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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교양 함양을 위한 참고자료 1

작성자
정욱재
작성일
2013.07.01
조회수
3,506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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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1839~1914): 미국의 철학자, 논리학자, 자연과학자이자 프래그머티즘의 창시자.
 
우리의 정신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획득되고 수정되고 축적된 엄청난 양의 신념․지식․관습으로부터 성립되는 것이며, 모든 인식은 그 이전 인식의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경험에 의지하지 않는 이성의 힘만으로는 외적 대상을 직접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접수된 소재를 일정한 시간을 통해 해석한다. 즉 ‘인간은 이미 접수되어 있는 인식의 소재를 기초로 해서 현재의 생각을 구성한다.’ 퍼스는 이런 인식의 소재를 ‘기호’라고 불렀다. 우리는 항상 이전의 인식이 다음 인식의 소재로 연속되는 ‘기호과정(semiosis)’속에 존재한다. 예를 들면, ‘흰색이며 짖는 동물→개→진돗개’라고 하는 이해가 진행되는 것처럼, 인식이란 기호를 매개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모든 사상은 기호 속에 존재하며 인식은 계속적인 기호과정에 속에 존재한다. 세계를 이해하려는 정신의 움직임 또한 추론의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하나의 기호이다.

퍼스는 우리의 인식과 행위가 결부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식의 유의미성은 행위와의 관련을 통해 확보된다. 즉 어떤 대상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떤 효과, 즉 행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효과적 측면을 고찰해보야야 한다는 것이다.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은, 주체가 습득한 인식이 현실세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우리 인식의 원천을 명료화하는 입장이다.
 
 
*알튀세(1918~1990) ; 프랑스의 마르크스 철학자
 
마르크스는 , ‘노동의 가치는 노동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요한 생필품의 가치에 상응한다’라는 고전경제학자의 ‘노동’을 ‘노동력’으로 치환하는 것을 통해 고전경제학의 텍스트를 독해했다. 이런 ‘노동’과 ‘노동력’의 차이에서, 알튀세는 마르크스와 고전경제학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비연속성)을 발견했다. ‘노동’에는 질적으로 다른 노동이 있는 데 반해 ‘노동력’은 모든 인간 노동을 일반화․추상화하는 양으로 환산된 노동의 동질성이다.

알튀세는 고전경제학의 텍스트에는 질문이 결여된 답, 질문의 부재 혹은 결여가 존재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낡은 질문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낸 것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는 새로운 답에 어울리는 새로운 질문을 발견해낸 것이다. 답에는 반드시 질문의 구조가 존재하며, 답은 반드시 질문의 구조에 제약받는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고(인식)는 새로운 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 구조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새로운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알튀세는 이런 새로운 ‘질문의 구조’의 발견(혹은 형성)을 ‘인식의 생산’이라 불렀다. 새로운 인식의 생산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과는 다른 지반․지평으로서의 변경이 필요하며, 새로운 질문의 구조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사고(대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질문 그 자체의 구조, 그 구성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엘름슬레브(1899~1965): 덴마크의 언어학자. 1931년 브렌달(Brendal)과 함께 코펜하겐 언학파를 창설. 엘름슬레브가 제창한 수학적 언어이론은 ‘언리학(言理學)’이라 불린다.
 
한 개의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는 변하고, 사회는 진보한다. 오해나 오독(誤讀), 해석의 여지야 말로 사회를 다이내믹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한 가지 의미(사전에 기재되어 있는 최대공약수적인 의미)를 외연(外延, denotation)이라고 하고, 그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개인적․감정적․상황적인 의미를 내포(內包, connotation)라고 한다. 이 외연/내포라는 대립개념을 최초로 의미론에 도입한 사람이 C. K. 오그덴과 I. A. 리처즈이다. 그들은 이 대립개념을 각각 ‘지시기능’과 ‘정감기능’이라고 불렀다.

하나의 단어가 이처럼 두 가지의 의미영역을 갖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 구조를 명확히 했던 사람이 덴마크의 언어학자 엘름슬레브이다. 그는 소쉬르의 언어론을 받아들여, 단어(기호)는 항상 다른 기호(기호)와의 관계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바보’라는 단어는 한 문맥(다른 단어나 상황과의 관계)안에서 비로소 ‘바보’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한 가지의 표현(기호)이 다시 형식(표현)과 실질(내용)을 갖고, 내용 역시 다시 형식과 실질을 갖는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호표현 역시 일정한 한 가지만의 표현이나 내용을 갖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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