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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동양고전에 묻다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5
조회수
5,000
첨부파일
-

[책과 지식] 동양고전에 묻다 ① ‘웰빙’과 ‘웰다잉’, 그 참뜻은

[중앙일보]입력 2012.08.25 00:51 / 수정 2012.08.25 00:51
공자 - “아침에 제 갈 길 알았다면 저녁에 죽게 돼도 괜찮다”
배우고 익히는 기쁨 말하고 남에게 흔들리지 않는 자세 제시
장자 - 창공을 나는 대붕(大鵬) 되려면 처절한 곤(鯤)의 수고 알아야
고단한 삶 감당하는 사람만이 “이제 죽어도 좋다” 하게 될 것
『논어』가 답하다

성공 집착은 불안을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라 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joongang/9141199/article.joinsmsn.com/1/0
신정근
『논어』 『맹자』 등 동양고전에 관심이 높습니다. 고전 강독도 인기입니다. 혼잡한 사회에서 자신을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중앙일보와 플라톤 아카데미가 ‘동양고전에 묻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웰빙·힐링·소통 등 우리 사회의 화두를 살펴봅니다. 국내 고전 전문가들이 함께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경쟁과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경쟁보다 불안이 사람의 영혼을 더 깊게 뒤흔든다. 경쟁에 놓인 사람은 힘겹지만 불안을 밀어내고 살아남도록 자신의 역량을 최적으로 꾸려 대응하려고 한다. 우리는 공자의 웰빙과 웰다잉을 ‘최적의 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바란다. 그 세상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지표로 작용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부국강병을 국가를 조직하는 원리로 내걸었다. 공자는 부국강병의 경쟁이 궁극의 평화가 아니라 더 큰 불안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를 부국강병의 길과 다르게 조직해 웰빙과 웰다잉이 가능한 올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논어』에 다음 같은 글귀가 있다. “경제적 성공을, 만약 추구하는 것이 옳다면 시장에서 채찍을 잡는 문지기라도 나는 꼭 할 것이다. 그것을 추구해서 안 된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가리라.” 시대가 사익의 추구로 나아갔지만 공자는 그 길이 부도덕하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삶을 사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스스로 진정으로 바라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삶을 조직하는 원리를 진정성에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공자는 그 진정성을 『논어』의 처음과 마지막 장에서 분명히 말했다.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준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군자는 배움을 통해 무지와 서투름을 벗어나고 타자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자율적 인간이다.

 “하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지.” 배움이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로 향해 비상하는 날개를 달아주지만 하늘의 명령은 사람이 어디까지 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분명하게 해준다. 한계 안의 비상은 삶에 슬픔보다 즐거움을, 불신보다 신뢰를 가져올 수 있다.

 공자는 진정성과 호학(好學)을 밀어붙이는 자유로운 삶을 웰빙으로 보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움직이는 향원(鄕愿), 겉으로 단단한 척하지만 속은 물러터진 소인,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공동체를 외면하는 은자의 삶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허영·이익·생명에 갇혀 자신을 과밀하게 조직하거나 당파에 과잉으로 충실하거나 자신을 과소하게 조직했다고 보았다. 특히 은자는 세계 안에 머물면서 세계 밖을 꿈꾸는 역설과 환상의 삶을 살았다. 결국 이들은 개인과 개인들의 사이를 제대로 조직화할 수 없었던 만큼 웰빙과 웰다잉에서 멀어졌다.

 공자는 신의 구원과 사후 심판이 없는 현세 중심의 세계를 살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생과 불로를 추구했던 진시황처럼 죽음을 뛰어넘거나 뒤로 물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침에 제 갈 길을 알아차렸다면 저녁에 죽게 되더라도 괜찮다.” 죽음은 넘어서고자 하지만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는 길을 걸어갈 때 수시로 갈마드는 쉼표일 뿐이다. 목숨을 구걸하여 죽음을 뒤로 물린다면 죽은 목숨을 사는 잉여로서 삶일 뿐이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다. 웰다잉은 죽음을 의식하지도 압도당하지도 않고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고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끝까지 사는 삶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한 주제에 깊이 열중하다 보면 밥도 잊어버리고, 나아가는 길에 즐거워하며 삶의 시름마저 잊어버려서 앞으로 황혼이 찾아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공자는 삶과 죽음의 단절 없이 영원한 젊음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신정근 교수(성균관대·유학동양학부)

◆논어(論語)=중국 유교의 근본문헌. 전국시대 사상가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문답 위주로 구성됐다. 공자의 발언과 행적,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함축돼 있다. 총 20편으로 구성됐다.

『장자』가 답하다

세상에 절대자유는 없다
자신을 다 던지는 노력뿐

 
구만리 창공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대붕(大鵬·하루에 구만리를 난다고 알려진 상상의 새)이 되고 싶은가.

 장자(莊子)를 연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자유로움을 연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대붕이 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수 천리나 되는 등판 길이를 가진 대붕으로 자랄 때까지 얼마나 비좁은 바다에서 부대꼈는지, 그리고 구만리 창공으로 비약하기 위해 태풍을 얼마나 절절하게 기다렸는지,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다. 대붕은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라, 상대적인 자유를 상징했던 캐릭터였다. 수직으로 모든 것을 빨아올리는 태풍을 제대로 타지 못한다면, 대붕은 구만리 하늘을 자유롭게 날면서 자신이 태어나서 자랐던 바다를 내려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태풍을 타고 하늘로 올라 이제야 거대한 날갯짓을 하게 된 순간, 이제 대붕이 되어버린 곤은 외쳤을 것이다. “아! 이제 죽어도 좋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실현하는 순간, 혹은 조심스럽게 품었던 꿈을 실현하는 순간, 어쩌면 자신의 의지를 현실에 꺾이지 않고 관철하는 순간, 누구나 한 마리의 대붕이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제 죽어도 좋다!”라는 탄식 속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은 하나로 응축되며, 우리는 한 마리의 대붕이 되는 것이다. 이제야 ‘대종사(大宗師)’편에 등장하는 장자의 말을 이해할 준비가 된 듯하다.

 “저 대지가 몸을 주어 나를 싣고, 삶을 주어 나를 수고하도록 하고, 늙음을 주어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긍정해야 자신의 죽음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다.”

 
 사실 곤은 대붕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대붕은 다시 구만리를 활공하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은 편할 수가 없다. 삶은 자신의 가능성을, 그래서 자신의 자유를 증명해야만 하는 고난에 찬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고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아! 이제 죽어도 좋다”는 외침은 한번뿐이 아니라 수 차례 토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삶의 수고를 감당하는 사람, 그래서 “이제 죽어도 좋다”는 절정에 오르려는 사람에게만 늙음과 죽음은 안식의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안식(安息)이란 말이 중요하다.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의미한다. 더 이상 수고롭지 않을 수 있는 죽음의 시간은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위로가 되는 시간이겠는가.

 장자는 말한다. “자신의 삶을 긍정해야 자신의 죽음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제대로 삶을 살았다면, 임종을 앞둔 우리는 자신에게 속삭이게 될 것이다. “수고스러웠지만 멋진 삶을 살았네. 좋은 여행이었어.”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가족이나 친구들은 머리나 손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보낼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어요. 후회 없이 사신 거에요. 이제 푹 쉬세요”라고.

 이와 반대로 삶의 수고스러움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던 사람은 임종을 거대한 슬픔으로 느끼게 된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2000여 년 전 천지를 진동시켰던 대붕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가. 이제 대붕의 거대한 날갯짓이 전달하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가. 그 소리와 바람 속에서 장자는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삶을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시간으로 영위하라! 바로 그 순간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안식의 시간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강신주 대중철학자

http://images.joinsmsn.com/ui_joins/news10/common/t_ad.gif
◆장자(莊子)= 중국 고대 사상가 장자(莊子·莊周)의 저서. 노자(老子)의 『도덕경』과 함께 중국 도가사상을 대변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어떠한 것에도 침해 받지 않는 자유를 주창했다.
 [책과 지식] 동양고전에 묻다 ② 소통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중앙일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30면의 TOP기사입니다.30신문에 게재되었으며 30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2-09-15 00:47 | 최종수정 2012-09-15 06:38 기사원문

 
 

맹자
백성에게 신뢰와 존경받는 군주라면 동산…정원 개방하여 함께 누릴 수 있을 것


시경
부모·부부·위정자 등에 대한 간절한 마음 담아 …시는 모든 장벽 무너뜨리는 매개

강희언(1710~84)의 '시를 읊는 선비'. (부분)
집, 직장, 정치판, 어디를 둘러봐도 소통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만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중앙일보와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한 '동양고전에 묻다' 두 번째 주제는 소통입니다. 『맹자』와 『시경』의 지혜를 알아봅니다.

『맹자』가 답하다
군주는 즐거운데 백성은 왜 즐겁지 않은 걸까

성백효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여민동락(與民同樂)이 소통이다”

 그야말로 소통의 시대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으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사회다. 그런대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소통의 부재를 염려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정치인과 국민간 불통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300년 전, 맹자(孟子)의 시대에는 어땠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맹자』에 등장하는 시를 살펴본다. 정확히 말하면 맹자가 인용한 『시경(詩經)』의 일부다. 『맹자』에는 선왕(先王)들이 선정을 노래한 시가 주로 인용된다. 위정자를 설득하고 교화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맹자가 양혜왕(梁惠王)을 만났다. 마침 왕과 맹자는 못가에서 기러기와 사슴을 보고 있었다. 양혜왕이 물었다. “어진 이도 이것을 즐깁니까.”

 고대의 왕이나 제후는 휴식을 위해 정원을 만들고 그 안에 여러 동물을 길렀는데, 양혜왕이 생각하기에 이러한 즐거움은 보통 사람에게나 속하는 것이지 어질고 훌륭한 사람이 즐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일은 군주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한 것이므로 백성이 반가워할 리가 없었다. 정원이나 동산의 조성에는 백성들이 동원되기 마련이고, 고된 노동의 결과로 조성된 공간을 정작 백성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어진 사람이 된 뒤에야 이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즐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를 인용하는데, 『시경』의 '대아문왕편(大雅文王篇)'이다. 주(周)나라 성군이었던 문왕이 영대(靈臺)라는 건물을 신축한 내용을 읊은 것이다.

 '문왕이 처음 영대를 구상하여/경영하고 공사를 시작하시니/백성들이 몰려와 부역을 하여/하루가 못되어 완성되었도다/ 문왕은 백성들에게 공사를 서둘지 말라고 경계하였으나/백성들은 자식이 아버지의 일에 달려오듯 하였도다/문왕이 영유(靈<56FF>)라는 동산에 계시니/사슴들이 놀라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도다/사슴들은 반질반질 살이 찌고/백조들은 깨끗하였다/문왕이 영소(靈沼)라는 못에 계시니/ 못에 가득히 물고기들이 뛰놀도다.'

 맹자는 다음 같이 설명했다. “문왕이 백성의 힘을 이용하여 대(臺)를 만들고 소(沼)를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이것을 즐거워하여 그 대를 영대라 하고, 그 소를 영소라 하여, 문왕이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좋아하였습니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습니다.[與民同樂] 이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맹자의 풀이는 명쾌하다. 군주가 즐거워하는 것을 왜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가. 군주 혼자 즐기기 때문이다. 군주의 안락이 백성의 안락으로 이어진다면 백성들은 군주의 안락을 싫어하기는커녕 군주가 안락하지 못할까 걱정일 것이다. 여민동락,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이 말이 바로 맹자가 시를 인용함으로써 양혜왕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어떻게 해야 백성과 함께 즐길 수 있는가. 단순히 동산과 정원을 개방하면 여민동락이되는가. 이는 백성이 군주를 신뢰하고 존경할 때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경과 신뢰는 군주가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소통함으로써 구축되는 것이다. 여민동락의 조건은 소통이다.

 전제왕권 시대에도 백성과의 소통은 어진 정치의 기본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국민의 권한을 대행하는 대리인들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물론 소통이 쉬운 것은 아니다. 신뢰가 있어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집단이 정치권이라고 알려져 있다. 위정자가 부디 진실성을 가지고 국민들의 참소리를 듣고 신뢰를 회복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고대한다.

성백효 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

◆맹자=맹자가 저술한 유교경전.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 중 하나다. 양혜왕(梁惠王)·공손추(公孫丑)·등문공(<6ED5>文公)·이루(離婁)·만장(萬章)·고자(告子)·진심(盡心) 7편으로 구성됐다. 공자의 인(仁)에 의(義)를 덧붙여 인의를 강조하고 왕도정치를 강조했다. 성선설을 주장했다.

『시경』이 답하다
순수한 심성의 반영…시를 알면 간교함이 없다

김언종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시의 나라(詩國)' 라는 별명을 가진 국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읽혔고 미래에도 그러할 시집은. 답은 각각 중국과 『시경』이다. 기원전(BC) 11~6세기까지 약 500년간 중국 중원에서 유행하던 시 가운데 300여 편을 묶은 이 책의 본명은 『시(詩)』, 혹은 『시삼백(詩三百)』이었다. 후세에 '불변의 진리'라는 뜻의 '경(經)'이란 글자가 더해졌다. 『시(詩)』는 원래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강가에서 얼핏 본 처녀에게 상사병 들린 청년의 애타는 심사, 오랜만에 친정 부모 뵈러 가는 새색시의 두근거림, 먼 지방으로 출장간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애타는 심경, 훌륭한 고을 원님의 자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마을사람들의 축원 등등이다.

 『시경』 앞머리 11편을 뭉뚱그린 주제다. 전체 305편의 절반 이상이 당시 사회 풍속을 반영하고 있다. 더 뒷장을 넘겨보면 상대의 욕정을 당장 받아 줄 테니 제발 내가 데려온 개가 놀라 짖어댈 만큼 허둥대지 말아달라는 한 처녀의 화끈한 속내도 보이고, 몰리에르의 『수전노』 주인공처럼 어느 인색한 부자의 어리석음을 야유하는 대목도 보인다.

 온갖 욕망이 분출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고리타분한 유가 경전에 둔감한 현대인은, 당연히 무덤덤하겠지만, 『시경』을 신주(神主) 모시듯 했던 조선시대 선비라면 이러한 접근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터다. 성호(星湖) 이익,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 같은 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들은 『시경』을 성현이 '어린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경』은 세속적인 주제를 진솔하게 다룬다. 한(漢)나라 이후 2000여 년간 지속된 봉건사회의 두터운 덧칠을 벗겨낸 시의 '민얼굴'이다. 300편 외기를 얼음에 박 밀듯 했고, 늘 제자들에게 시 공부를 권장했던 공자는 시를 도덕성을 제고하는 수단만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실 시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준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해 준다. 개인이 어떻게 세상과 조화롭게 소통하며 방종과 타락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카타르시스 기능도 있다. 새·짐승·풀·나무·벌레·물고기 등의 생리와 명칭을 알게 해주는 덤도 있다.

 이토록 사람 사는 것, 이른바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지적이 공자가 밝힌 시론이다. 그러니까 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나아가 사람과 자연의 다양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매우 중요한 매개다.

 공자는 또 말한다. “시를 모르면 높은 담장에 얼굴을 마주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즉, 시를 모르면 미래를 향한 전망이 없고 한 걸음도 진보할 수 없는 꽉 막힌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새삼스럽지만 시야말로 가장 고급한 소통의 도구다. 개개인의 아집이 득세한 이 불통의 시대에, 상하사방 동서고금과 소통하는 데 시만한 것이 있을까. 시는 가장 순수한 인간 심성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오해가 있다. '좋은 책임을 알고 있지만 꺼내 읽는 않는 책'이란다. 중국 최초의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책이자 동양문화의 깊은 물줄기인 『시경』도 오늘날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우리를 타인을 이해하며 '나'를 인간화한다. 『시경』은 그 휴머니즘의 도정에서 사람들이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보석덩어리다. 그 앞에선 이념도, 진영도 큰 의미가 없다.

 공자가 일갈했다. “시삼백 일언이폐지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 시경 300수를 한마디로 줄이면 생각에 간교함이 없다는 뜻이다. 정치를 한다는, 나라를 위한다는 위정자들이 뜨끔해할 말이다.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시경=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본디 3000여 편이 수록됐다고 전하나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렸고, 그 중 305편이 전해지고 있다. 남녀간의 애정, 현실의 정치를 풍자하고 학정을 원망하는 시들이 많다. 내용이 풍부해 문학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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