도 시민의 정치참여는 참여민주주의[혹은 심의(審議)민주주의]에 비해 그 범위가 협소하고 참여의 의미도 얄팍하다. 즉, 자유민주주의에서 참여의 의미는 주로 개인적인 선호 혹은 이익을 정책이나 입법을 통해 보호하거나 증진시키고자 하는 도구적인 측면이 강하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루소 등 공화주의 사상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참여민주주의는 정치참여를 통해 개인이 자기를 발전·실현시키며 공동선을 확인 또는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한다.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에서는 연대(solidarity)와 평등(혹은 사회정의)의 가치를 강조하고, 자유라는 가치도 소극적인 의미의 불간섭이 아니라 자기발전과 실질적인 능력의 행사라는 적극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고 다양한 사상적 원천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 민주주의는 어떤 사상적 전통을 따랐느냐에 따라 매우 상이한 형태와 특징을 갖게 된다.
김형찬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까닭은 뭔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각 이념 진영들은 저마다 ‘민주주의’를 내걸고 점점 더 깊은 이념적 갈등에 빠져 들어가는 듯하다.
김비환 1987년 이전의 한국은 최소치의 민주주의도 달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들이 반독재투쟁이라는 기치 아래 연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머리와 가슴속에서 서로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었으면서도 다양한 반독재 세력들이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협력했다. 독재 대 민주의 구도였던 터라 공동의 적을 상대로 연대할 이유와 명분이 뚜렷했던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해 1987년 형식적 민주주의가 수립됐다.
이후 사회적 기반이나 자신이 품은 이상의 차이에 따라 민주화 투쟁에 동참한 이들이 여러 갈래로 흩어졌는데, 이 현상은 머릿속에 상이한 민주주의 형태를 염원했던 세력들이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후 본격적으로 추구한 민주주의 형태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들이 서로 다른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과정에서 현재와 같은 정치 지형이 형성됐다.
그들만의 민주주의
김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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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보수-진보가 정권 쟁탈전을 벌일 때마다 이념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태호 군사독재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졌기에 내부적으로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체제를 통해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시각이 있다. 보수 쪽이 그렇게 생각한다. 절차 수립이 마무리됐으니 이제는 체제를 유지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진보 쪽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데 관심이 많다. 경제, 사회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비환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공고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 엘리트의 경쟁과 자유롭고 공정한 정기적 선거가 민주주의의 최소치다. 그다음 집회·결사의 자유, 공직 출마의 권리가 확립되면 최소치보다 진전된 민주주의가 출현한다. 다음으로 광범위한 시민적, 정치적 자유가 인정되고 법의 지배와 사법부의 독립이 확립되며 시민문화가 확립되면 보다 발전된 자유민주주의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놓고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선거민주주의 단계에서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고 판단된다.
연대(連帶)의 기반 복원해야
이태호 한국의 민주화운동도 보통선거를 요구하며 불거졌다. 대통령 직선제를 하자는 게 슬로건 아니었나. 그 다음에 조합 설립의 자유를 주장했다. 노동조합 대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들을 조직할 권리를 갖고, 시민이 최소한의 집회·결사의 자유, 경제적 권리를 갖는 것은 스타트라인일 따름이다.
참여연대의 1994년 창립선언문에는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우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 여러분의 의지와 지혜를 모아가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는 과제는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고도성장의 환상이 무너졌다. 아직도 경제가 성장하면 복지 제도가 있든 없든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시민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는 제도화한 정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하다.
김형찬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이념의 문제인가, 운용의 문제인가.
김비환 우선 제도적 측면에서 불충분한 부분이 있다. 선거제도만 보면 그렇게 나쁜 평가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질을 본다면 매우 실망스럽다. 1980년을 전후해 대처와 레이건이 등장한 이후 약 3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세계화하면서 시민의 연대 형성을 위한 기반이 크게 훼손됐다.
또한 정당이 시민사회와 연계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요구를 수렴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시민사회가 연대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연대가 깨지고 파편화하면서 민주주의를 심화하려는 정당들의 입지도 매우 허약해졌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양극화와 빈익빈부익부 문제가 심각하다. 상품화가 심화하고 있다. 상품으로 거래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사고 팔리며, 노동력도 자본이 소모하는 상품이 돼버렸다. ‘노동의 유연성’은 바로 그런 상황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용어일 뿐이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사적 자본의 통제력이 세졌다. 사정이 이런데 중산층 이하 여러 집단은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연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식으로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려서다. 노동귀족이 있는가 하면 대규모의 비정규직이 있다. 소수의 경제 권력을 통제할 연대의 기반이 상실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요컨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치로서의 민주주의를 포획해버렸다. 전근대 단계에서 자본주의는 사회 안에서 다른 사회제도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의 소유권이 강조되면서 사회가 자본주의에 포획됐다. 민주주의가 자유시장을 견제하고 통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미국도 비슷하다. 9·11테러 이후 다중이 영향을 못 미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장에 대한 정치의 우선성,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선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계속되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거듭 강조하건대 상황을 역전시키려면 연대의 기반을 회복해야 한다. 시민이 기성의 권력들을 통제, 견제할 수 있는 연대의 기반 가치로 당장 떠오르는 것은 경제민주화, 복지, 환경 등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더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53년 체제’의 영향
이태호 한국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해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국민이 그 법에 관심을 갖느냐는 이들도 있지만, 국보법의 존재 유무에 따라 한국 사회가 다룰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매우 크다. 우리 사회가 뒤떨어져서 검열, 도·감청 문제가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 영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지난 대선의 핵심 이슈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복지와 경제민주화였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니라 정년 연장이 사회적 어젠다가 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러한 것들은 진보건, 보수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의제 아닌가. 진영으로 나뉘어 다툴 사안이 아닌데 이념 대결이 벌어진 것은 생각해볼 거리를 준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이 1953년 체제, 그러니까 냉전체제가 아직도 해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냉전체제에서 국가는 강력했지만 안보 외엔 주는 게 없었다. 나머지 분야에선 사실상 약탈자였다.
우리는 아직도 피난사회에 살고 있다. 공식적으로도 휴전에 의한 ‘정전(停戰)체제’ 아닌가. 오래된 커뮤니티가 깨진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시장이 들어왔다. 공동체가 붕괴된 자리를 연고, 학연, 지연이 차지했다. 복지는 가족이 해결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료와 복지 역시 시장에서 공급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인식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정책 사안에서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것은 53년 체제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김형찬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광복 무렵의 냉전체제에서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와 동북아의 안보에 이르기까지 세계 질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이러한 외적 변수들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지구적 민주주의 위기
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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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이매뉴엘 월러스틴 같은 학자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세계 체제가 된 것은 탈냉전 이후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등장한 세계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1991년 이후부터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국가가 그러한 체제를 견제하는 보루 구실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인데, 거꾸로 보면 국가가 그러한 구실을 못해 세계 체제가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소극적 자살이다. 적극적 자살은 세계 1위다. 노인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에서 압도적 1위다. 커뮤니티를 복원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 생활협동조합, 자치마을 만들기 등으로 경쟁의 경제가 아닌 연대의 경제를 준비해야 한다. 덧붙여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말 못하는 동물, 식물의 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할 사람의 처지에서 숙의해야 할 문제다.
정보 민주화와 관련된 이슈도 한가해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다. 미국에서 빅데이터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기업 처지에선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지만, 국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위치 정보, 검색 정보 등을 분석해 그 사람의 향후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려진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은 ‘아직 우리 민주주의가 후진적이다’ 정도로 볼 사안이 아니라 미래 이슈다. 미래에는 국가기구가 투박한 방식이 아니라 세련되고 어마어마한 방식으로 여론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음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김비환 글로벌 차원에서 시장경제가 움직이는 범위와 개별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영역이 어긋난다는 점에서 민주정치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글로벌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는 명목상의 것일 수밖에 없다. 자본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국제적 감시기구가 필요하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숙제다.
김형찬 지구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대안이 있을까.
김비환 1960년대 신좌파에서 참여민주주의를 내놓았다. 자본주의적 대의민주주의는 선호 집약적 민주주의다. 투표 과정을 통해 민의를 수렴해 정책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난다. 국민주권과 대의주권(의회권력) 간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괴리 탓에 1960~ 70년대 서구에서 민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등 참여민주주의가 등장했다. 참여라는 것이 집단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참여의 질을 따지는 심의민주주의 개념도 등장했다. 대의민주주의와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모델로서 시민사회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아마도 대안적인 민주주의의 지배적 가치나 이상은 참여, 소통 그리고 연대와 사회정의 등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가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예컨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는 서로를 지지할 수 있지만 서로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결정이라도 사회정의와 충돌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통일 한국의 이념은?
김형찬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 질서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라면 북한 지역을 논의에서 배제할 수 없다. 통일된 한반도의 이념으로서 ‘민주주의’가 유의미하다면 그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란 어떤 것일까.
이태호 1972년 7·4 공동성명의 키워드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다. 이후에 나온 합의도 이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빠진 것은 양쪽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달라서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통일된 국가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든 아니든 민주주의가 이념이 돼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구구한 해석이 있지만 인민이 권력을 통제하고 표현·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경제적 공정함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서의 민주주의 말이다.
통일은 남이 북을 통합해가는 과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아직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의 민주주의가 북한의 그것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 내에서 민주주의를 주도할 세력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그들과 협력할 준비를 해야 한다.
김비환 통일은 당연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통일 한국의 정치 공동체가 지녀야 할 성격은 인종적 동질성을 넘어 정의로운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존엄한 삶의 기본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적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통일 국가의 이념이 될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역시 민주적 여론 형성 과정을 거쳐 결정돼야 한다. 그러므로 통일에 대비해 먼저 대한민국 내부의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재분배정책을 통해 사회통합을 진전시키는 가운데 통일에 관한 국론을 형성해가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신장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며, 한반도의 안정을 통해 동북아시의의 평화와 상호협력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통일비용과 편익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비용보다 편익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한 전략적 비전을 갖고 주변국과의 협력 아래 통일에 유리한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은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이다.
이태호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해온 과정은 지난했다. 우스운 얘기지만 북한도 6·25전쟁 때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며 전쟁을 일으켰다. 냉전체제가 지속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도 왜곡됐다. 작전계획 5029나 북한 급변사태시 안정화 작전 같은 얘기를 들으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950년대 북한이 가졌던 인식과 무슨 차이가 있나. 군대가 어떻게 북한을 안정화시키나.
덧붙여 우리가 북한에 제공할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거나 훌륭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명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동북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식 민주주의건, 인민민주주의건, 일본식 민주주의건 동아시아 국가는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내세울 게 별로 없다. 통일은 한반도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에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김형찬 지금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국가 단위의 정치체제, 지구적 차원의 정보통신체계와 정부 차원의 대응체계 등 서로 불일치하는 영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실현되기가 더욱 어려워진 듯하다. 게다가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문제의 파악과 대안의 수립을 더욱 곤란하게 한다. 두 분 모두 지적한 ‘연대의 복원’이라는 화두는 이러한 문제의 실상을 드러내고 대안적 제도를 만드는 데 관건이 될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양 영역에서 두 분과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회 |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고려대 교수(철학)
패널 |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정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