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제조 내세우던 중국, 기술력으로 전쟁 선포
| 기사입력 2013-07-05 03:02
中, 세계 IT 업계에 도전장
중국이 심상치 않다, 화웨이, 세계 가장 얇은 스마트폰 개발 노키아 인수 추진…
삼성·애플과 경쟁 연간 5조원 이상 연구개발에 투자
세계 IT 선두 기업 맹추격, 유튜브 총 시청 시간 깬 '요큐토도우' 중국판 카톡 '위챗' 사용자
3억명 돌파 자국 2억4000만 이용자 기반 삼아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도 점점 커져
지난달 세계 IT업계는 중국의 화웨이(華爲) 때문에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화웨이의 리처드 유(Richard Yu) 소비자비즈니스 부문 회장이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노키아를 인수할 생각이 있다'고 천명한 것이고, 또 한 번은 이날 화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 6.18㎜의 스마트폰을 선보인 것이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면서 위상이 추락했지만 2011년까지만 해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 기업이었다. 6~7년 전에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장악한 '넘지 못할 산'과 같은 존재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노키아의 절반도 팔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웨이의 이런 행보는 삼성전자와 애플에 도전장을 내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두께 6.18㎜ 스마트폰도 충격이기는 마찬가지다. 첨단 제품을 얇게 만드는 것은 IT산업에서 기술력의 잣대 중 하나다. 삼성전자도 두께로 일본 전자업체들을 누른 전례가 있다. 4년 전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얇은 두께 29㎜의 LED TV를 선보이며, 일본 소니와의 TV 기술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화웨이가 이제 스마트폰에서 두께로 삼성전자·LG전자·애플과 경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기술로 승부를 걸어오는 중국 IT기업
중국 IT업체들이 세계 IT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중국 IT 경쟁력은 주로 '값싼 제조업 파워'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컨대 2004년 말 중국의 신흥 제조기업 레노버(聯想)가 미국 IBM의 PC사업 부문을 17억5000만 달러(약 1조9800억원)에 인수했을 때의 시각이 그랬다. 미국 언론은 '미국의 심장이 팔렸다'고 호들갑이었지만, 전문가들은 'PC 시장은 더 이상 기술력이 아닌, 저가(低價)의 제조 능력에 좌우되는 시장'이라고 봤다. 애플의 아이폰을 제조하는 폭스콘도 기술력보다는 저가 제조 능력이 주목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엔 기술력으로 세계 선두권 기업을 압박해온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가장 선봉에 서 있다. 7만명의 연구개발자를 보유하고 연간 5조원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으며 글로벌 Top 기업들을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다.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중국 차이나모바일이 6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이동통신업체로 부상했다. 인터넷에서도 거대한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위챗(Wechat)·시나웨이보·타오바오(TaoBao) 등이 잇따라 세계 1위 자리에 다가서고 있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 부품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500여개 팹리스(Fabless) 기업을 보유한 국가다. 팹리스는 '팹(Fab·공장)이 없다'는 뜻으로, 각종 IT제품의 두뇌 역할을 할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다. 중국 팹리스 기업들은 작년 71억2000만달러(8조700억원)의 규모였으며, 3년 뒤엔 2배(137억8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
유튜브·아마존 상대하는 중국 기업 속속 등장
작년 7월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미국 유튜브는 굴욕을 당했다. 중국 업체 요큐토도우(Youku Todou)가 총 시청 시간 16억 시간을 기록, 유튜브(13억7400만 시간)를 넘어선 것이다. 요큐토도우는 자국 온라인 동영상 사용자 4억5000만명에 기반해 유튜브와 본격 경쟁에 나선 셈이다.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은 3752억달러(약 425조원)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우리나라(77조원)의 5배가 넘는다. 중국은 이런 규모를 바탕으로 '미국의 IT 전략'을 따라 하고 있다. 미국은 유튜브·아마존닷컴·페이스북·트위터·이베이 등 신규 인터넷 서비스를 자국 시장에서 성공시킨 뒤, 세계 곳곳에 퍼트렸다. 중국에는 위챗·타오바오·티몰·시나웨이보가 있다. 2011년 1월 첫선을 보인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은 올 1월 벌써 3억명을 돌파했다. 중국어·영어·한국어·베트남어 등 18개 언어를 지원하면서 작년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말레이시아에선 벌써 전체 스마트폰 이용자의 50%가 위챗을 쓸 정도로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곧 북미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쇼핑 시장에선 미국 아마존과 이베이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규모만 보면 중국 업체가 이들을 앞선다. 중국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서비스 타오바오(TaoBao)·티몰(Tmall)은 총 거래액이 1712억달러(194조원)로, 아마존(878억달러)과 이베이(689억달러)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규모로 따지자면 세계 1위인 셈이다. 이는 자국의 2억4000만명이라는 온라인쇼핑 이용자에 기반을 둔다. 중국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작년 2000억달러로, 미국(2260억달러)과 비슷하다. 1~2년 내 중국이 앞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 트위터와는 중국 시나웨이보가 대적한다. 시나웨이보는 작년 말 이용자 수 4억명을 넘으며, 트위터(5억명)와 격차를 좁혔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미국의 아성을 깬다면, 그건 중국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차세대 통신시장에서도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1억5000만명의 휴대폰 가입자라는 든든한 후원군을 등에 업고 차이나모바일·차이나유니콤·차이나텔레콤 등 중국 이동통신업체들은 독자적인 기술방식의 TD-LTE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 하반기 190Mhz의 주파수를 이 중국형 LTE 용도로 할당할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바일아시아엑스포 2013'에 참가한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중국 이동통신 서비스는 아직 최고 수준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중국 기업 부스를 보니 기술적으로 TD-LTE를 상당히 준비해온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유럽·미국을 제외하고 독자적인 통신 기술 표준을 주도한 사례는 아직 없다. 국내에서 한국식 표준으로 부르는 'CDMA'는 해외에선 미국식으로 통한다. 미국 퀄컴이 주도해 유럽의 'GSM'과 경쟁한 표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이 1990년대 독자 기술 PDC를 자국 표준으로 삼았지만, 이 기술은 좁은 일본 시장에서만 쓰이다가 없어졌다. 중국이 유럽·미국의 아성을 깨기 위한 도전에 나선 것이다.
[성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