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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160 ‘최초의 미국인’이 쓴 원조 자기계발서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5
조회수
4,593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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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160 ‘최초의 미국인’이 쓴 원조 자기계발서
중앙SUNDAY| 기사입력 2013-05-05 04:06 기사원문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옳은 개소리’로 전락하고 만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쉽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90)은 ‘작심평생(作心平生)’을 실천했다. 1726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귀국하던 20세 청년 프랭클린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앞으로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검소하게 살고, 진실된 언행으로 열심히 일하며, 남의 험담을 하지 않겠다고….

실천은 화려한 인생을 보장했다.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혁명의 3대 문서인 미국독립선언서(1776), 파리조약(1783), 미국연방헌법(1789)의 초안 작성에 모두 참여하고 서명한 유일한 인물이다. 언론인, 정치인, 혁명가, 과학자, 외교관, 신문 발행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5명의 왕을 알현했으며 하버드·예일·옥스퍼드 등 6개 대학의 명예학위를 받았다. 기타·바이올린·첼로·하프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프랑스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에 능통했다.

‘천사의 목소리’ 내는 아모니카 발명

 
 
조제프 뒤플시스(1725~1802)가 그린 프랭클린의 초상화(1785년께).

과학자 프랭클린은 번개가 전기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농업, 무역, 전략, 황열병, 암, 수면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했다. 그의 인구학 연구는 토머스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1798)에 결정적인 바탕이 됐다. 온 인류를 위해 특허를 내지 않은 발명가이기도 했다. 서가의 높은 데에 있는 책을 꺼내는 장치, 복초점 안경, ‘프랭클린 난로’도 만들었다. 1749년 피뢰침을 발명했으며, 1761년에는 아모니카(armonica)라는 악기도 만들었다. 이 악기를 위해 모차르트·베토벤이 작곡을 했으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93)는 교습을 받았다. ‘하프는 천사의 악기, 아모니카는 천사의 목소리다’는 말까지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나 장관들은 퇴임 후 『자서전』 『회고록』 출간으로 짭짤한 인세를 챙기지만 아무도 프랭클린 『자서전』을 넘볼 수 없다. 프랭클린의 IQ는 160으로 추정된다. 프랭클린이 이름 없는 인쇄공으로 생을 마감한 게 아니라 르네상스맨이 된 비결을 『자서전』이 밝히고 있다. 최초의 미국 문학 고전 중 하나며 자기계발서의 원조이기도 하다.

프랭클린은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했다. 22세 때 ‘종교의 신앙·행위 조항’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13가지 덕목 리스트를 뽑은 것이다. 절제·침묵·정돈·결심·검소·근면·진실·정의·중용·청결·평온·금욕·겸손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하고 결과를 일기장에 기록했다.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을 할 것인가.” 매일 저녁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을 했는가”를 성찰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프랭클린을 개신교 윤리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했다. 프랭클린의 도덕적 완벽주의는 궁극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라는 성경 말씀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프랭클린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에 회의적인 이신론자였다. 그의 관심은 구원이 아니라 성공이었다. 프랭클린은 나쁜 습관(vice)이 성공을 가로막는다고 봤다. 악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이라터(errata·오류들)’라고 부르는 잘못을 기록해 점검했다. 기도에 대한 관점도 독특했다. 프랭클린은 젊어서부터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이득이 자신에게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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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확하다고 평가 받는 『자서전』의 예일대판 표지.
사후 출간된 『자서전』에서 프랭클린은 자신이 이신론자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에서 새로 건설되는 모든 교회에 기부금을 냈으며 자신이 여전히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라”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한 것을 보면 그들을 동급으로 봤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려고 했다.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종교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은 호랑이를 풀어놓는 것과 같다.”

프랭클린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준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그의 소신과 뛰어난 글재주였다. 감쪽같이 킹제임스바이블의 문체와 일치하는 가짜 성경구절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학교는 2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읽기·쓰기를 좋아했다. 순전히 독학으로 짧고, 명료하고, 간단한 글을 연마했다. 이미 16세 때 장안에 화제가 된 글 14편을 이복형이 발행하는 신문에 가명으로 기고했다. “독자의 덕성이나 지식을 향상시키지 않는 글은 좋은 글이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 프랭클린은 글에 대한 안목과 성실성 덕분에 인쇄업자로 성공했다. 1748년 42세에 돈 버는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됐다.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1732~57)은 매년 1만 부를 찍었다. 인구나 출판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오늘날의 300만 부에 해당하는 부수다. 출세한 다음에도 ‘B. 프랭클린, 인쇄업자’라고 서명할 정도로 인쇄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가짜 킹제임스 성경 구절 만든 글재주

『자서전』에서 프랭클린은 자신이 완벽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했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더 훌륭하고 더 행복한 인간이 됐다”고 자평했다. 두 가지가 문제였다. 술을 외면하고 물만 마시는 젊은 프랭클린을 영국인들은 ‘물 미국인(Water American)’이라고 불렀다. 부자가 된 다음에는 음식 절제에 실패해 성찬(盛饌)과 와인을 즐겼다. 중년 이후는 비만으로 고생했다. 금욕 분야에서도 탈이 났다. 주 프랑스 미국 전권공사(1776~85)였을 때는 최소 3명의 백작 부인 등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프랑스에서 ‘얼굴이 월면(月面)만큼 잘 알려진’ 명사였기에 유혹을 뿌리치기도 힘들었으리라.

프랭클린은 ‘최초의 미국인’ ‘미국 최초의 기업가’라 불린다. 1847년에 나온 최초의 미국 우표를 장식하고 있는 것도 그의 얼굴이다. 1785~88년에는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도 지냈다. 최초의 미국 대통령은 되지 못했다. 초대 대통령은 당연히 조지 워싱턴이라는 분위기였고 프랭클린이 2대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 고령이었다. 조지 워싱턴(1732~99)은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프랭클린은 이듬해인 1790년 사망했다. ‘프랭클린은 미국 대통령이 되지 못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는 영원히 미국인의 ‘마음의 대통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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