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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5
조회수
5,686
첨부파일
-

“내가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말고 외식해라”

한겨레| 기사입력 2013-07-04 15:15 | 최종수정 2013-07-04 17:15 기사원문
 

[한겨레] [esc]‘웰 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

내 삶의 아름다운 완성을 기획하는 ‘엔딩 노트’

“빈소는 장미로 꾸미고 탱고 틀어달라” 이색 유언 눈길


어느 헤어디자이너는 자신의 장례식때 붉은 장미로 장식해주길 부탁했다. 한 기업가는 자식들에게 제사 대신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고 식비는 돌아가면서 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삶에서 마지막 성숙의 기회라는 죽음, 당신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장례버스 안에서

흘러나온 고인의 목소리

생전에 겪은 멋진 경험과

좋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하객들은 고인과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장례를 치렀다


한 60대 남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조문객들이 서둘러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각자 고인을 추억하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5분여나 흘렀을까. 경쾌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버스 텔레비전 모니터에 고인의 환한 생전 모습이 비쳤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궂은 날씨에 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비록 먼저 다른 곳으로 가지만 사는 내내 아름다운 동행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생과 이력을 간단하게 소개한 뒤, 생전에 겪은 멋진 경험과 주위 사람들에게 받았던 좋은 영향에 대해서 설명했다. 화장장까지 30여분의 시간 동안 조문객들은 그렇게 고인과 함께 나들이하는 기분을 느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그를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장례일이 어떻게 궂은 날씨임을 알았을까? 알고 보니, 그는 화창한 날씨부터 찌푸린 날씨까지 각각 다른 인사말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15년 전쯤에 있었던 실화다. 실제 이 버스에 직접 탑승했던 학생한테서 일화를 전해 들은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는 가끔 강의에서 이 얘기를 한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은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가는 사람은 홀가분하게 삶의 집착과 미련을 떨칠 수 있고, 남는 사람은 좋은 작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을 공저로 펴냈고 생사학(삶과 죽음에 대한 연구) 강의도 한 바 있는 정 교수는 “고 정기용 건축가의 경우 마지막 떠난 봄나들이에서 가족과 직원들에게 ‘여러분도, 나무도, 바람도, 하늘도, 공기도 모두 고맙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좋은 죽음’의 한 사례”라고 말했다.

올해 초 일본의 한 저널리스트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아 죽음을 앞두고 쓴 <내 죽음의 방식: 엔딩 다이어리 500일>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요절한 유통 저널리스트 가네코 데쓰오(향년 41)는 병을 알기 직전까지 많은 방송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인생의 황금기인 40대를 맞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는 비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번민하다가 자신의 장례식을 기획하고 죽음을 맞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예산을 짰고 “인생의 조기은퇴 제도를 일찍 이용하게 됐다”며 마지막 인사도 준비했다. 그가 남긴 유고이자 임종의 기록은 지난해 말 일본에서 출간된 뒤 1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임종을 준비하는 ‘슈카쓰’(종활)가 널리 알려져 있다. 2004년부터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엔딩노트’는 가족의 혼란과 재산 분쟁을 막고 자신의 끝을 평화롭고 존엄하게 맞이하기 위한 과정에 도움을 주는 공책이다.

2011년 말엔 일본에서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샐러리맨 출신 가장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엔딩노트>가 나와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상영됐다. 정년퇴직 뒤 여유로운 삶을 꿈꾸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으로 말기암 판정을 받은 뒤 꼼꼼한 성격을 발휘해 자신만의 ‘엔딩노트’를 만들었다. 그는 ‘버킷리스트’로 △평생 믿지 않던 신을 믿어보기 △한번도 찍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손녀들과 재미있게 놀기 등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천주교식 장례를 선택해 죽음을 준비한다. 임종 며칠 전 “컴퓨터를 뒤져봤는데 ‘엔딩노트’ 파일이 없다”고 아들이 말하자 “그럴 줄 알고 백업 파일을 만들어놨지”라고 병상에서 되받아치기도 했다. 임종 직전 “아빠 죽으면 어디 가는 거야?”라고 묻는 딸들에게 “안 가르쳐주지”라고 답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를 불러 용서하고 용서받는 둘만의 의식을 치른 뒤 가족들의 사랑 속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2011년 2월 세상을 떠난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향년 79)는 “내 장례식 때 핑크와 빨간 장미로 빈소를 꾸미고 탱고를 틀어 달라”는 얘기를 평소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남겼다. 국내 첫 유학파 헤어디자이너였던 그는 1970년대 국내에 파마머리 대신 단발머리 열풍을 불러일으킨 ‘한국 헤어계 대모’였고 패션지에 요리칼럼을 연재할 정도로 요리 실력이 뛰어난 미식가이기도 했다. 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레이스 리는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나 죽으면 장례식장에 하얀 꽃 꽂고 질질 울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핑크와 빨강 장미꽃으로 장식해줘. 올 때는 제일 멋진 옷을 입고 예쁘게 꾸며서 와. 제사는 말고 내 생일날 집에 다들 모여 맛있는 음식 차려놓고 와인 한잔 마시면서 지내. 탱고를 춰준다면 얼마나 멋있겠니.”

그의 수제자인 이희 원장(이희 헤어 앤 메이크업)은 “선생님의 당부대로 장례식은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 진행했으며 주위에서 구경을 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제자들은 탐스러운 분홍과 빨간 장미꽃으로 영정 주변을 장식했으며 재즈풍의 찬송가를 틀었다. 딸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멋있는 옷을 입고 왔다. 지금도 그의 제자들과 자녀들은 그의 생일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고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눈다. 이 원장은 “선생님은 평소 ‘누구나 태어나면 한번은 다 가는 것이고, 제 살 것을 다 살고 가니 억울할 것도 없으며 다만 오늘을 성실하고 멋있게 살면 그뿐’이라고 언제나 말씀하셨다. 우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스승이자 멘토였고, 진정한 문화예술인이었다”며 고인을 추억했다.

케이에스에스(KSS)해운의 창업자 박종규(78) 전 회장(현 고문)은 1998년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는 가족한테 남기는 유언장에서 “내가 행복하게 산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컸기 때문이다. 많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내 몸 하나 바치는 것은 아깝지 않다”며 장기 기증을 하고 남은 유골은 해양장을 해 달라고 밝혔다. 또 “어느 집이나 며느리 되는 사람의 노고가 너무 크다”며 제사를 지내지 않도록 하고, 기일 아침 각자 집에서 사진과 꽃 한송이를 두고 묵념추도만 하라고 당부했다. 단 “저녁에 음식점에 모여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라. 식비는 돌아가면서 내도록 하여라”라고 촘촘하게 덧붙였다.

은퇴 뒤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 전 회장은 <한겨레> 이메일 인터뷰에서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내가 평소 생각했던 것을 미리 아이들에게 명시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바다사업(해운업)의 직업인으로서 해양정신을 고취하는 것도 물을 멀리하는 우리 사회에 진취적 국민정신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해양장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또 “없어질 육신에 너무 애착을 갖는 것보다 정신으로 유산을 남기는 것이 후손에게 공헌하는 일일 것이며, 사람 사는 데 필요한 토지도 모자라는데 죽은 사람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큰 폐가 될 것이므로 수목장을 권한다”고 했다.

박 전 회장은 평소 평생 모은 재산을 회사 사주조합과 사회단체, 그리고 가족들에게 3등분 해 나누겠다고 밝혀온 바 있다. 그는 “세 아이들도 이 뜻을 잘 알고 있으며 ‘아버지가 번 돈은 아버지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죽음학회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엄하게 맞이해야 할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길, 이 길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남은 가족들뿐 아니라 생을 뜻깊게 보내기 위한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고맙습니다 용서합니다 용서해주세요

한겨레| 기사입력 2013-07-04 15:15 | 최종수정 2013-07-04 15:55 기사원문
 

[한겨레] [esc]‘웰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

엔딩노트 어떻게 써야 할까…사전의료의향서 법제화 움직임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는 한 노인을 떠나보내는 가족의 애도 과정을 그렸다. 이 세상에서 87년을 살다 간 치매 노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시어머니를 모셔온 주인공 소설가 이준섭(안성기)의 형수, 가출했다 돌아온 조카 용순(오정해), 취재를 하러 온 기자 장혜림(정경순) 등이 갈등을 빚다가 장례식을 치르며 결국 뜨겁게 화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어른들의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 본인이 생전 준비를 해놓지 않았을 때 유가족이 겪어야 할 혼돈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자신의 존엄한 마지막과 가족을 배려하고 싶다면 미리 자신의 손으로 중요한 정리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견줘 죽음을 터부시하고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임종 준비>라는 책을 펴낸 이화여대 최준식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내세관이 없는 유교의 영향으로 죽음을 준비하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고, 정신보다 물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젊어서부터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해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몸이 건강할 때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놓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는 “생사학이나 근사(임사)체험 등 죽음에 대한 임상연구는 이미 서구의 여러 나라 여러 병원들이 공동연구를 진행해 최고권위의 의학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정도로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를 ‘마지막 기회’로 삼고 영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유언을 작성할 때 “세속적인 것에는 미리 신경을 꺼버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고맙다, 용서한다, 용서해달라’는 얘기를 남기는 것이 필수”라고 권했다. 원한이 있거나 감정싸움을 해왔다면 부정적인 인간관계를 만나서 풀고, 감상에 젖지 말고 담담하게 지난날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좋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고 강영우 박사의 작별은 참조할 만한 사례다. 그는 2011년 12월 투병중 지인들에게 연하장으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의료인, 장례 전문가, 종교학자, 호스피스실 간호사, 철학자 등이 함께 제정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한국죽음학회)을 보면, 병이나 사고로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없게 돼 수개월 안에 사망이 예상되는 경우 꼭 유언장을 쓰도록 권유한다. 법적인 유언장은 자필로 쓸 때 공증 절차 없이도 효력을 가지며, 회사나 단체 등에 관한 유언을 남기려면 공증을 해야 한다. 그 안에는 내용, 날짜, 주소, 성명, 날인까지 다섯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타인이 대필하거나 컴퓨터로 작성해 출력하면 효력이 없다. 내용은 시신이나 장기 기증 여부, 유산상속, 금융정보 등으로 한다.

법적 효력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엔딩노트’ 같은 자유로운 형식도 가능하다. 집이나 병원 등 원하는 임종 장소나 본인이 의식을 잃었을 때 실행을 부탁하고 싶은 일, 집행을 맡을 사람, 예산 등 꼼꼼할수록 좋다. 임종 직전까지 힘든 육체적·정신적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때 도움이 될 만한 음악이나 독송을 들려달라고 써놓는 것도 좋다. 가는 길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 큰 소리로 슬퍼하거나 몸을 흔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부음을 알릴 사람들의 범위, 이름, 연락처, 매장·화장 등 장례 방식, 비석 설치 여부, 제사나 추모 형식 등을 함께 밝힐 것도 권한다.

지난 1일 출범한 ‘한국 1인가구연합’(singlesunion.or.kr)은 가족이 곁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후견 지원, 임종기 보살핌 등 무연사(연고가 없는 죽음) 방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만 45살 이상 65살 미만의 홀로 사는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회원이 되면 장례 방식, 장지, 공부 정리, 유품 처리, 영정사진과 신변 정리를 위한 ‘엔딩노트’와 유산을 위주로 한 유언장 작성을 할 때 변호사들의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최근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이 사전의료의향서다. 의식불명 상태에 들어가 의견을 개진할 수 없을 때 평소 환자의 뜻을 존중해 연명치료 등 의학적 처치를 해달라고 당부하는 서류다. 아직 제도화 전이라 법적인 효력은 없다. 그러나 올 1월 서울대학교병원 김범석·윤영호·허대석 교수팀이 전국 17개 병원 암환자들과 가족, 전문의, 일반인 38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것을 보면, 암환자 93%, 가족의 92.9%, 암전문의의 96.7%, 일반인 94.9%가 사전의료의향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가 ‘환자의 연명치료 자기결정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하면서 법제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적잖은 논란이 예상되지만 머잖은 미래에 의료 현장에서도 긍정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남궁명 사무국장은 “담당 의사에게 ‘의무기록부에 사전의료의향서를 첨부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천모임은 전화 상담(02-2281-2670) 뒤 의향서를 우편송부해준다. 법적 양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사전의료의향서 양식’을 검색한 뒤 내려받아 사용해도 된다.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의 ‘잊혀질 권리’를 위해 계정을 없애고 싶다면 구글의 경우 생전의 본인, 싸이월드는 상속인이 요청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유족이나 유언 집행자가 계정을 삭제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에서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되지 않는 이상 가장 좋은 방법은 생전 본인이 계정 삭제를 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한국죽음학회, 대화문화아카데미), <임종 준비>(최준식, 모시는 사람들), <의미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창간호,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분당메모리얼파크 제공

 
>>> 이런 비문은 어때요? ‘쉿! 깰라’

수목장을 하거나 납골당에 안치되거나 매장을 하거나 이 세상에 마지막 한마디쯤 남기고 싶다면 어떤 문구가 좋을까?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영화인 고 박철수 감독 비문엔 ‘바람이 분다, 모여라!’, 가객 김현식씨의 추모비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밖에도 분당메모리얼파크 공원묘역엔 ‘여기도 참 좋다’, ‘아름다운 이 세상 잘 다녀갑니다’, ‘지구별에서의 아름다운 인연을 추억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등의 개성 있는 비문이 많다. 이곳에선 본인이나 유족이 직접 비문을 쓰거나 참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구를 제공하고 있다.

코미디언 김미화씨는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비문을 택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촛불 사회자’ ‘국민 사회자’로 유명한 최광기씨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늘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하다 보니 내가 잠에서 깬다면 그건 세상이 시끄럽다는 증거일 터, 내 비문에는 ‘쉿! 깰라’라고 쓰고 싶다”고 했다. 사진가 임종진씨는 “서투른 여유의 삶, 그저 이렇게 살다 간다”라는 잔잔한 비문을 선택했다. 대전 사랑의 교회 김완수 목사는 “놀이터에선 노는 게야!”를, 마포 민중의 집 최현숙 운영위원은 “가부장과 액취증은 덫이자 축복이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최 위원은 “어린 시절 나에겐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액취증이 큰 상처였지만 돌아보니 사회적으로 낙인찍히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출발이 됐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유진 기자
 

이 노래, 이 음식으로 위로하련다

한겨레| 기사입력 2013-07-04 15:15 | 최종수정 2013-07-04 15:55 기사원문
 

[한겨레] [esc]‘웰 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

뮤지션과 요리사가 말하는 나의 장례식


글쎄 난 가을을 좋아하니, 어느 화창한 가을날 바싹 마른 따듯한 풀밭 위에 향긋한 술내음 풍기며 예쁜 낙엽처럼 쓰러지겠지. 청량한 가을바람에 옷깃은 바스락거리며, 추억들은 하나둘 바람에 실려가겠지. 아마 어디선가 에릭 클랩턴의 ‘오텀 리브스’가 흘러나올 거야. 무거웠던 육신이 가벼워지면서 난 편안해지겠지. 그리고 이제 시력 따윈 걱정하지 않고 파란 하늘과 빨간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겠지. 그러면 아마 삶의 회한과 덧없음을 느끼고 아름다운 추억들 때문에 미소를 머금고 눈가는 촉촉해지겠지. 세상이 하얘지면서 추억들이 바람에 책장 넘겨지듯 촤르르 펼쳐질 거야.

난 다시 눈을 감고 추억들을 잡으려 ‘꽃을 잡고’(한영애), 잘나갔던 ‘청춘’(산울림) 시절로 돌아갈 거야. 크라잉넛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말이야. 3만번도 더 불렀을 ‘말달리자’(크라잉넛)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씨익’ 웃겠지.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오고, 나의 육신은 깨끗이 씻겨진 뒤 어느 장례식장에 누워 있겠지. 난 영정사진을 엄청 익살스러운 사진으로 걸어놓고 싶어. 그래야 조문객들이 피식 웃으며 조의금을 더 낼 것 같으니깐….

내 장례식장에선 ‘맥 더 나이프’(브라이언 세처 오케스트라)같이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으면 좋겠어. 아니 아예 밴드들이 신나게 공연하고 사람들은 춤추고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어. 그래서 매년 내가 죽은 날짜에 록페스티벌을 여는 거야. 최고의 록페스티벌을 만들어서 후배 로커들 개런티도 두둑이 챙겨주고 남은 수익금은 불우이웃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쓰는 거야. 그러면 적어도 즐겁고 마음 따듯하게 나를 기억해줄 수 있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가고 잠든 새벽녘 장례식장에서는 아픈 옛사랑의 후회와 슬픔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빛과 그림자’(장사익)를 들을 테야. 아마 울겠지. 그리고 차분해지면 동심으로 돌아갈 거야. 어렸을 적 엄마가 마이클 잭슨의 ‘벤’을 들려주며, “<벤>이라는 쥐와의 우정을 그린 공포영화가 있는데 음악은 정말 아름답다”고 하시던 얘기를 생각하며 또 한번 미소짓겠지. 어린 시절에는 정말 귀여웠었는데, 산울림의 그 ‘꼬마야’처럼…. 마지막으로 화장이 끝나고 연기로 피어날 땐, ‘밤이 깊었네’(크라잉넛)가 흘러나오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안아주길….

크라잉넛 한경록

 
평소에는 모른 척, 머릿속 한 귀퉁이에 밀어 넣고 살던 죽음을 떠올려볼 때가 있다.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다. 검은 양복을 꺼내 입고, 검정 구두를 신는다. 그곳의 풍경은 너무도 엄숙하고 애처롭다. 편육과 육개장이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고인의 생전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그 사람을 편안하게 추억할 만한 ‘마지막’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전에 꽃 그림을 많이 그렸던 송수남 화백은 자신의 장례식장에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와 좋은 추억을 떠올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요리사인 나를 기억할 만한 것으로 요리만한 것이 또 있을까!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메뉴는 ‘프랑스 시골풍의 테린’이다. 그 맛이 곧 나다. 테린은 돼지고기를 비롯해 각종 고기의 잡부위를 다지고 양념해서 틀에 넣고 오븐에 중탕으로 찐 뒤, 차갑게 식혀서 먹는 음식이다. 테린은 우리네 편육과 느낌이 비슷해 조문객들이 편히 즐길 수 있다. 테린은 쓸모없는 부위를 모아 알뜰하게 만든 음식이다. 뭔가 부족한 재료들끼리 뭉쳐서 완벽한 음식으로 탄생한 것이다. 요리사인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나 목표다. 테린을 한입 떠서 먹으며 그런 의미를 추억하면 좋겠다. 술도 빠질 수 없겠다. 이왕이면 프랑스 요리인 테린과 어울릴 와인이 제격일 듯싶다. 가볍고 향긋한 꽃내음이 나는 보졸레 지방의 모르공(morgon)이 어울린다. 와인 한 모금에 테린 한입 맛보며 나를 추억해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다 갔다고 여길 것이다.

글·사진 ‘루이쌍끄’ 오너셰프 이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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