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8일 첫 외부방문… 지중해 이주자 수용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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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13-07-02 22:26 | 최종수정 2013-07-02 23:17
ㆍ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찾아 ‘보트 피플 참사’ 추모와 위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람페두사 섬은 아프리카 이주자들이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다. 이탈리아 땅이지만 지리적으로 북아프리카에 가까워, 튀니지나 리비아에서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이주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섬 중 하나다.
튀니지에서 람페두사까지는 약 113㎞, 시칠리아까지는 약 176㎞다. 올 상반기 이탈리아 영토로 진입한 이주자 8000여명 가운데 3600여명이 람페두사 섬에 내렸다.
교황 프란치스코(77)가 바티칸 외부의 첫 공식 방문지로 지중해 람페두사 섬에 있는 아프리카 이주자 수용소를 선택했다. 교황청은 성명을 통해 교황이 오는 8일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 방문지로 소외된 주변부를 고른 것에 대해 교황이 ‘가난한 자들의 교회’를 추구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황청은 “교황이 람페두사 섬 부근에서 발생한 조난사고에 대해 깊이 마음쓰고 있다”며 “바다에서 목숨 잃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람페두사 섬에 정박한 생존자들과 다른 이주자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교황의 첫 해외 방문지는 브라질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람페두사 시장이 이주자들이 타고 온 나무보트의 파편으로 만든 십자가 목걸이를 교황에게 선물하고 람페두사로 초청하면서 계획이 변경됐다.
교황청이 성명에서 언급한 조난사고는 지난달 16일 시칠리아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저인망어선에 딸린 참치 포획용 우리에 매달려 이탈리아로 들어가려던 이주자 7명이 익사했다. 우리에 매달려 있다가 힘에 부친 이들이 배에 오르려 하자, 저인망어선의 선원들이 배와 연결된 로프를 끊어버렸다고 생존자들은 전했다.
교황은 람페두사 섬의 이주자 임시수용소를 방문해 열악한 생활 환경을 둘러보게 된다. 이 시설은 최대 8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나 실제로는 2000명이 넘는 이주자가 체류하면서 이탈리아의 입국허가가 나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2009년에는 이주자들이 수용소 울타리를 부수고 항의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2011년 리비아 혁명 이후 유럽 이민길에 오른 ‘보트 피플’이 늘면서 람페두사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람페두사 인구는 4500여명에 불과한데 2011년 람페두사로 몰려든 난민은 5만4000여명이었다.
람페두사를 관할하는 프란체스코 몬테네그로 대주교는 “교황의 방문은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라며 “교황이 첫 방문지로 람페두사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지난 3월 즉위 때부터 가톨릭 교회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하며 전임자들과 다른 행보를 지속해왔다. 교황은 이번 여름휴가 때 역대 교황들의 휴양지인 카스텔 간돌포로 이동하지 않고 바티칸에 남아 있기로 했다.
5일 발표할 첫 회칙 ‘신앙의 빛’에도 교황의 신념을 구현한 내용이 담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칙은 교황이 내는 문서 가운데 가장 권위가 높은 것으로, 전임 베네딕토 16세는 각각 자선과 사랑, 희망에 관한 회칙 3가지를 발표한 바 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