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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300일 넘게 철길 유랑 … 집보다 기차가 편한 레일맨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6.28
조회수
4,808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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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300일 넘게 철길 유랑 … 집보다 기차가 편한 레일맨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3-06-28 00:10 기사원문
 

대한민국 '기차여행 박사' 박준규씨

서울역 플랫폼에서 박준규씨가 환하게 웃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소리만으로도 그는 무슨 기차인지 척척 알아맞혔다.

'본업'은 프리랜서 기차여행 가이드지만 그를 부르는 호칭은 끝도 없다. 출간 1년 만에 1만5000부를 찍은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지식너머)의 공동 저자이자 코레일 고객대표 및 사보기자, KTX 탑승 1호 승객, 영동선 망상역 명예역장, 인터넷 카페 '기차여행기를 적는 사람들'(cafe.daum.net/traintripwrite) 운영자까지.

우리나라에서 달리는 기차란 기차는 모두 타 봤다는 자타공인 '기차여행의 본좌' 박준규(38)씨가 주인공이다. 박씨는 우리나라 기차여행에 관한 모든 정보를 꿰차고 있다. 그는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엔진소리를 듣고 열차 종류를 구분하고, 전국의 주요 열차시간표를 외우고 산다. 전국의 기차역 주변 맛집은 기본이고 기찻길이 지나가는 강원도 두메산골의 아파트 월세 시세까지 안다. 1년 중 300일 넘게 기차를 타고 떠돌아다닌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차사진 촬영장소를 박씨보다 더 많이 아는 이도 드물다. 코레일도 새 관광열차를 내놓을 때마다 그에게 사진 촬영을 맡긴다.

week&도 2010년 기차여행 연재를 진행할 때 박씨와 함께 1년간 기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박씨가 이토록 기차에 빠진 계기가 뭘까.

마침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 개정판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다.

-언제부터 기차를 좋아했나.

2004년 KTX 첫 번째 승객이 되고서 받은 기념품. 무료 승차권도 안 쓰고 간직하고 있다.“초등학교 때 대구 집에서 문경 외갓집에 자주 기차를 타고 갔다. 앉아만 있어도 차창 밖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졌고, 화장실과 매점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었다. 내 집처럼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여행 가이드가 된 계기는.

“남들처럼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하고서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시간 날 때마다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다. 부모님이 최소 3년은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해서 그것만 지켰다. 2004년 건설회사를 관두고 기차 전문 여행사에 들어갔고 1년 만에 프리랜서 가이드로 전업했다.”

-우리나라 기차를 다 타 봤다고.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통일호부터 KTX, 바다열차, 통통통 뮤직카페 트레인, 해랑…. 우리나라 모든 철도 노선을 다 탔다. 포항축구단 경기를 보려고 포항역에서 포항제철소까지 가는 통근열차도 타봤다. 지금은 안 다니는 노선이다.”

-가장 좋아하는 기차 여행지는.

“바다를 끼고 달리는 동해남부선 해운대역~송정역 구간을 좋아하는데, 올 11월 선로가 내륙 쪽으로 직선화한다고 들었다. 기차야 빨라지겠지만 바다 풍광을 못 보게 돼 아쉽다. 정동진역은 300번 넘게 갔다. 그냥 바다만 보고 와도 좋았다. 코레일과 인연이 닿은 것도 1998년 정동진역 운전정리원이었던 김덕래(46) 코레일 강원본부 영업지원 파트장 덕분이다. 대학생 때 처음 알고서 지금까지 각별한 사이다. 기차 사진을 찍게 된 것도 이분 영향이다.”

-2010년부터는 강원도 동해 망상역 명예역장도 맡고 있는데.

“망상역은 망상해수욕장이 개장하는 여름 한철에만 문을 연다. 기차역 숙직실에서 먹고 자며 기차표도 끊어 주고 망상역의 하루를 블로그(traintrip.kr)로 홍보하는 게 명예역장의 일이다. 온라인 활동까지 합하면 지난달까지 3년간 활동했다.”

-기차 촬영장소는 어떻게 발굴하나.

“몸으로 때운다. 여러 번 죽을 뻔했다. 지금은 사라진 영동선 흥전~나한정 스위치백 구간 선로 위에서 구도를 잡다가 열차에 치일 뻔했다. 내 사진 중에 새해 첫날 정동진역 해맞이객을 산 위에서 찍은 사진이 유명한데, 12㎏짜리 카메라 가방을 메고 눈길을 헤치며 야산 두 개를 넘어 찍은 사진이다.”

-요즘은 주로 뭘로 바쁜가.

 
“지난달엔 한국 기차여행을 담은 독일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코레일 사보 취재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간이역에 가서 사진도 찍는다. 혼자 사는데 하도 돌아다녀서 집에 갈 일이 별로 없다.”

-부모님이 걱정 안 하시나.

“마뜩잖아 하시지. 세 살 아래 남동생은 결혼해 자녀 낳고 건실한 가장으로 사는데 나는 마흔 줄에 혼자니까. 결혼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나. 아직은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

-앞으로 포부는.

“아직도 기차를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기차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열차 이벤트, 상품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다. 또 하나, 기차 관련 수집품이 집이 비좁을 만큼 많다. 수집 고수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언젠가 작은 박물관도 열고 싶다.”

-당신이 '고수'가 아닌가.

“사람들이 기차여행의 '본좌'라고 그러더라.”

-우리나라 기차에 아쉬운 게 있다면.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열차 내 충전시설 확충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나라 기차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게 '맛'이다. 일본처럼 지역 특색을 살린 기차 도시락이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나원정.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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