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종교 가로지른 두 멘토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A2면 | 기사입력 2012-11-03 03:16 | 최종수정 2012-11-03 04:50
과학자 스님 리카르 사랑을 베풀라 하고
무지개 신부 차동엽 스승을 만나라 하네
[동아일보]
“Be good, do good(착해져라, 선한 일을 해라).”(마티유 리카르 스님·66)
“행복은 세상 사람과 공유할 때 완성된다.”(차동엽 신부·54)
티베트 불교와 가톨릭으로 믿음의 뿌리는 다르지만 행복의 핵심은 비슷했다.
1일 방한한 리카르 스님은 철학자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랑스 명문가 출신이다. 20대 중반에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세포유전공학 박사학위를 딴 그는 27세의 나이에 돌연 히말라야로 날아가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다. 베스트셀러 ‘승려와 철학자’ 등 수십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사진가, 달라이 라마의 프랑스어 통역관이기도 하다.
차 신부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해 미래가 보장됐지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고민하는 청년이었다. 군복무 뒤 뒤늦게 신부가 됐고 지금은 가톨릭계의 소문난 ‘인생해설가’로 불린다. 그의 책 ‘무지개 원리’는 100만 부 이상, ‘바보 zone’은 10만 부 이상 판매됐다. 한 해 600회 이상의 강연을 하고 있다. 삶에서 닮은꼴의 징검다리를 밟아온 두 사람이 2일 오전 스님의 사진전이 개최된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미국의 한 대학이 실시한 검사결과 긍정적 감정과 관련한 뇌의 전전두피질 활동수치가 가장 높게 나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린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영국 기자가 과장했다. 1만∼6만 시간을 명상 수행한 20명을 조사했는데 내 수치가 높았다. 그렇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지구상 75억 인구 중에 누가 가장 행복한지, 어떻게 순위를 매길 수 있나.”
스님은 “이기적 행복은 의미가 없다”며 “자비 또는 이타적 사랑이 빠진 행복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차 신부도 “가톨릭 사제로서 나의 행복은 밑바닥에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이지만 완벽한 것이 아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대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스스로 깨닫는 현자(賢者), 스승을 보고 배워 깨닫는 이들, 깨닫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이들 등 세 부류로 나눴다. 가장 큰 스승은 물론 예수님이고, 내 삶에서 만난 예수를 닮은 스승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었다.”(차 신부)
차 신부는 최근 추기경의 가르침을 엮은 책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리카르 스님은 “티베트에서 만난 스승들은 살아있는 모델이자 메신저다. 그들을 보면서 행복한 삶이 ‘빈말’이 아니라 가능하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종교가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라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차 신부는 “종교 간 분쟁의 책임은 우선 지도자에게 있다”면서 “세상의 변화에 문을 닫은 근본주의와 원리주의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리카르 스님은 “종교 분쟁은 정말로 종교의 나쁜 예”라며 “미움을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이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둘의 대화는 영어 통역으로 진행됐지만 마음을 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서로의 호칭은 ‘빅 브러더(big brother)’와 ‘파더(Father·신부)’가 됐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강연가로서의 공통된 삶도 화제가 됐다.
“1년에 80회 정도 비행기표를 살 정도로 바쁘다. 그래서 1년에 3, 4개월 네팔에서 홀로 하는 독거명상(獨居瞑想)을 한다. 그러면서 내가 20대 때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를 되새긴다.”(리카르 스님)
“시인 프로스트는 어떻게 좋은 작품을 썼느냐고 묻자 ‘시간을 훔쳤다’고 했다. 나도 열차와 차, 비행기 안에서 수시로 시간을 훔치려고 노력한다.(웃음)”(차 신부)
스님은 박장대소하며 “정말 맞다. 나도 목욕할 때도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동서양 문화와 가치의 공유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문답도 나왔다.
“동양인으로 서구 신앙인 가톨릭 신부가 된 사람과 서양인으로 불교에 귀의한 스님의 만남이다. 그런데 (나의) 신앙에 유교적 가치와 불교적 이해가 녹아 있는 것을 자주 느낀다. 어떤가?”(차 신부)
“그렇다. (내 경우) 과학성과 논리성은 몸에 아직도 배어 있는 것 같다. 오늘 이 만남이 종교 간 이해와 평화의 상징이다.”(리카르 스님)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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