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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 1부. 오렌지색 코트를 입은 소년, 느닷없이 배우가 되다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3
조회수
2,805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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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 1부. 오렌지색 코트를 입은 소년, 느닷없이 배우가 되다

네이버연예| 기사입력 2013-06-18 10:49
봉태규는 지난 2000년 임상수 감독의 영화 ‘눈물’로 데뷔, 어느덧 데뷔 13년 차의 배우가 됐다. 2003년 ‘바람난 가족’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면서 널리 유명세를 탔고,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시트콤 ‘논스톱4’에서 활약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광식이 동생 광태’ ‘가족의 탄생’ ‘두 얼굴의 여친’ 등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로 호평 받았지만 ‘가루지기’ 이후 소속사 문제와 부친상 등의 아픔을 겪으면서 공백기를 가졌다.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달 ‘미나문방구’ 개봉에 이어 현재 SBS 예능프로그램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에서 ‘봉기자’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배우의 길에 접어든 봉태규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네이버 스타칼럼 독자 여러분. 봉태규입니다. 제가 매일 네이버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여러분을 찾아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너무나 반갑고 영광입니다. 아무쪼록 저의 스타칼럼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 압구정에서 ‘길거리 캐스팅’…‘이거 사기 아냐?’

데뷔 전에 저는 원래 미대 입시를 준비했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도 학원비를 제가 벌었거든요. 그런데 팔이 부러져서 실기 시험을 못 보는 바람에 재수하는 상황이 된 거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 때는 학원비나 이런 게 만만치 않았어요. 재수할 때 6개월 알바 하고 돈을 모아서 학원을 다니곤 했어요. 그 때가 1월이었는데 압구정동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러 갔었거든요. 어떤 분이 오시더니 “영화 만드는데 와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당시에 길거리 캐스팅을 이용한 사기가 많을 때여서 의심을 했죠.

명함에 영화사 이름이 있는데 ‘반칙왕’을 만든 회사더라고요. 저는 진짜 영화사에 가면 방송국처럼 연예인이 많을 줄 알았어요. 구경하러 갔다가 연출부한테 붙잡혔는데 막 이상한 걸 물어보더라고요. ‘집 나온 적 있나’ 이런 것들. 오디션장 문을 살짝 여니까 웬걸. 동네 양아치들은 다 모여 있는 거예요. ㅋㅋ 재미있는 건 그때 절 붙잡은 분이 지금은 유명해지신 최동훈 감독님이셨어요. 말도 잘하시고 재밌더라고요. 연출부 형들이랑 정말 재밌게 얘기하고 놀았는데 대본을 던져주더니 연습해 오래요. 

사실 그때 제가 살을 14kg 뺐어요. 원래는 아주 통통했죠. 명함 받은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오렌지색 떡볶이 코트를 입고 있었어요.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봐서 캐스팅 된 건데 대신 조건을 걸었어요. 한 달 반인가 동안 살을 빼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출연할 때 계약서를 쓰잖아요. 처음 쓰는데 몇 조 몇 항에 ‘위 계약을 어길 시에는 위약금을 문다’는 그런 조항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겁이 나는 거예요. 계약금도 받았고 살 못 빼면 돈 물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ㅠㅠ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하루에 반 끼 먹고 걸어 다니면서 살을 뺐어요. 68kg에서 54kg까지 뺐죠. 깡말라서 악에 받친 모습을 원하셨어요. 솔직히 집 나오고 예민한 애가 퉁퉁하면 이상하잖아요. ‘눈물’ 촬영하면서도 계속 다이어트를 했어요. 그 당시 입은 옷이 다 여자 옷이었다니까요. 지금은 살을 찌우고 빼면서 외형적 변화를 줘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몸이 상하고 무리를 줘서 억지로 해야 하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저의 배우 인생이 시작됐답니다.

# 임상수 감독은 무섭다? 사실 그건 ‘마케팅 포인트’!

‘눈물’ 메이킹 필름을 보면 임상수 감독님이 당시 함께 출연했던 형에게 연기 지도를 하면서 거칠게 몰아붙이는 장면이 나와요. 보신 분들은 어쩌면 좀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실 그건 마케팅 포인트였답니다.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저희에게 아주 잘해주셨어요. 하하. 

영화사 입장에서도 홍보는 해야 하는데 미칠 노릇인 거죠. 아무것도 없는 거에서 뭐를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나쁜 영화’에 나온 친구들은 진짜 영화 속 캐릭터의 삶을 사는 그런 애들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애들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 머리를 짜낸 거예요. 공포 분위기를 일부러 조성하자고. 그 형이 도망 갈까봐 입구를 막아서고 밑도 끝도 없이 몰아붙여서 작전을 짠 거였죠. 사실 그렇게 해도 되는 신이었고요.
 

 

당시 인터뷰를 하는데 감독님이 “길거리 캐스팅한 네 명과의 작업이 어땠냐”고 물으니까 “네 명 다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ㅋㅋ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런 말을 하셨겠어요. 입봉작이 ‘처녀들의 저녁식사’였는데, 대단한 연기파 배우들이 나오시잖아요. 근데 우리는 설명을 해도 아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니까…. 그래도 또래고 하니까 배우들끼리는 친했어요. 

# 한때 나에게 ‘배우’는 ‘취미’였다

스물세 살 정돈가 제가 했던 인터뷰를 보면 “배우를 취미로 하는 거”라고 했어요. 일로 이걸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운이 좋아서 하다 보니 지금껏 하게 된 거죠. 그때는 큰 자각이 없었어요. 미술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한 편 한 편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재밌어지고 책임감이 생기면서 제대로 해봐야겠다 싶더라고요.

‘눈물’ 개봉 당시 인터뷰에도 “배우를 계속 할 거냐”는 질문에 다들 “그렇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다. 봐서”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생각이 바뀐 건 아마 ‘바람난 가족’ 쯤이었을 거예요. 물론 그 전의 현장도 좋긴 했죠. 나이도 어리고 많이 챙겨주기도 했으니까. ‘바람난 가족’을 하면서 연기가 되게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전 문소리 누나가 무서웠어요. ‘오아시스’를 봤는데 정말 놀라웠거든요. 그 당시 저는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게 뭔지 모르는 애였으니까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놀라움이 무서움으로 변형돼서 다가온 거죠. 

‘바람난 가족’이 잘 안 되면 연기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어요. 배우를 직업으로 확 받아들인 상태였다면 몰라도 그런 진지한 마음도 없으니까 마냥 불안했던 거죠.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였고. 당시 개봉도 아주 늦춰졌었다가 관객들에게 투자금을 받아서 개봉을 하게 된 거죠. 아마 크라우드 펀드의 최초일 거예요. 예술 영화고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이 있어서 배급사 잡기가 힘들었거든요. 그 사이 일도 쉬었고 ‘바람난 가족’까지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잘 돼서 다행이에요.

# ‘운’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려원씨랑 같이 출연한 ‘두 얼굴의 여친’이 진짜 운이 없었어요.ㅠㅠ 그때가 연휴 7~8일 정도의 아주 긴 추석이었거든요. 다들 해외여행 떠나고 최고의 비수기였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추석이 비수기일 거라고. 게다가 저희는 작업을 정말 열심히 재밌게 해서 자신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기자 시사를 3주 전에 했다니까요. 보란 듯이.
 
 

 

예전에는 결과에 굉장히 집착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에요. 누구를 탓하겠어요. 영화도 잘 나오고 개봉도 추석에 했는데 그때가 비수기일거라고 아무도 상상을 안 했죠. ‘광식이 동생 광태’는 11월 비수기에 개봉을 했는데도 첫 주에 백만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터졌죠.

그래서 운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취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고요. 계산하거나 예측할 수 없죠. 공평하게 나눠진 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예요.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거죠. 전에는 결과에 신경 쓰느라고 과정을 즐기지 못했어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어느 순간 내 행동 하나하나를 재단하고 있더라고요. 노력은 수치로 나타내거나 문서화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건 잘못된 거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작품이 잘 안되거나 누가 별로라고 할 때 물론 제가 한 작품이니까 항변은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상하다고 하는 것도 인정하는 게 멋있는 거지, 그걸 인정 안 하는 것은 비겁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젠가 한 프로그램에서 “나는 그 영화를 왜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정말 비겁했죠. 
 
 

 

# 홍상수 감독님, 연락주세요

사실 저는 예민하기로 유명했어요. 관계자들 사이에서 소문도 안 좋았을 거예요. 굳이 항변하자면 쓸데없는 것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조금 더 치열하게 한 것뿐이죠. ‘더, 더’ 하면서 몰아붙이고 안 되는 것에 대해 빨리 인정을 안했어요. 연출자를 일주일에 여섯 번 만난 적도 있다니까요. 딱히 할 얘기도 없으면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촬영이 없어도 막 현장에 가고 추워도 차 안에 있지 않고 그랬어요. 그게 열심히 하는 배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좋은 게 절대 아니에요. 상대 배우들에게 괜한 부담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얼마나 싫었겠어요. 그런 행동들은 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하는 게 배우의 몫이니까요.

이제는 과정을 좀 더 즐기고 싶어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고요. 예전에는 이런 저런 얘기들이나 주변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하지만 이젠 내가 좋아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요. 스스로 중심을 더 잡고 있는 것이 책임감 있는 모습인 것 같아요. 차기작은 아직 고르는 중이에요. 지상파든 종편이든 상관없고 작품의 규모도 상관없답니다. 독립영화에도 관심 많아요.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정말 완전, 꼭이요. 이 글을 보신다면 꼭 한 번 연락주세요.^^

1부는 이만 줄이고, 2부에서는 제 독특한(?) 취미 생활과 ‘화신’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더욱 재미있을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글 봉태규
편집 황용희 대표(아시아경제 스포츠투데이) zoneheeya@stoo.com
사진 김효범 작가(로드스튜디오) 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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