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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5
조회수
5,343
첨부파일
-
세계는 패러독스 덩어리, 과학은 각본 없는 드라마
A23면4단| 기사입력 2012-11-24 03:06
 
 
집단 생명 위해 자폭 불사하는 개미… 생명체는 역설로 가득

생사와 성쇄 같은 상반된 현상들도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

역설 속 긴장에 맞서 과학은 진보한다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

안드레아스 바그너 지음|김상우 옮김

와이즈북|405쪽|1만9000원

'모든 크레타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크레타섬 철학자인 에피메니데스가 했다는 이 말. 그의 말은 참인가, 거짓인가. 만약 참이라면 그도 역시 크레타섬 사람이므로 이 말은 거짓. 이 말이 거짓이라면 같은 논리에 의해, 크레타섬 사람들 말은 참인 게 되고, 그의 말 역시 다시 참이 된다. 이른바 '에피메니데스의 패러독스(paradox)'. 꼬리를 물고 도는 뱀처럼 자가당착에 빠지는 진술 혹은 명제를 가리킨다. 진화생물학의 대가인 저자는 생명 혹은 우리의 삶 자체가 이런 이율배반, 패러독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흔히 세상을 정신과 물질, 나와 타자, 삶과 죽음, 부분과 전체, 번영과 멸종, 우연과 필연 등의 대립항으로 이해하지만, 저자는 현대 생물학계의 넓고 깊은 연구 성과를 토대로 그 경계의 벽을 허문다.

◇서로 얽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가령, 현대 생물학의 쟁점 중 하나인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관계를 보자. 캘리포니아 땅다람쥐는 '이타주의'의 대표 사례로 인용된다. 어미는 새끼들이 있는 땅속 보금자리로 방울뱀이 다가오면 모래를 뿌려대다가 급기야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른다. 포식자에게는 '날 잡아먹어'라는 신호음. 이 미물의 모성애는 주저 없이 자신을 제물로 던진다. 아교수류탄 개미는 한 술 더 뜬다. 집단의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자폭'도 불사한다. 적이 침입하면 자기 몸속 분비샘을 폭파시켜 끈끈한 아교 성분을 분출하는 방식으로 침입자를 얽어맨 뒤 장렬히 전사한다. 하지만 이마저 '가장된 이기주의'라면? 개별 유기체의 관점에선 이타적인 행동도 유전자 관점에서는 결국 이기적 행동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른바 '이기적 유전자'론. 하지만 유전적으로도 관계가 없으면서 운명을 같이하는 유기체들이 허다하다. 곤충과 꽃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서로 종이 다른데도 진딧물은 개미에게 꿀을 주고 그 대가로 개미는 진딧물을 애지중지 아낀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기생'이야말로 모든 동식물에 해당하는 본질적 특성이라고 적는다.

 
 
◇뫼비우스 띠처럼 얽힌 생사

삶과 죽음, 생성과 파괴도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대져 있다. 유기체가 형성되는 동안 하위 생명단위인 세포들은 허다하게 자신을 희생한다. 태아가 자라는 동안 어머니 자궁 속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신경망은 출산 즈음 근육세포에 붙어 있던 신경세포들 중 하나만 남고 다 '자살'한다. 메시지의 혼선을 막아 몸의 움직임을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서다. 우리 몸에서는 평소에도 매일 100만개 이상의 세포들이 자기 목숨을 바치고 있다.

지구만 해도 '생명의 산실'인 동시에 거대한 무덤이다. 그동안 지구는 생명체의 반 이상이 죽어나간 대량 멸종을 다섯 차례나 겪었다. 지금껏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들 중 99.9%가 이미 자취를 감췄다. 그 위에서 인류를 포함한 지금의 만물이 태연히 숨을 쉰다.

◇질서와 혼돈 속 우연과 필연

어딘가를 향하는 듯한 진화의 길도 실은 미궁이다. 가령 기린의 긴 목이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기 위한 것이라면, 그 조상은 왜 나무에 올라가지 않고 목을 늘이는 방식을 택했을까? 기린은 긴 목 때문에 불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위태로운 자세로 못의 물을 들이켜는 장면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살아남은 생명체가 꼭 '최선'이라는 법은 없다. 저자는 진화 과정에서도 우연이 끊임없이 개입했다고 지적한다. 돌연변이야말로 종의 행로를 바꿔놓는 결정타다. 미세한 세포에서 광활한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우연과 법칙은 촘촘한 직물 구조를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적 힘으로서의 과학

결국 패러독스야말로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힘이다. 이런 자각이 중요한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은 겸허하게, 다른 의견에는 좀 더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둘째, 역설은 과학을 인간화한다. 자연법칙은 절대 진리의 구조물이 아니라 단지 '아주 정교한 은유'라는 인식이다. 결국 과학자의 진리 추구도 미의 영역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때 '역설'은 세상을 확실성의 영역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 그 속에서 과학은 끝이 정해지지 않은 드라마다. 그래서 과학은 더욱더 '해볼 만한 모험'이라고 저자는 독려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 다윈의 진화론만 해도 당대 사람들로서는 믿기 어려운 급진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끝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놓았고 '진보'의 방향을 이끌었다.

저자가 책의 대단원을 폴 엘뤼아르(1895~1952)의 시 '세상을 살 권리와 의무'로 장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나든 아니면 또 다른 한 사람/ 그게 누구든/ 한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와 동시에 참여와 저항을 노래했던 그야말로 패러독스의 시인이었다.

생물학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징검다리 삼아 삶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색의 길로 이끄는 책. 다만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여정이 일반 독자들로서는 다소 벅차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흠이다.

[전병근 기자 ]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 
이 책의 생물학적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본성과 핵심에 접근하는 앎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패러독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는 생물학에 대한 이해를 넘어 철학적 사색에 이르게 한다. 생명 저변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패러독스의 탐구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깊이 고찰할 수 있다. 저자는 과학적 설명을 넘어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과학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오랜 철학 논쟁과 과학 논쟁에 대해서도 숙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준다.
 
저자 안드레아스 바그너(ANDREAS WAGNER)는 취리히 대학교의 진화생물학 및 환경학 연구소 교수이자 미국 뉴멕시코 산타페 연구소 외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일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마쳤으며, 그의 논문은 생물학 분야 최고 논문상인 J. S. 니콜라스 어워드를 받았다. 유전자에서 복잡한 분자 네트워크에 이르는 생물 시스템의 진화를 주 연구 분야로 하여 100편 이상의 과학 논문과, 《생명 체계의 굳건함과 진화성ROBUSTNESS AND EVOLVABILITY IN LIVING SYSTEMS》, 그리고 생명 체계의 혁신에 관한 포괄적인 이론을 제시한 《진화론적 혁신의 기원THE ORIGINS OF EVOLUTIONARY INNOVATIONS》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그의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PARADOXICAL LIFE》는 ‘독립출판협회IPBA의 올해의 책 2010년 과학 분야 최고의 저서’로 선정되었다. 세계 여러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으며, 독일 베를린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와 프랑스 뷔르 쉬르 이베트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 DES HAUTES ETUDES를 포함한 세계 여러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 연구교수, 1000 생물학 교수단FACULTY OF 1000 BIOLOGY 교수로 선출된 바 있으며, 국제학술지 《바이오에세이BIOESSAYS》와 《BMC 진화생물학BMC EVOLUTIONARY BIOLOGY》 등 여러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CHAPTER 1
생명과 우주, 그 창조의 드라마

신호의 세계: 프리메이슨의 문장, 십자가, 큰 키
생존 게임: 포식?유혹?경고 신호
인간과 동물의 커뮤니케이션과 그 유사점
곤충들의 집단 커뮤니케이션
미생물도 대화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물질과 의미의 상호작용
눈: 세포들의 대화가 창조한 소우주
기생과 숙주의 공생 커뮤니케이션
분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무생물의 커뮤니케이션
과학은 대화다
인과론적 세계관의 한계

CHAPTER 2
자아와 타자의 패러독스

진정한 이타주의는 존재하는가?
진화 게임 : 자원 다툼, 번식 투쟁, 유전자 복제
인간의 유전과 유전적 근친도
이타주의가 존재하는 이유
자연법칙으로 본 부모의 희생
죽음을 통한 불멸
유전적 근친도와 이기주의
자아­타자의 구분을 뛰어넘는 거대한 운명의 사슬
숙주와 기생충의 결합
관계의 대가
죄수의 딜레마: 배신과 협력의 득실
관계의 보편성: 자아와 타자는 분리될 수 없다
자아와 타자는 또한 분리된 존재다

CHAPTER 3
부분과 전체의 패러독스

생명은 무수한 ‘부분’으로 축조된 ‘전체’
부분은 전체를, 전체는 부분을 결정한다
부분과 전체의 상호성
무엇이 박테리아를 헤엄치게 하는가?
자신의 목적을 향해 헤엄치는 분자들
유전자와 행동 메커니즘
뇌 없는 지능: 무엇이 유기체인가?
뭉쳐야 사는 생명들: 생명 단위는 개체인가, 군집인가?
무엇을 전체로 볼 것인가? 결국 선택의 문제
진화의 역사를 복원하기 힘든 중대한 이유
모호한 종의 경계

CHAPTER 4
번영과 멸종의 패러독스

생존을 위한 러시안룰렛 게임
안전에 내재된 위험
승률이 희박한 게임은 혁신 기회
생존 투쟁이 낳은 삶의 양식
안전과 위험의 패러독스
중립적 변화와 혁신
대량 멸종이 던지는 메시지: 영원히 안전한 삶은 없다
‘살아 있는 화석’이 말해주는 것: 모든 생명은 일시적이다
생명 진화의 방향은 있는가?
생명의 목적은 있는가?
안전과 위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CHAPTER 5
삶과 죽음의 패러독스

세포자살: 매 순간 일어나는 죽음과 탄생
세포의 대화: 자살 명령과 자살 수용
끝없이 되풀이되는 파괴와 창조
자연사의 원인
죽음의 혜택들
창조의 대가는 죽음

CHAPTER 6
우연과 필연의 패러독스

모래로 쌓은 성: 우연에서 파생된 필연
그리고 성으로 만들어진 모래: 필연에서 파생된 우연
우리의 선택과 그 의미
박테리아, 꿀벌, 개미의 행동 선택과 집단 결정
선택과 예측 불가능성
생명체들이 우연과 필연의 세상에 대처하는 방식
자연을 보는 관점의 오류

CHAPTER 7
생명의 다양한 목적과 지적 설계론에 대한 반증

효소의 신비로운 기능들
세포 내 분자 메커니즘
우리가 아는 지식은 분자의 극히 일부
눈은 과학적 통찰의 원천이자 영원한 수수께끼
생명의 다양한 목적과 지적 설계론의 맹점
자유의 대가

CHAPTER 8
과학자와 선택의 힘

과학의 목적, 설명인가 예측인가?
끝없는 설명의 미로
과학과 선택의 힘
아인슈타인의 급진적 선택: 세계를 다르게 보는 방식
베게너의 세계관 전쟁: 쪼그라드는 사과 이론 VS 떠다니는 대륙 이론
다윈의 위험한 선택: 인간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뒤엎은 시각
과학사를 바꾼 선택들
선택의 힘: 과학 혁명

CHAPTER 9
과학, 그리고 지식의 한계

과학의 한계: 이론의 검증 불가능성
과학의 한계: 반복적인 질문의 불가능성
과학의 한계:증명할 수 없는 정리들
컴퓨터 패러독스
역설, 그 끝없는 논쟁의 근원

CHAPTER 10
자유의 힘, 자유의 짐

전체와 부분, 물질과 정신, 그리고 자아와 타자
민주주의의 역설, 자유의 역설
패러독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패러독스를 인식해야 하는 이유
선택의 짐
선택의 주체는 나, 그리고 우리들

저자 후기 / 패러독스는 세상을 창조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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