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교수 된 뇌성마비 소녀… 사랑이 기적을 만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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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교수 된 뇌성마비 소녀… 사랑이 기적을 만들다
| 기사입력 2012-10-26 03:03 정유선 조지메이슨大 교수 장애아 둔 부모들 앞에서 강연 나를 구한 엄마의 사랑 - 죽고만 싶었던 사춘기 시절 부모는 항상 '넌 최고야" 격려 장애인 부모들 눈물 - '교수로 성공한 것보다 가족의 헌신에 더 감동받아 내 아이 더 사랑해야겠다' '제가 100미터 달리기 마지막 지점에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제 표정 보이시죠? 제가 왜 저렇게 악을 쓰고 달렸을까요? 저보다 늦게 들어온 아이들을 보면, '졌다'고 생각해서 걷다시피 들어오고 있는데 말이죠.' 미국 조지메이슨대학 특수교육과 정유선(42)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페럼타워 3층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초등학교 4학년 가을운동회 때 찍은 빛바랜 사진 한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 뇌성마비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 대학의 교수까지 오른 그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저는 이날 4등을 했지만, 끝까지 달렸습니다. 비록 뇌성마비 장애가 있지만, 저는 제 앞에 달려나간 친구들처럼 뭐든 똑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기적이란 이처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인생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의 강연은 이렇게 이어졌다. 강연 객석엔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들과 그 가족, 또 장애인을 돌보는 단체의 관계자 등 80여명이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며 열중했다. 이날 강연의 제목은 자신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였다. 뇌성마비 때문에 아직도 그는 한마디 한마디 꺼낼 때마다 얼굴이 찡그러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엔 수화 통역자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김희선(71)씨. 그의 어머니다. 1960년대 인기곡인 '울릉도 트위스트'를 부른 '이시스터즈'의 멤버이기도 하다. 정 교수의 말을 듣던 어머니 김씨는 '운동회 날 100미터 달리기하는 딸을 보며 펑펑 울었다"며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4등으로 달리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어오는 딸을 보면서 한없이 자랑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 사진 찍는 것과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어머니와 제 이야기를 통해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가족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연을 결심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어두웠던 시절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겪던 중학교 시절 그의 일기장에는 '부모님은 왜 나를 낳았을까'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너무 싫다' ' 죽어버리고 싶다'는 글로 가득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부모님은 늘 용기를 줬고, 그래서 체력장 오래 매달리기도 남들만큼 하고 싶어 매일 연습한 결과 1급을 받을 수 있었으며, 교련 시간에 배우는 붕대 감기도 매일 연습해서 남들처럼 1분 안에 감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객석에 있던, 청각장애아동의 어머니라는 황규윤(40)씨는 '미국에서 교수로 성공했다는 것보다도 저렇게 당당하고, 자신을 아끼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 더 멋져 보였다"며 '우리 아이도 정 교수님처럼 자신을 사랑하면, 훗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뇌성마비 인 딸을 키운다는 박정모(45)씨는 '정 교수님의 멋진 삶에는 묵묵히 딸을 지켜보고 사랑을 보낸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강연을 통해 '나도 아이를 더 사랑해야겠다. 더 관심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1995년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 장석화(48)씨를 만나 두 아이를 낳았다. 두 아이에게 장애를 이해시키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정 교수에겐 커다란 숙제였다. 정 교수는 '처음엔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랑 달라?'라고 아이가 물어볼 때 막막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 머리에 상처가 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면서 '그랬더니 딸이 내 머리를 통통 두드리며 '엄마, 내 생각에 지금 엄마는 완전히 괜찮아'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그녀는 작년 딸의 학교에 가서 '여러분 모두는 특별하다'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었다. [윤동빈 기자 ]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만 와요” 뇌성마비 정유선 美교수 A31면2단| 기사입력 2012-10-26 03:12 국내 장애인부모 대상 강연 [동아일보] “저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강연을 하기 위해 무대에 선 여성은 눈을 찡그리며 온힘을 다해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2004년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한국인 중 최초로 미국 박사 학위를 받은 정유선 조지메이슨대 교수(42)였다. 정 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파라다이스그룹이 운영하는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의 초청으로 강연을 했다. 어머니 김희선 씨(71)도 참석했다. 김 씨는 1960년대 ‘울릉도 트위스트’로 인기를 모았던 ‘이시스터즈’ 멤버였다. ▶본보 5월 17일자 A8면 “엄마는 왕년에 걸그룹… 하지만 내 인기보다 아픈 네가 소중했단다” 재단 측이 초청한 장애인 부모와 특수교육기관 종사자들이 강연을 들었다. ‘보조공학’을 전공한 정 교수는 “장애인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보조기기나 서비스를 연구한다”고 “흔한 구두주걱도 지체장애인에게는 신발을 편하게 신게 하는 보조기기”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이 불편을 극도의 인내심으로 극복하는 것은 재활이 아니다”라며 “보조기기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장애 극복을 위해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잘나가던 가수 생활을 딸 때문에 접은 어머니와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 속의 진가를 발견해 준 남편이 있었다. 자식들의 영향도 컸다. 그는 첫아이를 임신한 뒤 아이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겠다며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처음으로 장애에 대해 설명해 줬다. “엄마 머리 속에 상처가 있다”는 설명을 들은 아이는 엄마의 머리를 두들겨 보고는 “이제 다 나은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장애를 잘 받아들여 준 아이들 덕에 힘이 났다. 평생의 숙제를 푼 기분이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사진을 꺼내 보인 그는 “뒤에서 3등을 했다. 2명은 골인 지점 근처에서 천천히 속력을 줄였는데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다른 친구들 하는 것은 뭐든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 극복에는 본인의 의지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2012년 조지메이슨대 최고 교수상을 최근 수상했다. 그는 “기적적인 일”이라면서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기적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선물이다. 안 된다는 편견은 깨버리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