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號에 '하버드' '예일' 들어간 업체들 소송 비상

A11면| 기사입력 2013-07-05 03:05
 

4일 오후 서울시내 곳곳에‘하버드’,‘ 예일’등 미국 유명 대학 명칭을 쓰고 있는 중소 학원 간판이 매달려 있다. /이동휘 기자

[美법원, 교포 운영 '예일아카데미' 상표권 침해 인정 판결]

동네마다 하버드○○, 예일××… 이름 그냥 가져다 쓴 업체 널려

전문가 '소송땐 美대학이 유리'

2006년엔 국내 '하버드 치과' 소송 걸려 병원 이름 바꾸기도

하버드·예일·프린스턴 같은 명문대 이름을 교육 분야에서 무단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미국 법원 판결이 나왔다. 미국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 등에서 '예일 아카데미'라는 상호(商號)로 미국 대학 입시 학원을 운영해 온 재미 교포 테리 양씨는 지난 5월 예일대 측이 캠던(Camden) 연방법원에 제기한 상표권 침해 소송과 관련, 다음 달 31일부터 상호를 'Y2 아카데미'로 변경하기로 예일대 측과 합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 보도했다.

예일대 측은 소장(訴狀)에서 '코네티컷 소재 예일대는 미 대통령 4명을 포함해 정부·연구·과학·경제 분야에서 뛰어난 지도자를 여럿 배출한 명문교"라며 '예일의 명성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통용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양씨는 자기 성(姓) '양(Yang)'과 아내의 성 '이(Lee)'의 앞 두 글자씩을 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학원 간판을 예일대 상징색인 파랑과 하양으로 만든 것도 파란색을 좋아해서 그런 것뿐이라며 '예일 아카데미와 예일대가 헛갈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법원의 판결로 국내에서 미국 유명 대학의 이름을 쓰고 있는 업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대학들이 교명(校名)이 도용됐다며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거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하버드, 예일 등 미국의 유명 대학 명칭을 쓰고 있는 업체는 대부분 학원, 독서실, 병·의원 등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등록된 학원과 독서실 중 '하버드' '예일'을 상호에 쓰고 있는 곳은 각각 16개, 52개로 나타났지만 등록 상호와 실제 사용 상호가 다른 경우가 많아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예일'이 들어가는 어학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은 '소송이 들어온다면, 미국 예일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한자(漢字)로 예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고 반박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예일여고 관계자는 '예일고의 예일(禮一)은 설립자 이름(김예환)과 예절 제일이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다'며 '만약 예일대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재단 차원에서 대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 생각과 달리 전문가들은 명의 도용 관련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국 대학이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실제 미국 하버드대는 국내 로펌을 통해 2006년 서울중앙지법에 '하버드'를 상호(商號)로 쓰는 국내 병원에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적이 있다. 당시 하버드대로부터 소송을 당한 치과는 결국 상호를 바꿨고, 하버드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다른 병원들도 국제특허법률사무소가 보낸 내용증명에 따라 병원 명칭을 변경했다.

한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상표는 외관, 관념, 칭호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식별하는데, 문자 상표는 칭호가 가장 중요하다'며 '아무리 한자로 예일이라 썼더라도 똑같이 읽힌다면 충분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10여년 전 하버드라는 명칭을 교재 이름으로 쓴 업체와 하버드대 사이에 송사가 벌어졌다'며 '당시 대법원은 하버드대 손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학원에 저작권 침해이니 (외국 대학 이름을) 쓰지 말라고 지침을 내릴 수는 없다'며 '미국 유명 대학이 자기네 학교 이름이 들어간 국내 업체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교육청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유명 대학들이 교명을 브랜드로 관리하는 것과 달리 국내 대학은 일부를 제외하곤 교명 도용과 관련해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연세대 측은 ''연세' 브랜드에 대해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았고, 내부 관리 규정도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고려대는 상표관리위원회에서 학교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며 '국내 대학 중 브랜드 관리 지침이 있는 곳은 두세 군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2008년부터 광고 목적으로 학교 명칭과 로고를 쓰는 것을 금지하고, 사용 중단 요청에도 시정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