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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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의 역설’에 발목 잡힌 동양
지은이가 두 문명을 비교 분석하는 틀은 ‘사회발전 지수’이다. 사회발전이란 의식주를 해결하고 공동체 내부 분쟁을 해소하고 다른 공동체를 희생시켜 세력을 확장하며 다른 집단의 세력 확장 시도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쓰는 기술·조직·문화적 생존수단을 뜻한다. 지은이는 △에너지 획득 △조직화(도시성) △정보기술 △전쟁 수행능력의 4개 항목을 측정하여 사회발전 정도를 수치로 환산했다. 기준 시점을 서기 2000년으로 잡고 항목별로 250점 만점, 4개 항목을 합친 전체 만점을 1000점이 되도록 했다. 가령 2000년 동서양 최대 도시인 일본 도쿄는 ‘조직화’ 항목에서 만점(250점)을 받는다. 도쿄 인구 2670만명을 250으로 나누면 10만6800명당 1점이 되고, 따라서 2000년 서양 최대 도시 미국 뉴욕(인구 1670만명)은 156점이 된다. 이렇게 점수를 매겨 그래프를 그린 결과,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인 기원전 1만4000년부터 서기 541년까지는 서양 우위, 서기 541~550년 무렵부터 1773년까지는 동양 우위, 1773년 무렵부터 2000년까지는 서양 우위다. 좀더 보면, 동양의 사회발전이 처음 서양을 앞지른 541~550년은 위진남북조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시대다. 1773년은 근대 문명을 탄생시킨 영국 산업혁명의 출발점이다. 지은이는 이 지수를 들여다보면서 ‘발전의 역설’과 ‘후진성의 이점’이란 개념으로 사회 발전과 쇠퇴를 설명한다. 전자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외려 발전을 가로막는 힘이 점점 세져 단단한 천장을 형성한다는 역설, 후자는 문명의 핵심부를 모방할 방법이 잘 작동하지 않는 후진 지역에서 가장 큰 진보가 일어난다는 역설이다. 1773년 서양에 역전당하는 국면에서 동양은 발전의 역설에 발목 잡힌 반면 서유럽은 후진성의 이점을 활용했다. 서양은 사회발전 정체에 따른 여러 문제를 신대륙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고 대서양에 연해 있다는 ‘지리적’ 여건을 발판 삼아 사회발전 지수를 끌어올리면서 산업혁명을 태동시켰다는 것이다. 5000년 전 스페인·영국 등이 대서양 쪽으로 돌출해 있다는 점은 중심 무대인 메소포타미아·이집트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지리적 약점이었지만, 500년 전엔 대양을 횡단할 수 있는 배가 탄생하면서 지중해 옛 핵심부를 압도하는 큰 이점이 되었다. 발전의 역설이 절정에 이르러 뚫기 어려운 단단한 천장을 형성했던 사례는 로마 제국과 송나라의 경우다. 두 나라는 비슷한 천장에서 무너졌다. 1세기 로마는 43점에서 정점을 찍은 다음 천장에 부딪쳐 붕괴했고, 11세기 전성기 송나라는 42점에 다다른 뒤 쇠퇴했다. 14세기 초 명나라는 작은 나라들이 경쟁하던 유럽과 달리, 중앙집권적 거대 제국이었기에 정화의 원정 성과를 활용할 유인이 감소했다. 명 황제는 외려 원정 무역을 통해 상인 집단이 부유해질 것을 우려해 1430년대에 원양 항해를 금했다. 태평양을 횡단하면서까지 신대륙을 찾아낼 필요가 없었으므로 정화의 해외 원정이 인도양에서 멈춘 것이라고 지은이는 본다. 17세기 후반부터 승승장구하던 청나라는 산업혁명의 기세를 발판 삼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1842년 패배하면서 허물어졌고, 서양의 그래프는 천장을 뚫고 솟구친다. 2000년 현재 동양의 사회발전 지수는 556점(전쟁능력 13점), 서양은 886점(전쟁능력 250점)이다. 지은이는 이 지수의 추세로 보건대, 늦어도 2103년에는 동양의 사회발전이 서양을 앞서나갈 것으로 예측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