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대가족의 경제학] 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 “한 지붕 네 가족 ‘공동체’의 지속 가능 비결”
| 기사입력 2013-05-24 09:18
땅을 사고 각자의 취향과 형편에 맞게 설계한 공동의 집을 짓고 그렇게 어울려 산 지 어느덧 11년째. ‘예띠의 집’이라 이름 붙인 아주 특별한 이 가족공동체는 이제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범 사례가 됐다.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고, 가족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이 가족이라고 왜 시행착오가 없었을까. 대가족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한 이 가족의 아주 특별한 비결.
“우리들은 예띠의 집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밉니다.” ‘예띠의 집 헌장’ 첫 번째 조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5개 항목으로 된 헌장의 맥락은 하나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더불어 행복하게 어울려 사는 것. 굉장히 단순하고 보편적인 말이지만 실제 그렇게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해관계 없는 가족이라고 해서 쉬울 리 만무. 오히려 가까운 사이라는 미명하에 오해와 갈등의 여지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1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예띠의 집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어울려 사는 게 일상화된 지금 상태로도 그렇지만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슬기롭게 풀어갔다는 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실리적 장점보다 정서적 안정감이 주는 만족 커
(사)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에서 만난 이근후(79·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 박사와 이동원(77·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박사 부부는 “오늘은 기분이 유달리 좋은 날”이라 했다. 알고 보니 여성가족부에 후원을 신청한 ‘스마트 에이징’ 즉 아름답게 늙어가기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이 ‘오케이’를 받은 것이었다.
최근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책을 내기도 한 이근후 박사와 아내 이동원 박사는 가족아카데미아에서 오랫동안 가족과 사회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해온 터.
‘가족’에 대한 이 박사 부부의 관심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3대가 한 지붕 아래서 따로 또 같이 모여 살며 ‘가족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도 그런 맥락. 그러나 사실 이 박사 부부가 2남2녀의 자녀들과 함께 대가족을 이뤄 살게 된 것은 큰아들 내외의 제의에서 비롯됐다.
“어차피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편찮으시면 장남인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자식들이 다같이 모시고 살면 좋지 않으냐”는 게 큰아들 내외의 뜻이었다.
“사실 처음엔 제가 반대했어요. 저도 3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봤지만, 아무리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도 불편한 일이거든요. 요새는 며느리들이 시금치도 안 먹는다던데 며느리 입장에서는 괜한 시집살이일 수 있고, 저 역시 왜 며느리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나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오히려 적극적이었어요. 직접 앞장서서 의견을 구하고 다녔죠.”
그렇게 말을 꺼낸 후 2년, 서울 구기동에 드디어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한 지붕 네 가족’이 탄생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은 가족들이 서로 뜻을 모으고 합의를 하고 원칙을 세우는 심리적 과정부터 시작해 실제 건축을 하는 물리적 과정이 포함됐다.
‘예띠의 집’이라 이름 붙인 총 다섯 세대의 가족공동체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지만 각각 현관도 다르고 철저히 독립된 라이프스타일을 보장받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은 집을 지을 때부터 적용돼 각 집마다 경제적 능력, 식구 수에 따라 평수도 다르고 구조도 제각각일 정도다.
10년 넘게 ‘이탈자’ 없이 모여 사는 형태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얼굴 한 번 못 보는 경우도 있고, 가족모임도 전체 공지를 통해 미리 정해진 날이나 전원 합의가 된 ‘번개 모임’이라야 가능하다.
어쩌다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할 때도 관계를 막론하고 ‘가족이니까 무조건적인 양해’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보다 더 철저하게 예의를 지키고 정해진 규칙을 지킨다. 물론 이들 가족이라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서로의 상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그걸 공유하는 범위로 좁히려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지요. 다만 우리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갈까에 관심을 갖자고 했어요. ‘아주 친해야 한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투지 말자는 합의를 한 겁니다.
그렇게 10년간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은 학습이 많이 됐지요. 처음 2~3년이 고비인 것 같아요. 취향도 다르고 라이프스타일도 다르잖아요. 이렇게도 다퉈보고 저렇게도 다퉈보면서 이젠 서로에 대해 파악이 돼 어떻게 하면 안 부딪치고 편하게 살 수 있는지를 터득했지요. 처음엔 접촉을 많이 하고 그만큼 많이 부딪쳤다면, 지금은 접촉을 줄이고 대신 부딪치는 일도 줄어들게 된 식이에요.”
같이 살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만 생각하기엔 한 지붕살이의 장점이 너무 많았던 것도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게 된 이유였다. 모여 살기 전까지 자기 집이 없었던 자녀들이 각자의 집을 갖게 된 것이나, 부모 부양의 부담을 나누게 된 것 등 실리적 효과도 적지 않았지만, 그보다 가족들이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과 형제자매가 없었던 손자손녀들이 사촌들과 함께 자라면서 누리는 혜택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일 덕 본 건 우리 부부지요.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케어를 해주고 있으니까요. 아침식사만 저희가 해결하면 평일 저녁식사와 주말은 당번을 정해 아이들이 챙겨주죠. 또 남편이 아프면 시간 되는 사람이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하고, 의사인 딸이 옆에 있으니 주치의가 있는 셈이지요. 손자손녀를 자주 보니 웃을 일도 많고요.
다른 소소한 도움도 받지만 가장 큰 건 정신적 안정감이에요. 우리 다음으론 손자손녀들이 혜택을 많이 봤죠. 각 집마다 아이들이 하나인데도 모여서 지내니 혼자 크는 외로움이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반드시 육아 문제 때문에 모여 살게 된 건 아니었지만, 맞벌이인 아이들을 대신해 우리 부부가 시간이 될 때마다 손자손녀들을 봐줬으니 그것도 실리적이었죠. 지난번엔 한 손자 녀석이 말하기를 할아버지가 가장 잘한 게 우리를 같이 살게 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물리적 거리보다 ‘네트워킹’이 중요한 미래의 가족
이 박사 부부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주위에서는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아이들의 반대로 좌절됐거나, 혹은 지레짐작해 추진조차 못하는 이들에게 부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으면서 결과만 보고 시도한다면 누가 해도 실패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예띠의 집’ 가족공동체는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탄생한 결과물이 아닌 뿌리가 깊은 나무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씨앗을 많이 뿌렸던 셈이지요. 아이들 스스로 크리스마스 가족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 가족 여행도 일정에서부터 비용까지 직접 실천 가능한 플랜을 짜고 그랬어요. 아이들을 결혼시키면서 남편이 6개월은 같이 살자고 제안해 그렇게 했던 것도 오늘의 씨앗이 됐죠. 막내는 우리와 같이 살다가 합류했고, 다른 집들도 실제로 다들 6개월 이상씩 우리와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덜했을 거예요. 얼마 전에 한 지인이 자녀들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하던데, 우리처럼 모여 살 수 있는 기반이 차곡차곡 쌓이지 않은 가족들이 갑자기 실행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에요.”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 이 박사 부부는 지금부터라도 서로 의견을 내고 동의를 구하는 등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처럼 꼭 같은 건물이 아니더라도 근거리에 모여 살며 물리적으로 독립된 환경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느낀다면 가족회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선에서 일종의 ‘계약’을 하는 것도 좋다. 또 하나, 부부가 강조하는 것은 부모 세대가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관계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한다고 말한다.
“모여 산다고 항상 모든 걸 같이 한다는 건 절대 아닌데, 그러려면 부모 세대가 오픈 마인드로 많은 걸 양보해야 해요. 약속해 놓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 여행을 일 년에 한두 번 함께 가는데 가서 공유하는 시간을 미리 정하고 나머지는 각자 놀아요. 따로 또 같이 ‘헤쳐 모여’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같이 가는 여행길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좋지요.”
이미 신 대가족을 이뤄 살고 있는 이 박사 부부는 이론적으로도 신 대가족의 형태는 미래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몇십 년 전에 쓴 ‘제3의 물결’에서 말하기를 미래의 가족은 확대가족의 형태라고 말했어요. 당시 모두가 핵가족화된다고 주장할 때이니 그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질 않았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과거 농경사회에서 확대가족이 노동력이었고 그게 경쟁력이었다면 미래의 확대가족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한발 앞서갈 수 있는 겁니다. 토플러가 말한 확대가족은 한 지붕 밑에 사는 확대가족이 아닌 네트워킹이 형성된, 지금의 신 대가족 모습을 말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이근후)
“루즈 베네딕트가 1960년대에 한국에 왔을 당시 우리나라는 대가족이 많았어요. 그걸 보고 그는 ‘가장 바람직한 게 삼대가족’이라고 말했지요. 사회학적으로 보더라도 바람직한 신가족의 모습은 인터 디펜던트, 즉 상호의존적인 가족이에요. 우리나라는 너무 끼고 살아서, 서양은 너무 개인적이어서 각각 갈등이 많이 생기죠. 개인을 존중하면서 상호 끈을 놓지 않는 가족의 모습일 때 서로 즐거움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동원)
“우리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갈까에 관심을 갖자고 했어요. ‘아주 친해야 한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투지 말자는 합의를 한 겁니다.”
박진영 기자
[新 대가족의 경제학]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 “가족은 엄청난 자원, 모여 살기에 도전해보라”
| 기사입력 2013-05-24 09:18
“모여 살아 보니 좋은 점이 더 많더라”는 게 실제로 신(新)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의 ‘증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현실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진다면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신 대가족 형태의 각 세대별 장단점과 모여 살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10계명’까지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가정도 경영이다’, ‘가정을 경영하자’. 2000년 1월 1일 강학중 소장이 가정경영연구소를 출범시키면서 내건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교육을 통해 가족 문제를 예방하고자 설립한 가정경영연구소는 실제 사회적으로 기여한 바가 크다. 가족상담실을 열고 수많은 사례를 상담하며 문제 예방과 가족 치료에도 힘썼으며, 부부에서 부모와 자식 등 다양한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연구, 교육함으로써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해야 사회도, 기업도, 국가도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해보였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도 신 대가족 형태는 장점이 더 많다는 게 강 소장의 얘기다. 다만 누군가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또 누군가는 그럼에도 여전히 심리적 두려움이 앞서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할 터. 그렇다고 답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각자의 처지에 맞게 합리적 선택을 하면 된다.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신 대가족’이 확산 추세라고 합니다. 소장님도 체감하시나요.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그보다 더 많은 분들이 생각은 하지만 실행을 못 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자식세대가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해 부담주고 싶지 않다며 말조차 꺼내지 않는 경우도 있죠. 반대로 자식들이 먼저 원해서 모여 사는 경우도 있어요. 저의 한 지인도 자녀들이 원해서 자식들이 각자 형편에 맞춰 돈을 각출하고 건물을 지어 모여 살고 있기도 하고요. 같은 건물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자주 왕래하는 가족도 있고, 그 형태가 다양합니다.”
신 대가족 형태가 확산되는 이유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게 육아 아닐까요. 지금은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죠. 미혼보다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더 늘어났을 정도니까요. 맞벌이가 늘어난 이유에는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을 더 원하는 기업들이 많아졌고 여성들도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많아지는 등 달라진 시대 분위기가 한몫하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육아 문제가 늘 걸림돌인 겁니다. 믿고 맡길 만한 보육센터를 찾기도 쉽지 않지만 사실 내 가족이 아이를 봐주는 것만큼 안심이 되진 않죠. 그러다 보니 부모님에게 육아를 의존하는 가정이 늘어가고, 자연히 부모님을 중심으로 모여 살게 되는 겁니다. 시댁보다는 친정 중심으로 모여 사는 사례가 많은 이유도 아이를 맡기기에 비교적 친정 부모님이 더 편하기 때문이고요.”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이 하나 둘 품을 떠나고, 일에서도 은퇴를 하면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손자, 손녀를 봐주면서 보람도 느끼고 아이들이 가까이에 있으니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지요. 요즘은 대부분 부모님들에게 육아의 대가를 지불하는 자녀들이 많은데, 꼭 대가를 바라고 돌봐주는 건 아니더라도 자기 생활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고요. 그렇다고 해도 함께 모여 살 경우, 오히려 자식들이 부모님들에게 도움을 더 많이 받는 측면이 있어요.”
신 대가족 형태가 주는 정서적·경제적 효과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육아 문제를 비롯해 자녀 세대는 실제 경제적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어요. 반면 심리적 측면에서는 부모 세대가 더 이익이죠. 노년기에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나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고, 근거리에 자녀들이 있으니 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안정적인 겁니다. 자식들 입장에서도 부모 가까이에서 내가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하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을 얻을 테고요. 손자, 손녀들이 자라는 환경적 측면에서 봐도 좋은 점이 많아요. 조부모들의 영향을 받는 아이들은 말투도 다르고 식생도 달라요. 인스턴트보다 된장국, 김치를 더 즐겨 먹거든요.”
모여 살다 보면 부모 자식 간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 남매 등 수평적 관계에서도 주고받는 게 많을 것 같은데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공동 육아나 품앗이를 하는 세상인데, 형제자매들이 근거리에 모여 살면 그만한 공동체가 또 없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은 물질로, 시간이 여유 있는 집은 시간으로 서로 나누기도 하고, 또 물건 공동구매나 아이 옷 물려 입기 등 그 경제적 혜택은 말로 다 못합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에서도 서로가 공평하게 역할을 분담하게 되니 부담은 줄고 자부심은 늘어나겠죠.”
일본에서도 경제적 혜택을 이유로 모여 사는 대가족이 늘고 있다는데, 다른 나라는 어떻습니까.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확실히 모여 사는 가족들이 늘어났어요. 극단적 경험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그런 의미에서 더 자주 만나고 서로 돌봐주기 위해 모여 살게 된 겁니다. 동양의 개념처럼 자식 세대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한 게 목적이 아니라,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때를 대비해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물론 모여 살다 보면 그 안에서 생기는 문제나 갈등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각자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아니라 육아 방식도 다르니 부딪칠 만한 요소는 넘치고 넘쳐요. 그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이해가 아니라 일종의 ‘합의’를 하고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해주고, 어울려 살면서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규칙을 세우는 등 모두가 수긍할 만한 합리적 계약을 해야 해요. 그럼에도 만일 갈등이 심해지면 나중에 다시 주거를 독립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돼 있어야 합니다. ”
모여 산다면 어느 정도의 거리가 좋을까요.
“서양 말로 하면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 우리 식으로 하면 국이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보편적이지만, 심리적 거리는 사실 가족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할 수가 없어요. 적당한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20분 거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5분 거리일 수도 있을 겁니다. 모여 살기로 했다면 그 ‘거리’에 대해서도 합의를 해야겠죠.”
끝으로 신 대가족 형태가 앞으로도 더 확산될 것으로 보시나요.
“그렇지 않을까요. 맞벌이는 앞으로 더 늘어날 테고, 노인 문제는 더 심각해질 테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신 대가족 형태가 출현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사회 제도나 시스템으로 이런 문제를 풀어가는 게 맞는데 사실 앞으로도 많은 부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니 결국은 가족 안에서 방법을 찾게 되겠죠. 꼭 그런 면에서 접근하지 않더라도 가족은 정말 훌륭한 자원이에요. 부모님이 건강한 것도 자원이고, 음식 솜씨가 좋은 자녀도 자원이죠. 그 ‘자원’들이 어울려 살면서 큰 갈등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엄청난 자원이고, 또 다른 ‘머니(money)’입니다. 모여 살기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강학중 소장은…
영국 옥스퍼드브룩스대 중퇴. 핀란드 헬싱키 경제대학 경영대학원 졸업. 경희대 대학원 가족학 박사. (주)대교 대표이사. 한국가족복지학회 부회장. 대한가정학회 부회장. (사)건강가족실천운동본부 총재. 한국사이버대 부총장. 현 가정경영연구소장.
新 대가족을 위한 10계명
1. 대가족의 장점과 단점을 꼼꼼하게 따져보라.
2. 모여 살 것인지 아닌지는 꼭 합의해서 결정하라.
3. 예상 문제에 대한 규칙을 미리 정하라.
4.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
5. 가족 간에도 예의를 지켜라.
6. 역할 분담을 확실하게 하라.
7.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버려라.
8. 직접, 부드럽게 대화하며 갈등을 풀어나가라.
9. 갈등이 심해지면 독립된 공간으로 주거 환경을 바꿔라.
10. 대가족이 가진 장점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박진영 기자
[新 대가족의 경제학] 실리적 효과에서 정서적 안정까지
| 기사입력 2013-05-24 09:18
5월, 가정의 달이다. 그간 가족제도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고, 극단적으로는 ‘가족 해체’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가족은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위로받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신 대가족은 지금의 상황에서 ‘답’일지도 모른다.
과거 삼대 이상 한 집에 같이 살며 불편함을 참던 대가족이 아닌,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독립된 생활을 유지하되 관계는 ‘긴밀한’ 신 대가족이 확산 추세다. 그 이면에는 맞벌이로 인한 아이 양육 문제 해결과 부모 부양의 부담을 공동으로 나눠 지고자 하는 현실적인 측면도 포함돼 있지만, 실제로 신 대가족을 이뤄 살고 있는 이들은 정서적 만족감이 더 크다고 말한다. 신 대가족의 경제적, 혹은 그 이상의 심리적 효과는 어디까지일까.
경기도 분당에 사는 이은정 씨는 요즘 서울에 거주 중인 친정 부모님을 근처로 모셔오기 위해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이미 바로 옆 단지에 여동생 부부가 살고 있고, 남동생 부부도 조만간 근처로 이사 올 예정이다. 이 가족이 근거리에 모여 살기로 ‘합의’를 한 것은 육아 문제가 일차적이다.
맏딸인 이 씨를 제외하고 모두 맞벌이를 하고 있는 터라, 아이들을 이 씨와 부모님이 맡아서 돌봐주기로 한 것이다. 그 덕분에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둘째 딸의 아이들을 봐줬던 부모님은 고생을 덜게 됐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지낼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들떠 있다. 이들 가족은 ‘모여 살기’ 계획이 완료되면 단합 차원에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두 아이를 둔 프리랜서인 정미영 씨는 친정어머니가 살고 있는 빌라 아래층으로 집을 옮겼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줬던 친정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해지자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결정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여동생 부부도 살고 있어 자매는 상황에 따라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보살핀다는 생각이다.
한동안 육아 문제 때문에 친정을 중심으로 근거리에 모여 사는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신 모계사회’니 ‘장서(장모-사위) 갈등’이니 하는 말들도 화제였었다. 갈수록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육아 문제는 여전히 ‘근거리 가족’을 양산하고 있지만, 여기에 노령화와 그로 인한 노인문제 등이 대두되면서 ‘부모 부양’의 합리적 방법으로도 모여 살기를 택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른바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신 대가족’이다.
가족끼리 도와가면서 서로 부담을 더니 경제적 이득은 물론이요,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크다는 점이 신 대가족의 가장 큰 장점. 표면적인 ‘경제적’ 비용 외에도 공동구매 등을 통한 합리적 소비를 하기도 하고 아예 ‘공동 계좌’를 만들어 가족 행사 시 경비를 지출하는 등 부가적 혜택들도 적지 않다.
특히 가족들이 모여 살면서 노년의 부모 세대가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생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일 만나서가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해방되고 큰 위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대현 서울대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공해서 너무 바쁜 자녀는 부모에게 자랑거리는 되지만, 그 자랑거리가 마음의 외로움, 심리적 허기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 입장에서는 성공한 자식보다 자주 찾아와 주는 자녀가 훨씬 부모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적·심리적 효율성 때문에 이웃나라 일본도 때 아닌 대가족 붐이 일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가족이 모여 사는 트렌드가 형성되기도 했다. 신 대가족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생존 전략 차원에서 탄생했지만, 장점이 이토록 많으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글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최장성 코트라 오사카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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