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여인천하… 원톱 여배우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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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13-07-03 03:14
[동아일보]
‘불의 여신 정이’ ‘여왕의 교실’ ‘금 나와라 뚝딱’의 공통점은?
첫째 현재 방영 중인 MBC 드라마라는 것이다. 둘째는 세 작품 모두 여배우가 원톱으로 주연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한 채널의 프라임 타임을 월화는 문근영(26), 수목은 고현정(42), 주말은 한지혜(29) 등 여배우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TV 드라마에도 여풍(女風)이 부는 걸까. 여배우가 이끌어가는 ‘여성 주연’ 드라마가 요즘 방송가의 트렌드다.
3일 시작하는 KBS ‘칼과 꽃’은 고구려 영류왕의 딸 무영 공주(김옥빈)가 주인공이다. 무영 공주는 아버지를 죽인 연개소문의 서자 연충과 사랑에 빠지고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엄태웅(39) 김영철(60) 최민수(51) 등 남성 출연진이 쟁쟁하지만 엔딩 크레디트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이는 26세의 여배우 김옥빈이다.
지난달 29일 시작한 SBS ‘결혼의 여신’의 주인공도 남상미(29)다. ‘결혼의 여신’은 남상미 외에도 조민수(48) 이태란(38) 장영남(40) 등 다양한 나이대의 여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아 극을 끌고 간다. 이 밖에 KBS ‘최고다 이순신’, SBS ‘원더풀 마마’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리고 지상파 3사의 아침 드라마가 모두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우거나 여배우의 비중이 큰 드라마다.
이 같은 경향은 올해 상반기부터 두드러졌다. KBS ‘직장의 신’, MBC ‘백년의 유산’,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모두 김혜수, 유진, 김태희 같은 여배우의 역할이 컸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여성의 권익 향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최근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그릇 만드는 이) 같은 개척자부터 법조인, 광고기획자, 방송작가 같은 전문직까지 직업이 다양하다. 사극이건 현대극이건 사랑이나 성공을 대하는 태도도 수동적이었던 예전 여주인공들과는 다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과거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캔디형 신데렐라, 욕망에 충실한 악녀 등 일정한 유행을 탔다면 요즘에는 캐릭터가 다양해지는 추세”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배우의 비중도 커지고, 여성 원톱 드라마도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남성의 성공담은 야망이나 권력욕으로 인한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의 성공담은 소외됐던 인물이 자아실현을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그리는 편”이라고 해석했다.
남성 스타 중심의 영화판에서 설 곳을 잃은 여배우들이 드라마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 상반기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7번방의 선물’(류승룡) ‘베를린’(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은밀하게 위대하게’(김수현) ‘신세계’(이정재 최민식 황정민)는 남자 배우들의 영화였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여배우들이 탐낼 만한 캐릭터가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경향은 여배우들에겐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인 동시에 연기력을 검증받는 냉혹한 심판대가 되기도 한다. 정 평론가는 “여성 원톱 드라마의 경우 흥행에 실패하면 여배우 탓이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더 혹독하게 연기력을 평가받게 된다”고 말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