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美 기밀 폭로한 前 CIA요원), 러 망명 포기… 美 압박에 국제미아 될 판
| 기사입력 2013-07-03 03:01
푸틴이 '美에 해 끼치지 말라'고 하자 망명 접어… 19개국에 추가 망명 신청
에콰도르마저 비자 취소… 스노든, 오바마 맹비난 '구시대적 억압 행사'
스노든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기밀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러시아 등 19개국에 추가로 망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미국에 가장 비판적이던 러시아마저 망명을 선뜻 받아주지 않자, 스노든이 러시아 망명을 포기한 것이다.
◇푸틴 '망명 조건'에 자진 포기
지난달 23일 홍콩을 떠난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 환승 구간에 발이 묶여 있는 스노든은 2일(현지 시각) 당초 망명을 신청했던 아이슬란드와 에콰도르에 이어 러시아 등 19개국에 추가로 망명을 신청했다. 스노든과 동행하는 위키리크스 법률고문 새라 해리슨에 따르면 망명 신청서를 낸 국가는 러시아·중국·프랑스·독일·베네수엘라·쿠바·스위스·노르웨이 등이다.
스노든이 여러 나라에 동시다발적으로 망명 신청을 한 것은 '미국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망명이 당초 예상보다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많은 나라가 미국을 비판하며 스노든을 응원하고 있지만, 막상 스노든을 받아들여 미국과 전면 마찰을 빚는 것은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조차 이날 기자회견에서 '스노든이 러시아에 남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미국 파트너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노든이 자신을 인권 보호자로 생각하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그런(미국에 해를 끼치는) 활동을 중단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머물 국가를 선택해 그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스노든은 푸틴이 제시한 체류 조건을 듣고 러시아 망명 요청을 철회했다고 리아노보스티통신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공보실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받아줄 듯했던 에콰도르 등도 스노든에게 발급했던 비자를 취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전 세계에 '미국과의 전면 마찰을 감수해야 한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전했다.
◇스노든 '오바마, 악한 방법으로 억압'
'국제 미아(迷兒)'가 될 위기에 처한 스노든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위키리크스에 올린 글을 통해 '오바마가 구시대적이고 악한 방법으로 정치적 억압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오바마가 자신이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외교적 술책'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부통령을 통해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망명을 거부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또 '오바마 행정부가 무서워하는 것은 나같이 힘없는 폭로자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이다. 정보를 알게 된 국민이 분노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정부 본연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폭로 중단하라고?”… 스노든, 러 망명신청 철회
A18면
| 기사입력 2013-07-03 03:11
러, 조건 내걸어 사실상 망명거부… 스노든, 폴란드 등 21개국에 신청
오바마 “정보기관 첩보수집 당연”
[동아일보]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의 통과여객구역에 체류하고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러시아 망명을 신청했다가 철회했다고 2일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망명 조건으로 미국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을 것을 제시하며 사실상 망명 거부 의사를 밝히자 망명 신청을 스스로 철회한 것이다.
인테르팍스통신은 스노든이 머물고 있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영사인 킴 세르메첸코 씨의 말을 인용해 “전날 오후 10시 반 스노든과 함께 있는 영국인 세라 해리슨 씨가 영사관을 찾아와 스노든이 망명 요청 서류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해리슨 씨는 위키리크스의 연구원 신분으로 홍콩에서 러시아까지 스노든과 동행한 인물이다.
폴란드와 인도, 브라질, 스페인 등 여러 나라가 스노든의 망명을 거부하겠다고 밝혀 스노든의 ‘공항 체류’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유무형의 압력을 가해 선뜻 망명 신청을 받아줄 나라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스노든은 이미 자신의 망명을 거부한 아이슬란드와 에콰도르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21개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폴란드 외교부 대변인은 2일 “망명 신청은 받았지만 서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한 뒤 “그러나 서류가 도착한다고 해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은 전했다. 인도 외교부는 2일 “모스크바 주재 인도대사관이 지난달 30일 스노든의 망명신청을 받았다”고 밝힌 뒤 “검토 결과 이를 수용할 이유가 없어 망명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잇달아 망명을 거부당하고 있는 스노든은 이날 자신의 망명을 돕고 있는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인터넷 홈페이지에 성명을 발표하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외교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까지 나를 다루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각국 지도자들에게 나의 망명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적인 지도자의 이런 기만행위는 정의가 아니다”라며 “미국은 그동안 망명을 요청할 권리 등 인권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였는데 현 정부는 이를 부정했다”고 비난했다.
위키리크스는 별도의 성명을 통해 스노든이 이번에 러시아를 포함해 모두 19개국에 망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륙별로는 유럽이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12개국, 중남미가 쿠바 등 5개국, 아시아도 중국 인도 등 2개국이다.
한편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1일 국가안보국(NSA)의 유럽연합(EU) 본부 건물 도청 의혹과 관련해 각국 정보기관이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론을 폈다. 그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그들(각국 정보기관들)은 세상일을 더 잘 파악하고 각국 수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며 “유럽 국가의 수도에서도 내가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는지, 내가 유럽 지도자들과 얘기할 때 발언 요지가 무엇인지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탄자니아를 방문 중인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스노든은 미국의 안보를 해쳤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NSA의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확실한 것은 개인의 자유는 보장됐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잘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A34면4단| 기사입력 2013-07-03 03:04
미국 민주당, 지지층 반발에도 도·감청 폭로한 스노든 사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
盧 NLL 발언은 민주당이 안보 불안 씻어낼 기회였으나 지지층 뜻 따르는 편한 길 택해
지난 한 주 미국 뉴욕·워싱턴을 다녀왔다.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관하는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지난 23일,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북방한계선) 발언 발췌록을 공개한 직후였다. 미국으로 향하는 내내 직업병(病)인지 몰라도, NLL을 피해 '스노든 논란'의 한복판으로 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인 스노든이 그간 미국 정부가 우방과 적국, 개인과 단체를 가리지 않고 도청·감청 활동을 벌여왔다고 폭로한 사건을 놓고 미국 전체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다. TV를 켜도, 신문을 펼쳐도 스노든 사건은 주요 뉴스에서 한참 밀려나 있었다. NSA는 미국 정보기관 중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이다. 스노든의 '활약'으로 NSA의 실체가 드러났고 미국은 세계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스노든은 현재 은신처인 홍콩을 떠나 모스크바 공항에 머물고 있다. 당초 그의 망명에 호의적이었던 에콰도르 등이 말을 바꾸면서 2주일 가깝게 공항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국제 미아(迷兒) 신세가 됐다. 이쯤 되면 스노든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의 초점이 되고도 남을 듯싶었다. 그러나 미국에 머무는 동안 미국인들이 스노든 문제를 화제로 삼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뉴욕 TV 방송국은 백인 주부를 구타하는 흑인 도둑의 모습을 되풀이해서 보여줬고, 신문의 머리기사는 대법원의 동성(同性) 결혼 허용 판결 같은 국내 뉴스가 차지했다.
스노든과 관련된 뉴스로 눈길을 끈 것이 있다면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넷루츠 네이션(Netroots Nation)'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한 소식 정도였다. 펠로시는 우리로 치면 '강남 좌파'형 정치인이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그는 재산만 우리 돈으로 500억원에 육박하는 갑부다. 평소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자처해 온 그가 민주당 좌파 핵심들이 총집결하는 넷루츠 네이션 집회에 참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단체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2008년과 2012년 연거푸 대선 승리를 가져다 준 공신(功臣)이기도 하다.
오바마 역시 매년 넷루츠 네이션 집회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고, 지난달 말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집회에는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펠로시는 바로 그 집회에서 스노든 문제를 거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민주당 지지층이 듣고 싶어하지 않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펠로시는 '여러분은 스노든을 영웅 취급하고 싶겠지만 미국의 안보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스노든은 미국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거짓말" '꺼져' 같은 고함과 야유가 쏟아졌다.
펠로시를 보면서 한국 상황을 떠올렸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록에 대해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짜고 고의적으로 왜곡·훼손한 내용'이라고 발끈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 발언의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에 나선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체 맥락을 봐야만 납득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면 그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부인해도 노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에게 '괴물 NLL… NLL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고…' 같은 말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민주당이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패한 가장 큰 이유는 안보 문제 등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NLL 파동은 민주당에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발언에 분명한 선을 긋고 난 다음, 여권(與圈)이 국정원 문서 공개 과정에서 보여준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한 정략적 접근을 정조준했다면 야권 지지층 일부가 반발했을지 몰라도 국민 대다수의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6년 전 남북 회담록을 놓고 나라 전체가 홍역을 치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지층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편한 길을 택했다. NLL 문제를 정쟁(政爭) 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미국 민주당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거듭 고배를 든 한국 민주당의 차이를 새삼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박두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