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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서전서 다치바나 다카시-이어령 대담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5
조회수
5,417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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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서전서 다치바나 다카시-이어령 대담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3-07-04 17:07 기사원문

 

다치바나 다카시(왼쪽), 이어령(오른쪽).

'저에게는 어머니의 몸이 첫 번째 책이었다. 어머니의 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이어령)

'저는 굉장히 책을 많이 썼고, 쓰는 걸 업으로 하고 있지만, 책을 쓴다는 건 바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던히 읽을 수밖에 없다.'(다치바나 다카시)

왜 책을 읽는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이 이 질문에 답을 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79)와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73)가 4일 일본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디지털시대, 왜 책인가'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다치바나는 언론인 출신으로 '도쿄대생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 등 인문ㆍ사회ㆍ과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의 지성이다. 3만권이 넘는 책을 보관하기 위해 '고양이빌딩'이라고 불리는 서재를 짓기도 한 손꼽히는 독서광이다.

먼저 이 교수는 '많은 대중이 아니라 눈뜬 소수자들의 축제를 갖게 됐다'며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은유로 인사말을 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첫 독서경험을 들려줬다. 그에게 첫 번째 독서는 돌상에서 집어들었던 책, 두 번째는 어머니가 품 안에서 읽어준 '천로역정' '장발장'과 같은 소리로서의 책이었다고 한다. 세 번째 경험은 서당에서 만난 '천자문'이다. 그는 '하늘이 검고 땅이 노랗다는 최초의 책에 좌절했다'며 '처음으로 천자문으로 접한 세계는 내가 본 세계와 달랐고, 한자적 교양을 몸으로 체득한 세계에 대립시킨 것이 내 첫 독서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디지털 시대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 딱 하나의 책이 있다면 기억에 없는 책이다. 끝없이 책을 읽게 하고, 꿈꾸게 하는 그런 책은 어머니의 품에서 읽은 생명의 근원적인 책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그 책을 읽는 경험을 바로 디지털 시대의 기술이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책을 읽는 '공부'라는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한자인데도 '공부'가 중국어로는 '시간, 여유가 있느냐?'의 뜻이고, 한국에서는 '스터디(Study)한다'는 뜻이다. 일본어로는 '아이디어'를 말한다. 세 말을 합치면 기가 막힌다. '쉬고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생각이 나온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책의 효용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다치바나는 '책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200여 명의 청중에게 질문하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이는 바로 책을 만들고 쓰는 사람들"이라면서 '보통 학생 시절에 가장 많이 읽다가 책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게 되면 책을 읽는 일이 급격히 줄어든다. 책의 성격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7월 개봉 예정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 영화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다'의 비평을 쓰기 위해서 한 독서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자신이 항공공학에 관한 기초적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400자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 막대한 분량의 독서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 비행의 시대'를 다룬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항공공학,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관동대지진 등에 관련된 수백 권의 책을 읽었고, 전후 도쿄대 연구소 변천의 역사까지도 이해하게 됐다'면서 '글쓰기의 기초는 방대한 독서에 있다'고 조언했다.

인문, 사회, 우주,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글쓰기 작업을 펼치는 일본 작가 다카시는 인간 존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은 바로 '독서'라고 말한다. 삶 자체가 '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카시는 책을 읽는 행위가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이야기했다.

그는 '인생의 고비마다 독서를 통해 의식의 전환을 이뤘다"고 말하면서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직장 선배들이 책을 읽는 걸 보면서 내가 소설책만 읽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의 독서가 편식이었다는 걸 알았던 거죠. 독서 편식자는 이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가치 있는 것들의 태반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방면의 독서를 시작했어요.'

[도쿄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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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140자보다 책 한 권 … 양국 미래 끌어갈 힘이다

중앙일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TOP기사입니다.19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3-07-05 00:10 | 최종수정 2013-07-05 00:27 기사원문
 

'한·일 대표 지성' 이어령·다치바나 다카시, 책의 미래를 말하다

디지털 세상에서 책은 어떤 길을 열어줄까.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이어령(왼쪽)과 다치바나 다카시가 4일 자리를 함께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욘사마(배용준)나 근짱(장근석)이 왔으면 이 자리가 터져나갔을 텐데 역시 책의 시대는 아닌가 보네요. 독서축제는 이제 소수자들의 축제가 된 것인가요.”

 4일 오후 일본 도쿄 오다이바(お台場) 빅 사이트 전시장. 이어령(79) 전 문화부 장관이 농담을 던졌다. 그의 재치 있는 한마디에 객석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졌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일본의 지성으로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73)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이 함께한 행사장에는 '한일 거장의 만남'이란 문구가 붙었다. 그들을 연결한 건 2013 도쿄국제도서전. 올해로 20회를 맞은 도쿄도서전에서 한국이 처음 주빈국으로 초청받았다. 두 석학은 '디지털 시대, 왜 책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치바나는 일본에서 '우리시대 최고의 제너럴리스트''지(知)의 거장'으로 꼽힌다. 인문·사회 분야를 뛰어넘어 뇌과학과 정보학·우주공학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저술활동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소장해온 3만 여권의 책을 보관하기 위해 도쿄에 지상3층 지하1층의 빌딩(일명 고양이빌딩)을 직접 지은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둘도 없는 책 마니아인 두 사람은 '디지털시대의 책'이란 주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책과 독서, 그리고 인생에 얽힌 추억담도 술술 풀어놓았다. 그들의 격의 없는 얘기에 150여 청중이 숨을 죽였다.

 이 전 장관은 어머니와 어린 시절의 일화부터 소개했다.

 “첫 책은 돌상에서 들어올린 책이었다. 그 다음은 어머니께서 읽어 주신 책들이었다. 어머니의 말과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수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난 상상력을 길렀다. 내 나이가 여든이니 정말 에누리 없이 80년간 책 체험을 해온 셈이다….”

 그는 “글이란 말의 어원은 '긁는다'는 뜻이다. 암벽을 긁고, 흔적은 남기는 것이다. 글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말은 사라지지만 긁은 것은 남는다. 그리움처럼 긁히고, 상흔이 남는 것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상흔이 남는다”며 책의 생명력을 예찬했다. 다치바나는 반대로 최근의 에피소드로 입을 열었다.

 이달 20일 일본에서 개봉 예정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신작 '바람 불다(風立ちぬ)' 이야기였다. 다치바나는 이번 영화 팸플릿에 추천글을 쓰게 됐다고 한다. 불과 2400자 분량이었고, 그나마 삽화나 사진이 들어가면 글자수는 더 준다.

 하지만 이 얼마 안되는 작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사 읽었다. '바람 불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전투기 제작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다치바나는 추천사를 쓰기 위해 과거 전투기 제작과정을 그린 역사책, 전투기 소재인 알루미늄 합금을 다룬 전문서적, 영화에 등장하는 과거 실존인물의 자서전 등 수십 권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2400자를 쓰기 위해 산더미 같은 책을 사 읽는 것처럼 글쓰기의 기본은 독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책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문명을 유지시키는 힘이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다치바나는 “트위터의 140자를 읽기보다, 적어도 A4 두 장 분량의 글을 읽거나 새로 나온 책 한 권을 읽는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의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날 대담의 주제처럼 디지틀 시대에 위기를 맞은 책과 독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 전 장관은 “종이책을 단순히 사이버 공간에 옮겨 놓으면 전자책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머니가 읽어주는 책처럼 시각과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전자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몸'과 같은 아날로그적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합체된 '인터페이스'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지론을 재차 강조했다.

 다치바나는 “알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더 알고, 또 더 알고 싶어한다”며 “인간의 이런 지적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또 인간의 뇌구조에 변화가 오지 않는 한 책의 세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도 포함됐다.

 이 전 장관이 강조한 건 아시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기억'의 중요성이었다. “같은 히로시마라고 해도 일본인은 원폭의 기억만 갖고 있고, 한국인·중국인은 청·일전쟁의 대본영으로서의 히로시마를 기억한다.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선 서로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아시아 공통의 집단기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치바나는 “한국인의 감정을 일본이 언제 이해하게 될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 모른다”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이어령=1934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역임. 현재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이자 본사 상임고문. 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느껴야 움직인다』 등.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년 일본 나가사키 출생. 논픽션 작가·평론가. 도쿄대 불문과 졸업.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불린다. 교양과 지식의 가치를 옹호해왔다. 저서 『21세기 지의 도전』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지식의 단련법』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등.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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