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메인이미지
top버튼

자유게시판

Home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VIEW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지음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8
조회수
4,761
첨부파일
-

[인문 사회]삶의 의미 곱씹게 하는 빛나는 통찰

동아일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A19면의 2단기사입니다.A19면2단| 기사입력 2013-07-06 03:09 | 최종수정 2013-07-06 06:56 기사원문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지음·김동규 옮김/423쪽·1만6000원/사월의책

[동아일보]

철학서를 읽으면서 이만한 감동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마르틴 부버나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을 다룬 책에서나 접할 만한 감동을 안겨 준다.

엄밀하게 말하면 철학서도 아니다. 두 명의 필자는 미국 대륙의 서쪽과 동쪽을 대표하는 철학교수다. 드레이퍼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미국 최고의 하이데거 실존철학가로 꼽힌다. 켈리 하버드대 교수는 프랑스와 독일 현상학의 대가다. 하이데거는 현상학과 실존철학 양 분야의 태두다. 이 책은 그런 하이데거 철학의 미국적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책에는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하이데거의 철학개념은 없다. 하이데거의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 단테의 ‘신곡’, 허먼 멜빌의 ‘모비 딕’ 같은 문학작품에 대한 분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요절한 천재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와 오프라 윈프리 쇼가 사랑한 ‘칙릿’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 같은 현대작가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양문명이 기독교세례를 거쳐 중세와 르네상스, 계몽주의, 산업화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사의 변화도 추적한다. 스포츠 최고의 명장면에 대한 분석도 빼놓을 수 없다. 농구선수 빌 브래들리가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41득점을 올린 경기에서 2만여 관중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친 순간, 프로야구 스타 루 게릭이 2년 뒤 죽을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고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고별 경기를 마친 뒤 300단어의 어눌한 고별사를 할 때 6만2000명의 관객이 2분간 기립박수를 친 순간….

이렇게 반짝이는 진주알들을 하나로 꿰는 실은 ‘경이’다. 저자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허무와 우울의 근원을 구체적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경탄과 기쁨의 상실에서 찾는다. 이런 상실이 왜 초래됐는가. 진리와 의미의 원천을 ‘유일신’이나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내재적이고 영원불멸의 요소에서 찾으려는 자폐적 시도 때문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나 가치는 우리 내면의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꿰찰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외부에서 바람처럼 휙 스쳐 가는 퓌시스(생기)를 포이에시스(숙련된 기예)를 통해 포착하고 고양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모든 것은 늘 빛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 경이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할 때 발생한다. 우리가 이 지루하고 비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책과 삶]어떻게 삶의 무의미와 맞서 싸울 것인가

경향신문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20면의 4단기사입니다.20면4단| 기사입력 2013-07-05 20:36 기사원문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424쪽 | 1만6000원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철학적 과제는 어떻게 삶의 무의미에 맞서 싸우냐는 것이다. 전통적인 서구사회에서 의미와 가치의 저장소였던 유일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와 규범을 가르치던 교회의 권위는 근대의 도래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포는 세속화, 탈신화화, 탈마법화한 세계의 강령이 됐다. 모든 의미의 사슬로부터 풀려난 개인은 무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UC 버클리 철학교수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하버드대 철학교수인 숀 도런스 켈리의 공동 저작인 이 책은 ‘무의미’라는 현대철학의 중요한 화두를 붙들고 고심한, 우아하면서 깊이 있는 철학·문학 에세이다. 저자들은 무한한 자유와 공존하는 무한한 부자유라는 딜레마를 풀기 위해 형이상학을 정초한 플라톤으로부터 형이상학을 파괴한 니체까지 서양철학사의 흐름과 문제의식을 훑어본다. 이들의 지적 여정은 철학이론을 살펴볼 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부터 허먼 멜빌의 <모비 딕>까지 서양고전을 다채롭게 인용함으로써 매력을 더한다.

인간을 지켜보는 신의 눈길이 없기에 모든 것이 허용되는 시대에 인간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완강한 자기확신, 다른 하나는 오락이나 약물 등에 취해 자신을 잊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태도를 취하건 선택 앞에 선 개인이란 지극히 현대적인 현상이다. 후자는 물론 전자 역시 종종 허무주의라는 벽에 부딪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인물은 다르다. 그들은 삶의 모든 국면을 수용하고 누렸다. 예를 들어 헬레네는 파리스와 연정에 빠져 도망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의 칭송을 얻었다. 이는 그녀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와 가정의 신 헤라의 지배를 동시에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대인들은 신들의 정조에 자신의 전 존재를 조율하면서 살았다. 이는 현대의 윤리적 관점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고대의 미덕이었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 오면 고대의 원시적 정념들은 아폴론의 법 질서로 수용되기 시작한다. 초기 기독교가 정착되면서 정념은 다시 공동체의 법질서와 배치되는 내면의 욕망으로 환원된다. 단테는 <신곡>에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실존 상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악마의 특성으로 돌렸다. 단테가 지옥에 가둔 개인의 자율성이 인간의 가장 존엄한 특징으로 복권되기까지는 마르틴 루터, 데카르트, 칸트를 경유해야 했다.

저자들은 <모비 딕>을 ‘의미의 무한한 원천’이라는 자리를 두고 개인과 신이 벌이는 장엄한 투쟁으로 해석한다. 무한대의 힘을 가졌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는 흰 고래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인 반면,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다리(실존)를 물어뜯는 존재를 정복함으로써 자신을 의미의 완성자로 세우려는 인물이다.

이처럼 장구한 과정을 거쳐 의미의 독점자가 된 인간이 허무주의라는 벽에 부딪친 상황에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다신주의다. 유일신(전체주의)을 다시 세우는 위험을 피해가면서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동시에 수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라는 뜻이다. 다신주의는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는 복수의 믿음체계를 인정하고, 각각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사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동시에 과거에는 신으로 환원되었던, 앎으로 해소되지 않는 타자적 영역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모든 것은 빛난다(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저, 김동규사월의책 2013.07.01

 

책 한 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책은 우리 삶을 괴롭히는 문제의 근원을 뿌리째 들어내고 직시하게 해준다. 우리는 그 책으로 인해 삶이 바뀌지는 않을지언정 최소한 내 삶의 연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은 빛난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역자는 번역을 고사하다가 원서를 읽어보고는 책의 불가피한 유혹에 빠져 번역의 중노동을 감수하기로 한다. 편집자 역시 책을 만들면서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을 통독하고는, 이 책이 건네는 감동과 깨달음에 젖어 한 계절을 보낸다. 감히 말하건대, 『모든 것은 빛난다』는 근래에 나온 인문적, 철학적 에세이 가운데 최고라고 주장하고 싶다. 미국 철학계의 거장 중 한 명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하버드대 철학과장 숀 도런스 켈리가 함께 썼다. 권위의 「뉴욕타임스」는 동일한 책에 대해 유례없이 3번이나 리뷰를 실으면서 “2011년 올해 최고의 책”이라 추켜세웠고, 우리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명저술가 찰스 반 도렌(CHARLES VAN DOREN) 등은 대놓고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저자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는 캘리포니아대 철학교수. 미국 현대철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 연구로 유명하며, 특히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드레이데거”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0~68년까지 MIT대학에서, 1968년 이후에는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캠퍼스)에서 40년 넘게 철학과 문학을 가르쳐왔다. 하이데거 외에 미셸 푸코, 메를로-퐁티 철학의 선구적인 해석자로 평가되며,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고전적 저작 『컴퓨터가 여전히 할 수 없는 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비판서로 평가받으며 세계 12개국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이자 구겐하임 재단 특별회원, 국립과학재단과 국립인문학기금의 수상자이며,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기도 했다. 서양 문학 속의 철학적 이슈를 다룬 그의 팟캐스트 강의는 지금도 전 세계 청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자 숀 도런스 켈리(SEAN DORRANCE KELLY)는 하버드대 철학교수이자 학과장. ‘마음, 두뇌, 행동 연구를 위한 하버드 학제간 연구회’ 의장이기도 하다. 스탠퍼드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콜노르말 쉬페리외르) 방문교수를 거쳤다. ‘마음’ 문제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로 유명하며, 프랑스와 독일의 현상학 철학에 대한 중요한 해석자로 평가받고 있다. 구겐하임 재단과 미국 국립과학재단, 국립인문학기금, 제임스맥도넬 재단에서 수상을 하거나 회원으로 있다.

 

 

 1장
선택의 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았을 뿐 /
선택의 짐 / 선택을 회피하는 첫 번째 방식 /
선택을 회피하는 두 번째 방식 / 상황에 대한 감각 /
프란체스카와 보바리의 차이 /
세익스피어와 데카르트가 던진 질문 /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용된다”
2장
우리시대의 허무주의

탄광의 카나리아 / 월러스와 길버트가 글을 쓴 이유 /
가장 지루한 것들에 매달리기 / 권태 대처법 /
“오늘은 오늘 일만” / 생각의 통제 /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비결? /아무도 완수할 수 없는 과제 /
너무 자유롭기에 오히려 불행한 / 태양을 삼키라는 요구
3장
신들로 가득한 세상 - 호메로스의 세계

호메로스가 헬레네를 숭배한 까닭 / 포르투나 /
행운인가 보살핌인가 / 현대판 오디세우스 /
감사, 실존의 느낌 / 희생의례의 두 가지 기능 /
잠은 성스럽다/ 카리스마 / ‘입스’의 늪 /
그들이 만신전을 세운 이유 /
“경이가 우리를 사로잡는군요”

4장
유일신의 등장 - 아이스킬로스에서 아우구스티누스까지

역사를 읽는 몇 가지 시각 / 오레스테이아 3부작 /
복수의 여신들 / 애국주의, 일신주의의 또 다른 얼굴 /
예술작품의 초점조절 기능 / 해설자와 재설정자 /
예수, 최초의 재설정자 / 바울, 예수의 해설자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민

5장
자율성의 매력과 위험 - 단테에서 칸트까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 단테의 두 스승 /
지옥의 요새 / 단테식 자유의지 /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에서 신에 대한 사랑으로 /
중세식 허무주의 / 살로 만들어진 말씀 /
의미의 할당자 / 칸트와 자율적 주체 개념

6장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 - 멜빌의 ‘악마적 예술’

사악한 책 / 악마적인, 그러나 순진무구한 /
물보라 여인숙의 그림 / 이슈메일의 변덕 / 식인종 퀴케그 /
가면의 뒤 / 에이해브의 일신주의 /
고래에게 얼굴이 없는 이유 / 사랑의 공동체적 경험 /
흰색의 공포 / 신의 베틀 소리 /
광기의 두 가지 유형 / 우주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
구원의 실마리 / 비밀스런 모토

7장
우리 시대의 가치 있는 삶

루 게릭 / 경기장에 강림한 신성 /
퓌시스의 반짝임 / 야누스의 얼굴 /
스킬라와 카리브리스 사이 / 장인의 포이에시스 /
테크놀로지, 현대 세계의 공식 /
메타 포이에시스, 적시에 성스러움을 얻는 기술 /
우리 시대의 성스러움

에필로그: 빛나는 모든 것들

옮긴이 해설: 허무주의 시대에 삶의 의미 찾기

 

“아마도 이 책은 올해 최고의 책이 될 것이다.”뉴욕타임스
미국 철학계의 거장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하버드대 철학교수 숀 켈리가 이야기하는
우리 시대, 삶의 상실과 회복

책 한 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책은 우리 삶을 괴롭히는 문제의 근원을 뿌리째 들어내고 직시하게 해준다. 우리는 그 책으로 인해 삶이 바뀌지는 않을지언정 최소한 내 삶의 연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은 빛난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역자는 번역을 고사하다가 원서를 읽어보고는 책의 불가피한 유혹에 빠져 번역의 중노동을 감수하기로 한다. 편집자 역시 책을 만들면서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을 통독하고는, 이 책이 건네는 감동과 깨달음에 젖어 한 계절을 보낸다. 감히 말하건대, 『모든 것은 빛난다』는 근래에 나온 인문적, 철학적 에세이 가운데 최고라고 주장하고 싶다. 미국 철학계의 거장 중 한 명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하버드대 철학과장 숀 도런스 켈리가 함께 썼다. 권위의 「뉴욕타임스」는 동일한 책에 대해 유례없이 3번이나 리뷰를 실으면서 “2011년 올해 최고의 책”이라 추켜세웠고, 우리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명저술가 찰스 반 도렌(Charles Van Doren) 등은 대놓고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출판사 서평

-삶의 의미와 무의미의 문제


『모든 것은 빛난다』는 우리들 현대인의 실존 상황, 우리의 문화적 위기를 저 어두컴컴한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끄집어내어 성찰한 책이다. 튼튼하게 고정된 닻 하나 없이 부유하는 우리의 일상, 우리들이 매일처럼 겪고 있는 삶의 불안과 무기력증과 허무-즉 삶의 의미와 무의미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찬양하는 “개인의 자율성”,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아”는 우리 삶에 무슨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이 질문은 정말 충격적이다. 개인이 어떤 외적 강제도 없이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유와 행복을 구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데카르트와 칸트 이래, 그리고 프랑스 인권선언 이후 인류의 신성불가침한 이상 아닌가?

저자들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허무와 우울의 시대적 병증은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최종적으로 봉착한 지점이라고 한다.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과 선택의 짐을 오롯이 개인에게 지운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율적 존재이기에 홀로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삶의 피로감을 넘어 심각한 허무주의, 의미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한계 상황이 개인의 삶을 질식하게 만드는 직접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해소된다고 해서 우리 삶이 회생할 것인가? 또다시 그런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삶은 파탄을 맞이해야 하는가? 이렇게 보면, 성과주의의 피로감을 성공과 성취감이라는 프로작 약물로 마취시키는 사회를 비판한 『피로사회』나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의 진단은, 그에 앞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진단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서양 고전에서 읽어내는 우리 존재의 빛

이 책의 저자들은 개인들이 이렇게 살지 않아도 각자가 성스러운 존재로서 충분히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단테의 『신곡』, 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서양 고전들을 다시 읽어냄으로써, 어떻게 인간의 삶이 고대의 성스럽고 빛나는 경험 세계로부터 창백하고 우울한 피로 사회로 떨어져버렸는지를 이야기한다. 한 마디로 저자들은, 의미의 다양한 생산지를 하나의 원천으로만 응집시키려 한 서양 사상사의 시도야말로 허무주의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의미의 원천을 초월적인 신의 사랑에서 찾으려 한 중세나, 자율적 개인의 내면에서 찾으려 한 근현대의 시도가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자각된 개인” “계몽화된 개인”이라는 내면의 견고한 영웅주의에 취해서 스스로를 꽁꽁 닫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세상이 던져주는 빛들에 대해 열린 존재가 된다면, 성스러움을 다시 회복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보고 순간의 망설임조차 없이 뛰어드는 행동, 야구장 관중석에서 하나 되어 환호하는 기쁨, 아침에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이 그런 빛들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는 이것을 고대의 다신적(多神的) 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다신적’이라는 것이 종교적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는 세상의 무수한 신들이 던져주는 의미의 순간들을 만끽하고 감사함으로써 성스러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의미의 생산자나 부여자로 보지 말고, 세상이 일으켜 보여주는 의미들의 발견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 바꾼다고 해서 저절로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매순간 스쳐지나가는 사건들(physis)에 대해 우리의 지성과 신체를 끊임없이 밀착시키고 연마하는 활동(poiesis)을 함으로써, 광포한 감정의 선동이나 차디찬 이성의 명령 어느 한편에만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지키는 기술(meta-poiesis)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7장 참고).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은 빛난다”(All Things Shining)라는 말의 뜻이기도 하다.

■내용 소개

1장 선택의 짐 - 선택의 짐을 회피하는 두 가지 방식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신이 없기에 모든 것을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는 무서운 경고의 말로도 읽힌다. 이처럼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친 모든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런 실존적인 선택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선택 대신 완강한 자기 확신에 취해 있는 인간형이나, 대중오락, SNS, 약물 등에 매달려 자신을 잊는 유형이 그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고현장에서 망설임 없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 경기장에서 몰아적인 플레이를 행하는 선수처럼 주저 없이 선택을 행하는 영웅적 인간형도 많다. 그러나 어떤 태도를 취하건 선택의 상황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는 개인의 모습은 지극히 근대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의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극한까지 맞서는 사람은 일쑤 허무주의의 늪에 빠지곤 한다.

2장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 - 실존의 과도한 짐은 허무주의를 부른다
자살한 미국의 천재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David F. Wallace)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이 없지만, 그런 실존의 상황을 가장 극한까지 감당하려 했던 인물이다. 월러스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스스로 의미를 생성해야 하는 오늘날의 반복적인 삶에서도 끝까지 삶의 가치를 추구했고, 그런 과제로부터 주의를 빼앗고 정신을 중독시키는 모든 유혹을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제는 결국 월러스를 자살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와 달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의미의 창조자’라는 짐을 개인이 지는 것은 부당하며, 우리는 순수한 은총에 의해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둘 중 누구를 택해야 할까?

3장 신들로 가득한 세상 - 호메로스의 행복했던 세상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서 칭송한 인물들은 그런 현대적 실존 상황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헬레네는 파리스와 연정에 빠져 도망쳤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의 칭송을 얻는 여인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와 가정의 신 헤라가 한 인물을 동시에 지배하듯이, 신들이 정해주는 정조(mood)에 자신의 전 존재를 조율(tunning)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이었고, 그것이야말로 현대의 윤리적 관점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고대의 미덕(arete)이었다. 그들은 그런 신들의 은총에 대해 경이와 감사를 바침으로써 자기 문화에 온몸으로 참여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4장 유일신의 등장 - 기독교가 바꿔놓은 삶의 가치
호메로스 시대의 충만했던 삶은 그리스 전성기인 아이스킬로스의 시대와 초기 기독교를 거치면서 통일적이고 일원론적인 인간 이해로 나아가게 된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복수와 분노가 지배하던 고대의 원시적 정념들이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아폴론의 법질서로 수용되는 과정을 보여준 역작이다. 예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대 공동체의 율법 질서를 인간의 내면적 욕망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문화의 획기적인 재설정을 이룬다. 호메로스 시대의 무질서한 정조들은 아이스킬로스의 그리스 문화와 유대 문화를 거치면서 공동체의 법적 질서 안에 포섭되었지만, 다시 예수와 바울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욕망이라는 한 가지 기준만이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물론 그 욕망은 신에 대한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수렴될 때만 인정될 수 있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개인의 욕망을 신의 사랑과 일치시키려고 한 내면적 투쟁의 기록이었다.

5장 자율성의 매력과 위험 - 악마의 특징이 인간의 미덕으로 변하다
예수와 바울,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치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초점이 된 내면의 욕망 문제는, 육체와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의 현세적 삶과 신의 정신적 사랑을 일치시킬 수 없다는 문제에 늘 봉착하곤 했다. 단테에게도 이 문제는 여전히 큰 난제였다. 단테는 『신곡』에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실존의 상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악마의 특성으로 돌린다.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제일 운동자’를 신의 특성이라 보고, 신의 사랑의 움직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를 주장하는 개인의 의지를 꽁꽁 얼어붙은 지옥의 것으로 돌린다. 인간의 욕망은 그의 연인 베아트리체에 대한 지순한 사랑을 거쳐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는 것처럼 신의 은총 안에서만 일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테는 이렇게 자율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옥에 가둔 반면, 인간의 의지로써 순수성에 이를 수 있다고 본 마르틴 루터를 거쳐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면, 자율성은 인간의 가장 존엄한 특징으로 복권된다. 칸트에 이르러서야 비로 인간은 “스스로 세운 도덕 법칙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평가될 수 있는 자율적 주체”가 된다.

6장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 - 개인 대 신의 싸움
이 책 6장에 이르면 우리는 “의미의 무한한 원천”이라는 자리를 두고 개인과 신이 벌이는 장엄한 투쟁을 볼 수 있다. 멜빌의 『모비 딕』이 바로 그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소다. 흰 고래는 무한대의 힘을 감추고 있지만 얼굴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같은 존재다. 반면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다리(자신의 실존)를 물어뜯은 존재를 이해하고 정복함으로써 자신을 의미의 완성자로 세우려는 인물이다. 이런 영웅적 개인과 기독교적 유일신의 싸움은 기독교를 상징하는 배와 선장이 함께 침몰함으로써 파국을 맞는다. 신이자 우주의 비밀인 흰 고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신비로 남는다.
그러나 『모비 딕』의 화자(話者)인 이슈메일이 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언제든지 자신의 입장을 변화무쌍하게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에게 고래는 의미의 원천일 수도, 그냥 무심한 우주일 수도 있다. 이슈메일은 유일신의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의 소유자다. 저자들은 이슈메일에게서 다신적 사고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7장 우리 시대의 가치 있는 삶 - 성스러움을 회복하는 길
이 대단원의 장에서 저자들이 집중하는 것은 다신적 사고가 현대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다신적 사고는 우선 퓌시스(physis)라는 세계의 존재방식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자연’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퓌시스’는 어느 날 피어났다 사라지는, 휙 스쳐가는 사건들을 표현하는 단어였다.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즉 야구장에서, 군중집회에서, 일의 몰입에서, 아침 식탁의 향기에서 늘 퓌시스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퓌시스는 거칠고 일시적인 힘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그것만으로는 히틀러의 위험한 선동 같은 데 빠질 소지가 있다. 그러므로 포이에시스(poiesis)라는 고도의 양육적인 기술을 갖춰야 한다. 원래 예술적 ‘창작’과 ‘제작’을 의미하는 포이에시스는 장인이 갖춘 기예처럼 숙련되고 안목이 높은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퓌시스의 계기들을 포이에시스로 함양함으로써 삶의 의미들을 성스럽게 가다듬고 균형감 있게 만드는 메타-포이에시스(meta-poiesis)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사건들이 보여주는 구별과 차이에 대해 둔감한 사람은 의미의 구별도 할 수 없으며, 걸어다니는 자동기계와 다름없게 된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의 커피 마시기를 성스러운 의식(儀式)으로 행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이 던지는 다신적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존재의 성스러움이란 이런 문화적 실천(praxis)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고, 이것이 허무주의와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추천사

“허무주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매혹적인 통찰. 『모든 것은 빛난다』는 ‘축의 시대’ 이래로 전개된 인간?종교?윤리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이슈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이슈들과 정면 승부하고 있다.”
찰스 테일러 / 철학자, 『세속의 시대』 저자

“굉장한 책!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놀랍고 가슴 벅차며 아름다운 책이다. 나의 감동을 여러분과,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나의 찬사, 아니 이 경외감을 말이다.”
찰스 반 도렌 /『지식의 역사』 저자

“특출하고 영감이 가득한 책.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주요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틀을 제공한다. 어떻게 우리가 과거의 강렬하고도 의미 깊은 삶으로부터 망설임과 무기력의 시대로 넘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들은 서양의 위대한 고전들을 통해 선택과 자율성과 광신주의와 오락중독 등 오늘날의 삶을 잠식하는 문제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고전들에 담겨 있는 불멸의 가치들을 통찰력 있게 파헤친다. 나는 도저히 이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바턴 그레고리언 / 카네기재단 이사장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