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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우리 생활 속 일본어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5
조회수
5,556
첨부파일
-

[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469> 우리 생활 속 일본어

E10 | 기사입력 2012-09-06 00:46 | 최종수정 2012-09-06 06:11
 
 
기름 '만땅꾸' 넣고 '빠꾸'하다 '기스'나다 … 일본말, 많이 쓰네요

박소영 기자올해로 광복 67주년을 맞았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는 일본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가 언어입니다. 광복 후 우리 정부는 국어순화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 일상 생활에서 일본식 문장과 표현이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어떤 일본어가 남아있는지, 또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20대 후반의 K씨. 헐레벌떡 일어나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출근길에 나선다. 오늘 아침도 어머니의 쿠사리(꾸중)로 하루를 시작한다. 간지나게(멋지게·분위기 있게) 양복을 차려 입으면 무엇하랴. 갓 입사한 그의 업무는 주로 선배들의 마나라이(보조·견습) 업무다. 그럴싸한 잇폰(한 건)으로 회사에서 가오(체면)를 세우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아침부터 거래처 여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아직 초안단계인 계약서를 보내주지 않는다고 땡깡(생떼)이다. 전화로 민원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무뎃포(막무가내)다.

 신마이(신참)인 그에게 느긋한 점심식사는 사치다. 다대기(양념장)로 간을 한 우동(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선배와 함께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노가다(공사판 노동자)들이 단카(지게)를 짊어지고 벽돌을 실어 나른다. 수시로 곤조를 부리는(성질을 내는) 십장(현장 반장)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시타바리(후배)의 몫이다.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계기판에 엥꼬(기름통 바닥이 드러난 상태) 표시등이 뜬다. 곧바로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만땅꾸(가득) 넣고 빠꾸(후진·물러나다)하다 뒤차에 부딪쳤다. 맙소사 범퍼에 기스(흠)가 났다. 이쯤 되면 멘붕(정신적 공황상태)이다.

 퇴근길 군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총기 수입(손질)부터 추운 겨울 나라시(땅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 깔던 이야기, 점호 시간에 늦어 연병장을 마와리(돌다) 돌았던 일까지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뛰어들었다. 아다리가 맞았는지(운이 좋아서인지) 막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아, 오늘 하루도 이렇게 시마이(끝·마무리)다.

 다소 과장했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쓰이는 일본어들을 나열해봤다.

 이 가운데 '멘붕'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유행어 중 하나다. '멘털(mental) 붕괴'의 줄임말로 우리말과 외국어가 결합된 축약어다. 정신적 공황상태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이제 방송 멘트나 신문 제목으로도 쓰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도 최근 “내가 네거티브에 너무 시달려 멘붕이 올 지경”이라고 했다. 어원은 일본어의 멘부레(メンブレ·mental break의 준말)다. 시험성적이 최악이거나 업무 중 심각한 실수를 저질러 정신적 공황에 이른 상태를 의미한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과 트위터 등 SNS를 타고 확산됐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멘호(メン崩)나 정신붕괴라는 표현도 쓴다.

 최근 서울시와 각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쿨비즈(cool-biz)'라는 단어도 사전에 없는 말이다. '쿨비즈'는 일본에서만 쓰이는 일본식 영어다. 2005년부터 일본 정부가 여름철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근무할 것을 권장하면서 이 운동에 '쿨비즈니스' 또는 '쿨비즈'란 말을 붙였다. 겨울철엔 반대로 실내온도를 낮추는 대신 카디건과 조끼 등 옷을 겹쳐 입는 '웜비즈(warm-biz)'가 있다. 우리가 이것을 그대로 들여와 정책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는 최근 서울시가 벌이는 '쿨비즈' 운동이 국적불명의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온라인에서 '쿨비즈'를 갈음할 우리말 찾기 투표행사를 열었다. 투표 결과 ▶시원차림 ▶시원맵시 ▶간편맵시 ▶간편복 등이 나왔다. 서울시는 행정용어순화위원회를 열고 이 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쿨비즈'를 '시원차림'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일본어가 우리나라에 본격 상륙한 것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다. 강제 일본어 교육이 시작된 1920년대 부터는 고유 일본말 요소까지 물밀듯이 우리말에 들어왔다. 당시의 우리말 문학작품에는 “가시키리(대절), 고이비토(연인), 구루마(차), 나마이키(건방짐), 나지미(친구), 마지메(진실함), 오시이레(옷장), 조리(일본 짚신), 히야카시(놀림)”와 같은 일본말이 등장했다. 일본어 교육이 강화됐던 1940년 전후에는 우리말에 대한 일본말의 혼입이 그 절정에 올라섰다. 이에 따라 일본말은 우리말의 어휘체계는 물론 문법구조에까지 적지 않은 변화를 몰아왔다.

 작가 황대권이 우리말 속 일본어를 찾아 담은 『빠꾸와 오라이』를 보면 다마 치기(구슬놀이), 짠껭뽕(가위바위보), 아이스케끼(아이스크림), 요이 땅(준비 출발), 겐세이(방해하다), 오야붕(두목) 등 어릴적부터 친숙했던 단어들이 모두 일제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후 대표적인 일본어 잔재였던 '벤토·와루바시·다마네기·다쿠앙·쓰리꾼·요지·시보리·아부라아게'는 '도시락·나무젓가락·양파·단무지·소매치기·이쑤시게·물수건·유부'로 바로잡아졌다. 일본에서 유입된 단어들은 상당수 우리말로 대체됐다.

 하지만 흔히 쓰이는 관용구들은 일본어 어투를 직역한 것들이 많다. “희망에 불타다, 애교가 넘치다, 낯가죽이 두껍다, 이야기에 꽃을 피우다, 콧대를 꺾다, 비밀이 새다, 폭력을 휘두르다, 눈살을 찌푸리다, 귀에 못이 박일 만큼, 가슴에 손을 얹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낙인이 찍히다”는 일본어 표현을 우리말로 직역한 것이다. 우리말에 유입된 일본말은 한편으로 우리말 어휘체계를 확대시켜 주었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 속의 전통적 한자어를 일본말 식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말에는 중국말 식이 아닌 일본말 식 한자어가 판을 치고 있다. 가령 중국말로는 '명감(銘感)·통고(痛苦)·개소(介紹)·명운(命運)·한제(限制)·화평(和平)'이 각기 현대 우리말로는 '감명·고통·소개·운명·제한·평화'가 됐다. 일본어와 같아진 것이다.

 이렇게 일본어를 차용한 대표적인 분야로 사법과 행정을 꼽을 수 있다. 광복 후에도 일본 용어와 표기 방법을 그대로 차용, 유지했다. '기타(其他)'는 대표적인 일본식 용어다. 국어학자들은 '기타'는 어떤 상황을 병렬적으로 접속하는 일본식 표현이므로 '그 밖의(에)'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한다. 주격 조사인 '이'나 '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의'를 대신 사용하는 것도 일본식 표현이다. 국어학자들은 일본 법령을 우리 법령으로 따다 쓰는 과정에서 일본어의 주격조사인 'の(노)'를 그대로 '의'로 번역해 생긴 오류라고 설명한다. 법령 이름을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쓰는 것도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 방법이다.



 
 

 법무부와 법제처는 2004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본식 법률 용어를 우리말로 고치고 있다. 일본식 용어인 '최고서(催告書)'와 '연령(年齡)' '실추(失墜)시키다' '상위(相違)하다' 등이 각각 '독촉장'과 '나이' '떨어뜨리다' '어긋나다'로 바뀌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해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자어나 영어로 된 행정용어 600여 개를 우리말로 쉽게 고쳤다. '의료수가'는 '진료비'나 '치료비', '시건'은 '잠금', '거마비'는 '교통비', '백 데이터'는 '참고자료', '가드레일'은 '보호난간' 등의 우리말로 대체했다. 행안부는 새로운 행정용어가 업무에 활용될 수 있도록 문서 결재 시 행정용어 순화어를 검색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본말이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새로 들어온 일본말에는 '별책부록·인맥·재테크·일조권·혐연권·정보화 사회' 같은 한자어 외에도 '가라오케·이지메·히로뽕(필로폰) 포르노(포르노그래피)·폭주족·택배' 같은 말이 수입됐다.

 가장 대표적인 일본식 영어표현은 시험 때 부정행위에 해당하는 '커닝'이다. 일본의 외래어 '간닝구'(カンニング)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어 사전을 보면 이 말은 영어 '커닝'(cunning)이 원어다. 그런데 영어 '커닝'에는 '부정행위'라는 뜻은 없고, '교활한'이라는 뜻이다. 일본어 '간닝구'는 원래 영어에 없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커닝 페이퍼'라고 하지만 실제 영어권에서는 '치트 시트'(cheat sheet)로 부른다.

 최근 수년 새 사용빈도가 급상승한 단어 중에 '진검승부'가 있는데, 이 역시 어원은 일본어다. 일본어 사전에선 “목숨을 잃을 각오로 승부한다”로 풀이하고 있다. 전쟁이 없었던 도쿠가와 막부 시절 (1603~1867년), 무사들은 목검과 죽도로 훈련을 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대결할 때는 진검으로 한다는 비장한 의미가 담겨 있다. 굳이 우리말로 바꿔 쓰자면 '생사 겨루기' '맞짱 뜨다', 한자어로는 '사생결단' 정도가 아닐까.

박소영 기자
ol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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