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드링크 부르는 '불면 사회'…'카페인' 규제가 최선?
| 기사입력 2013-07-05 07:01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직장인 이모씨(27·여)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고카페인 에너지드링크 1캔을 빈속에 들이켠다. 학생 때만 해도 카페인 음료를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요즘은 카페인 없이는 버티지 못한다. 이씨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회사를 오려니 카페인 없인 못 버틴다"며 '에너지드링크로 억지로 나마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시판 3년을 맞은 에너지드링크가 날개 달린 듯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수험생들의 '밤샘 공부용'은 물론 직장인 회식의 '폭탄주용'에 이르기까지 불면이 필요한 이들에겐 이미 생활 음료가 된 지 오래다.
고카페인음료에 대한 위험이 알려지며 규제가 잇따르고 있지만 한시적 규제보다는 에너지드링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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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시내 편의점에서는 유독 에너지드링크의 판촉행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사진=박소연 기자 |
◇국민의 ‘피로’ 먹고 성장한 에너지음료 시장
지난 3일 고등학교에 인접한 서울 용산구의 한 편의점에서는 오전부터 에너지음료를 마시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편의점 직원은 '학생뿐 아니라 밤 11시 이후 직장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인기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3월 시작된 국내 에너지드링크시장은 지난해 500% 가까이 급성장을 이뤘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대비 올 6월 매출신장률은 3.8%로 지난해 대비 성장세가 주춤하지만 이는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며 '올해도 최소 10~20%는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화는 연령층 확대와 용도의 다양화로 확인된다. 한 음료업체 관계자는 '원래 에너지 드링크는 20~30대 초반 대학생과 직장인의 피로회복제로 어필했는데 점차 연령층이 확대되고 술에 타는 등 용도가 다양해졌다"고 전했다.
대중화의 요인은 전국민의 '피로화'다. '일하려고', '놀려고'...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각성상태'를 필요로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직장인 진모씨(27·여)는 '주로 놀고 싶은데 몸은 피곤에 쩔어있는 금요일에 기운 내려고 마신다"고 밝혔다.
공과대 대학생 임모씨(23)는 '과제로 점철된 시험기간을 버티기 위해선 에너지드링크와 영양제, 홍삼엑기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털어넣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사인 유모씨(34·여)는 '우리 반 학생들 40명 중 8명이 졸음을 깨기 위해 마신다"고 설명했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김모씨(34)도 '동료들끼리 밤샐 때 쌓아놓고 마신다"며 '에너지드링크 인기의 본질은 밤샘근무'라고 말했다.
◇'거꾸로' 가는 에너지드링크 규제, 실효성 떨어져
지난해 미국에서 에너지드링크로 인한 사망 의심 사례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면서 국내에서도 규제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에너지드링크에 집중된 카페인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우선 에너지드링크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첨가물기준과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캐나다만 카페인 하루 섭취량을 청소년 체중 1kg당 2.5mg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며 '국내 에너지드링크의 카페인 62.5mg보다 커피전문점 커피 한 잔 카페인이 125mg로 훨씬 높다. 에너지드링크를 술과 섞는다고 특별히 해로운 화학작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미 식품의약국(FDA)과 유엔 식품첨가물 전문가위원회(JECFA)에서도 미국에서 에너지드링크를 마시고 사망한 청소년의 사인이 카페인과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뭐든 과도하게 섭취하면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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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이태원에서 구입한 미국산 '오리지널' 몬스터에너지(왼쪽)와 카페인을 줄여 국내 시판된 몬스터에너지. 카페인 차이가 상당하다. /사진=박소연 기자 |
규제는 카페인 양과 '거꾸로' 가고 있다. 국내산 카페인의 6배가 함유된 미국산 '오리지널' 에너지음료는 지난 2일 현재도 용산 이태원 마트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데 지난 27일 국회에서는 초중고교 근처에서 국내산 에너지드링크를 판매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 그나마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되지 않은 편의점 등에서는 에너지드링크가 판매 가능해 실효성도 떨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시판되지 않은 불법 고카페인 음료에 대해 '보따리상 등 개별 판매에 대한 단속은 식약청 소관'이라는 입장이며 식약청은 '첩보 등 정보가 인지됐을 경우 단속한다'고 밝혔다.
◇에너지음료 시장 급성장…'피로사회'의 단면
에너지음료 붐은 '피로사회'에 기대고 있다. 편의점의 공격적인 판촉행사와 대학 도서관에서의 무료배포 행사를 통해 대중화된 에너지음료를 뒤늦게 규제하기란 쉽지 않다.
직장인 조모씨(38·여)는 예거밤(예거마이스터라는 양주에 에너지드링크를 섞은 술)을 마시면 술에 빨리 취해서 좋다'며 '잠이 안 와서 숙취 부족으로 다음날 술을 더 먹게 돼 해로운 걸 알지만 잠시나마 활력을 얻기 위해 마신다"고 말했다.
에너지음료가 에너지를 일시적으로 당겨 사용해 결과적으로는 피로누적을 부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많은 이들은 에너지드링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실이다.
성공회대 우석훈 교수는 '과거 '타이밍'이라는 각성제가 유행했듯이 에너지드링크를 규제해도 또 다른 대체물이 나올 것"이라며 '캔커피와 박카스의 소비량이 급증하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 교수는 이어 '에너지음료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긴장감 높은 사회임을 보여준다"며 '한시적인 규제보다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여 각성제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