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를 위한 이데올로기’에 종언을 고하라 | |
---|---|
|
|
|
|
‘1%를 위한 이데올로기’에 종언을 고하라22면 | 기사입력 2013-06-02 20:56 | 최종수정 2013-06-02 22:15경제민주화가 성장을 방해한다는 주장, 부자증세를 하면 경제활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스티글리츠는 “상위 1%가 원치 않는 일을 하면 나머지 99%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건 ‘상위 1%’ 쪽에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일갈한다. 파이가 커져도 99%의 몫은 더 적어지고 있다 불평등이 너무 심해져 성장을 저해하는 지경이다 어떤 정책이 1%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99%의 몫을 키우는 것인지 ‘관념전쟁’을 벌여야 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70)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신작 <불평등의 대가>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일할 때, 그는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금 혜택을 줄이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당시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던 로버트 루빈이 “계급 전쟁을 하려는 것이냐”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스티글리츠는 ‘계급전쟁’을 하자는 사람이 아니다. 시장자본주의를 부인하지 않는 미국의 정통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경제에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뉴케인스주의’ 학파의 일원으로서, 시장을 절대시하는 ‘시카고 학파’에 대립각을 세워오긴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주류 경제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분석한다. 이는 그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물론 비주류 경제학자에게도 절대 주지 않는다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도 주주의 권리를 중시하고, 불평등을 어느 정도는 용인해야 한다고 말하고, 불평등의 부작용을 경제의 ‘효율성’ 저해로 분석하는 등 그의 ‘주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진 상층부를 일컫는 광의의 개념’이라고 정의한 ‘상위 1%’에 대해 적대적으로 보일 만큼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이 1%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망치고 있다는 신념 때문으로 보인다. “당신들에게 직장과 번영을 제공하는 대가로 우리가 상여금을 챙길 수 있게 해달라. 당신들 모두에게 한몫씩 나눠주겠다. 물론 우리 몫으로 더 많이 챙길 테니 그건 이해해주기 바란다.” 스티글리츠는 이를 미국 사회의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에서 오랫동안 유지돼온 합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파이가 커져도 99%에게 돌아오는 몫은 더 적어지고 있다. 현재 상위 1%에 속하는 가구가 소유한 부는 미국인 표본가구가 소유한 부보다 225배가 많다. 이는 1983년보다 두배나 심해진 것이다. 이 차이가 너무 커진 나머지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것(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99%의 소득이 늘지 않으니 총수요가 늘어날 수가 없다. 수요 부족은 투자 위축, 실업, 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미국 인구의 상위 1%가 국민소득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상위 1%가 소득의 약 20%를 저축한다고 할 때 그 소득 가운데 5%포인트를 하위계층이나 중위계층에게로 이동시키면(그래도 그들은 15%를 가져간다) 총수요는 곧바로 1% 가량 상승한다. 이 돈이 유통되면 국민총생산(GDP)은 1.5~2%포인트 가량 올라간다. 그만큼 실업률은 내려간다.” 하지만 1%는 자기 몫을 내놓기는커녕 ‘지대(rent) 추구’에 열중하고 있다. “부자가 되는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를 빼앗아 가지는 것이다.” 후자가 바로 ‘지대 추구’다. 은행들이 서민들의 정보 부족을 이용해 약탈적 대출로 돈을 뜯어내는 것, 대기업 경영진들이 경기 침체를 빌미삼아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하고 자신들의 보수는 두둑하게 챙기는 것, 인맥을 활용해 정부 물자 조달사업이나 자원개발권을 유리하게 따내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정치 시스템은 이런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정치는 국가 경제의 파이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오늘날 정치라는 싸움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상위 1%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규칙’을 정하기 위해 정치권에 막대한 선거자금을 대고, 정치인이나 관료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좋은 자리를 제공해 금전적인 보상을 해준다. 하지만 미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99%가 뭉쳐서 이런 상황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그들은 ‘관념전쟁’, ‘이데올로기 전쟁’을 해왔다. “어떤 정책이 ‘국민 대다수’에게 가장 유익한지를 둘러싸고 관념전쟁이 수행돼왔으며, 이 전쟁에서 상위 1%에게 이로운 것은 만인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확신을 만인의 마음에 새기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적한다. 하지만 “1%의 이익과 99%의 이익은 현저하게 다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1%의 이익에 부합하고, 어떤 것이 99%의 몫을 키우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위 1%가 퍼뜨리는 ‘신화’들과 이에 대한 스티글리츠 교수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면 전체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아니다! 레이건 정부 때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낮춘 뒤부터 불평등만 심화됐다. 현재 35%인 상위계층에 대한 과세율은 70% 정도가 적당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정부는 시장보다 무능하다. 따라서 작은 정부, 민영화, 정부 서비스의 민간 이관, 규제완화가 바람직하다. 아니다! 성공적인 경제 뒤에는 늘 정부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강한 정부는 부유층으로부터 부의 일부를 빼앗아 공교육 같은 공공투자에 투입해 사회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는 만큼, 복지를 줄여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아니다! 정부가 빚을 내더라도 공공투자를 확대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된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상위계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면 된다. 노동자들의 과도한 고용보장과 임금요구 때문에 노동시장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아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가장 높은 미국은 강력한 노동자 보호정책을 시행하는 스웨덴, 독일보다 경제성과가 떨어진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하고, 물가안정은 경제에 가장 중요하다. 아니다! 중앙은행은 책임성과 대표성을 강화해야 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물가보다 일자리와 임금이 더 중요하다. 소득 불평등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경제를 악화시켜 빈곤층에게까지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아니다! 좀더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면 좀더 역동적인 경제를 이룩할 수 있다. 상위 1%는 “또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열심히 99%를 설득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일반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를 확보하고 지금까지 해온 경제정책을 반대방향으로 바꿔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