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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팬덤-스타의 하늘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8
조회수
6,831
첨부파일
-

[토요판 커버스토리]팬덤-스타의 하늘

동아일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A1면의 7단기사입니다.A1면7단| 기사입력 2013-07-06 03:05 | 최종수정 2013-07-06 07:02 기사원문
 

[동아일보]

#1. ‘씻고 소파에 누워 있는 찬식이의 발 쪽에, 소파 끄트머리에 앉았다. 길이가 길어서 다리를 구부리고 있는 게 불편한 건지 몸을 일으키더니 내 손을 잡아 이끌어 다시 누워 버렸다. 그 힘에 못 이겨 찬식이 위로 보기 좋게 엎어졌고, 찬식이 얼굴이 미세한 간격을 두고 코앞에 있었다. 뭐 하려는 거지. 뜨거운 숨결이 닿고 있는데, 서로에게 닿고 있는데 찬식이는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 나만 긴장한 건가.’

요즘 인기몰이 중인 남성 아이돌 그룹 B1A4를 등장시킨 ‘팬픽’의 일부다. 팬픽은 팬들이 가수를 주요 등장인물로 설정해 쓰는 소설이다. 팬과 픽션을 합성한 말이다. 앞에 소개한 팬픽에 등장하는 ‘찬식’은 B1A4의 멤버인 ‘공찬’을 염두에 두고 만든 가상의 캐릭터다. 팬들 사이에서 공찬은 주로 본명인 (공)찬식이라고 불린다.

남자 아이돌 그룹을 소재로 한 팬픽 가운데는 동성 멤버 간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아슬아슬하게 표현한 글이 많다. 팬들은 활자를 통해 멤버들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대리 충족하는 동시에, 좋아하는 가수가 동성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가수가 다른 이성(팬의 동성)과 교제하는 상황에 대한 ‘공포’에서 도피해 위안을 찾는다.

이처럼 요즘 팬들은 가수가 생산하는 문화를 향유하는 수동적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열광하는 그룹 멤버를 등장시킨 스토리를 만들어 공유하고 전파한다.

#2.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에서 열린 남성 그룹 JYJ의 팬 행사인 멤버십 위크에는 나흘간 1만7000명이 몰려들었다. 직장인 한사랑(가명·41·여) 씨도 멤버십 위크에 다녀왔다. 열성 팬인 한 씨는 JYJ의 모든 콘서트 티켓과 음반을 구입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일주일에 7일, 24시간 JYJ를 소비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팬 커뮤니티 게시판 글과 팬아트(fan art·팬이 가수를 모델로 생산해내는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 실물 예술품)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는 JYJ의 패러디물을 잘 만드는 유튜브 사용자를 팔로한다. 팬들이 제작한 영상 모음집, 달력, 반창고도 산다. JYJ를 ‘서포트’하기 위한 팬들의 자발적인 홍보자금 모금에도 참여한다. 한 씨는 “요즘 팬은 가수나 기획사가 만드는 콘텐츠보다 팬들이 만드는 콘텐츠를 더 많이 소비한다”며 “언제부턴가 가수에 대한 애정보다 ‘팬질’ 하는 재미가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다.

▼ 팬픽-팬아트 퍼뜨려… 팬이 문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

가수가 있어 존재하는 팬 → 가수를 존재하게 하는 팬


세계에서 주목하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그 물결을 일으키는 동력은 팬픽을 생산하고 팬아트를 소비하는 팬들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음반시장이 몰락하면서 가수의 팬덤은 음반과 공연 입장권 구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주 수익원이 됐다. 2010년대 들어 케이팝의 외연이 세계로 넓어지고 본토(한국) 팬덤의 활동이 인터넷과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뻗어나가면서 그 자체로 투자 액수도, 경제 효과도 계측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홍보창구가 돼가고 있다.

‘공부는 안 하고 오빠나 쫓아다니는 빠순이들’로 폄하되던 팬덤은 가수와 가요 기획사의 존폐까지 좌우하는 큰 세력이 됐다. 김주옥 씨(미국 템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는 한류산업의 성장에서 팬덤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진단했다. “팬덤은 음반산업을 굴리는 실질적인 축이 됐다. 팬들은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비합리적 소비까지 한다. 이런 경쟁은 낮은 시청률에도 지상파의 음악 순위 프로를 유지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국내 팬덤의 격돌이 해외 팬덤의 이목을 끌고, 이것이 순위 프로를 유지시키며 ‘가요 판’을 떠 있게 하는 것이다.

소비하는 팬 → 생산하는 팬

팬덤과 가수의 공생은 생산자-소비자의 뻔한 도식을 벗어났다. 팬은 수동적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 생산자로 변신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의 발달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게 팬픽이다. 팬픽이 올라오는 인터넷 카페는 수만∼수십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매일 다양한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작품이 올라온다. 국내 팬픽의 역사는 1996년 그룹 H.O.T.의 데뷔와 함께 시작됐다.

‘잉여’(잉여인간·생산성 없는 인터넷 글 놀이에 빠진 누리꾼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들의 하위문화라 치부되던 팬픽의 몸값은 최근 크게 올랐다. 유료 구독자를 확보해 돈을 버는 유명 팬픽 작가의 얘기만이 아니다. 일부 신생 및 중소 기획사에 팬픽은 팬덤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 연간 수십 개의 그룹이 데뷔하는 아이돌 춘추전국시대라서 그렇다. 제한된 방송출연, 대중노출 속에서 팬덤을 북돋우고 유지하려면 중독성 강한 ‘역사’가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신생 아이돌 기획사 중 일부는 ‘그림이 나오는’ 동성 멤버 A와 B에게 ‘사무실에 나올 때 둘이 꼭 붙어서 이동하라’고 은밀히 지시한다. 팬들에게 팬픽의 소재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귀띔했다.

팬아트는 수익을 목표로 제작되지는 않지만 팬덤의 결집력을 강화해 잠재적 소비층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팬싸’(팬 사인회)나 ‘공방’(공개방송)이 열리면 행사가 종료된 지 몇 시간 내에 ‘대포여신’들의 ‘직찍’(팬이 찍은 가수의 사진)과 ‘직캠’(팬이 찍은 가수의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진원지로 SNS를 타고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 이런 2차 저작물은 초상권에 위배되는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소속사의 엄격한 간섭을 받지 않는다. 소속사에서 배포한 공식 사진을 짜깁기하거나 패러디해 유튜브와 게시판에 올리는 이도 팬들이다.

팬아트는 팔리기도 한다. 일부 팬이 직찍이나 ‘짤방’(잘림 방지의 준말·팬 커뮤니티 게시판 글에 첨부하는 가수의 사진이나 영상 파일)을 모아 책 형태로 만든 포토북이나, 가수의 데뷔 때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영상을 모은 DVD는 1만5000∼3만 원의 가격에 다른 팬들에게 판매된다. 기획사들은 팬픽이나 팬아트, 커뮤니티 내 게시 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함으로써 팬덤의 동향을 살피고 아이돌그룹의 다음 앨범에 담을 이미지와 음악 장르를 정하는 데 참고한다.

정치를 닮아가는 팬덤1-색깔론

팬덤이 움직이는 모습은 정치판과 닮았다. 하나의 팬덤은 다른 팬덤과 경쟁하며 세력다툼을 벌인다. 팬덤의 정치가 오프라인에서 충돌하는 지점은 드림콘서트나 소속 가수의 합동 콘서트다.

드림콘서트는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1995년부터 주최해온 공연이다. 매년 10대들이 좋아하는 스타 가수를 초청한다. 팬클럽에는 다른 팬클럽에 대항해 세를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2008년까지는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2009년부터 올해까지는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여러 팬클럽의 수많은 회원이 결집하는 만큼 많은 객석이 필요한 콘서트다.

‘색깔’은 이런 대형 팬덤의 충돌에서 중요한 화두다. 팬덤의 상징 색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이다. 팬클럽마다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를 상징하는 색의 풍선이나 응원봉을 들면서 시작된다. 응원 색의 원조 격은 H.O.T.의 펄 화이트, 신화의 주황, 젝스키스의 노랑, god의 하늘색.

1세대 아이돌 등장 이후 기술의 발달(응원의 주 도구가 풍선에서 발광봉으로 이행)과 아이돌 그룹의 수적 증가 및 경쟁의 심화로 펄, 파스텔이 끼어든 오묘한 색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생 팬클럽과 기획사는 전문 디자이너나 알 만한 색상표를 들여다보며 ‘우리 아이돌 색깔 정하기’에 골몰한다. 무지개색을 포함해 수십 가지 색상이 이미 점유돼 있다 보니 충돌도 발생한다. 2NE1이 데뷔한 2009년 블랙잭(2NE1 팬클럽)이 응원 색을 ‘핫핑크 로즈’로 정하자 소원(소녀시대 팬클럽) 내 일부 팬은 “색상이 소녀시대의 파스텔 로즈 하트와 너무 비슷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 “염탐꾼 걸러내야” 팬클럽 가입시험도

B.A.P의 ‘스프링 그린’과 샤이니의 ‘펄 아쿠아 그린’은 색상코드로는 각각 #00ff7f와 #79e5cb로 다르지만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들다. 최근 인기가 상승 중인 한 신인그룹의 소속사 관계자는 “앞으로 응원이 필요한 큰 무대에 자주 서게 될 텐데 다른 그룹들이 색상표 상의 색을 너무 촘촘히 점하고 있어 고민”이라며 “순백색을 택하는 안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정치를 닮아가는 팬덤2-조직

가수의 소속사가 정당의 본부라면 팬클럽이나 사설 팬사이트는 지구당처럼 기능한다. 최다 회원수의 인터넷 팬카페나 공홈(공식 홈페이지)에 가수와 관련한 공지사항이 올라오면 다양한 팬 커뮤니티에 이 내용이 전달된다. 최근 팬덤의 세계를 취재해 정리한 책 ‘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알마)를 출간한 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는 “팬들은 여론이나 세상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배척해야 하는지, 분란을 어떻게 예측하고 만드는지를 안다. 팬질은 곧 정치질이다”라고 했다.

“팬덤의 양상을 살펴보면 영호남향우회나 노사모와 큰 차이가 없다. 서로 다른 가수의 지지자를 대외적으로 깎아내리는 동시에 내부적 투쟁도 치열히 이뤄진다. 대외적으로는 다른 팬덤과 경쟁하는 한편으로 그들 내부에서는 권력과 추종세력이 형성된다. 고화질의 직찍이나 팬픽을 잘 생산하거나, 가수의 측근이나 소속사 관계자를 연줄로 둔 이들은 팬덤 내에서 부러움, 때로는 우러름까지 받는다.”

팬덤 구성원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도 늘었다. 2009년 불거진 동방신기와 JYJ의 법적 다툼에서 양측 팬들은 소송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에 중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법적 취약점, 향후 팬덤과 소속사의 대응방안까지 자세하게 분석해 그 내용을 공유했다. 이 평론가는 “실제로 카시오페아(동방신기 팬클럽) 내에 법조인 친척을 둔 팬이 이를 지휘했다는 설도 있다.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여러 일을 해결한다. 가수들 이미지를 위한 팬들의 자원봉사 활동이 신속, 정확하게 진행되는 것도 팬덤 내에 진짜 봉사단체 관계자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반면 온라인상에 누구나 팬 카페를 개설할 수 있게 되면서 팬클럽의 파편화 및 약화도 진행됐다. 1세대 아이돌 시절 서울지부장, 인천지부장 식으로 전국적 조직체계를 갖고 강한 결집력을 과시했던 오프라인 팬덤은 위축됐다. 그 대신에 대표 팬 카페나 소속사 공식 멤버십 팬클럽의 임원들이 가수 소속사의 직원과 협업한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팬클럽 회장의 역할을 기획사 내 팬 매니저나 팬 마케팅 담당자가 대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동반자 관계에 가까워졌다”고 했다.

전역을 앞둔 가수 비의 소속사는 최근 가수의 ‘전역식’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기 위해 팬 카페 임원과 ‘상견례’ 자리를 마련했다. 대형기획사 I의 팬 마케팅 팀 직원인 K 씨는 “콘서트 중간의 팬 이벤트를 위해 공연 큐시트를 조정하는 작업부터 조공물품 선택, 응원도구 디자인과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팬클럽 임원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 선거’도 치열하다. 몇 년 전 신화 팬클럽 ‘신화창조’의 한 지역 회장을 지낸 D 씨는 “당시 전국회장과 부회장, 지역별 임원을 인터넷 투표로 뽑았다. 출마자는 자신의 활동 경력과 공약을 내건다. ‘올해는 확실히 팬미팅을 개최하겠다’ ‘기획사와 논의해 연 3회의 팬 사인회를 성사시키겠다’ 같은 공약이 단골로 등장했다”고 전했다. ‘입당’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팬 카페는 주요 가입 절차로 퀴즈 풀이를 내세운다. 문제의 난도가 최상급이다. 예를 들어 ‘멤버 A가 2012년 5월 7일 B방송의 C프로그램에 나와 D의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묻는 식이다. 대형기획사 G의 관계자는 “해당 가수의 소속사 직원조차 풀기 힘든 문제가 많다. 아마 나도 가입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진입장벽은 높을수록 좋다. 가입자의 충성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장벽은 경쟁 가수 팬클럽의 ‘잠입’과 ‘염탐’을 막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케이팝 인력 양성소, 팬덤

팬덤은 케이팝 산업의 인력 양성소 역할도 한다. 한 대형기획사 홍보팀 관계자는 “사내 인력의 10% 정도는 팬클럽 활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팬덤과 가요계에 대한 이해가 깊은 팬클럽 출신들은 특히 팬을 관리하는 팬 마케팅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 중소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팬 매니저(팬 관리 매니저) 채용 시 팬클럽 임원은 사실상 가산점을 받는다. 팬클럽 임원에 대한 사실상의 ‘특채’도 없는 것은 아니다. H.O.T.나 신화 같은 1세대 아이돌 팬클럽 임원 상당수는 가요계 전반에 퍼져 신생 아이돌의 팬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고 귀띔했다.

팬덤 취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기획사와 팬 모두 실명이나 소속 밝히기를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었다. 취재 요청을 고사한 한 대형가수 팬클럽 임원은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더라도 다른 팬들로부터 ‘네가 뭔데 대표성을 띠느냐’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얘기했느냐’는 질타를 피할 길이 없다. 두렵다”고 했다.

팬덤에 접근하는 기획사의 태도도 매우 조심스럽다. 한 대형기획사 홍보팀 관계자는 “팬들은 기획사나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기획사의 역할보다 팬덤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도 우려된다”고 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팬덤은 가요계가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산업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왔고 배타성과 세력화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아이돌 중심 체제가 무너질 때까지는 단단하게 블록화된 팬덤의 힘이 계속해서 산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팬덤(fandom) ::

팬(fan) 집단과 그 문화를 아울러 이르는 말. 팬에 상태나 정신을 뜻하는 접미사 ‘-dom’이 붙어 만들어졌다. ‘왕국(kingdom)’이 결합됐다는 해석도 있다.

임희윤·구가인 기자 imi@donga.com

팬덤-스타의 하늘…“오프라인 위주였던 옛날 팬덤이 더 끈끈했어요”

동아일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A4면의 TOP기사입니다.A4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A4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3-07-06 03:04 | 최종수정 2013-07-06 07:11 기사원문
 

[토요판 커버스토리]1세대 아이돌 ‘핫젝갓알지’

[동아일보]

이름만 들으면 중국 신인 그룹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5인조 남성그룹 ‘핫젝갓알지’. ‘H.O.T.’(문희준, 토니 안)와 ‘젝스키스’(은지원), ‘god’(데니 안), ‘NRG’(천명훈) 출신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모임(?)이다. 이들은 본격적인 아이돌 팬덤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팀 해체 후 각각 솔로가수와 연기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4월부터 케이블 방송 QTV의 ‘20세기 아이돌’에 출연 중이다. 핫젝갓알지라는 이름으로 음원을 내고 KBS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했다. 최근 경기 용인 촬영장에서 1세대 아이돌 핫젝갓알지를 만나 1세대 팬덤과 요즘 팬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세대의 특징은 뭔가.

▽토니=팬덤. 우리가 팬덤을 일으켰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런지 방송국에 찾아오는 팬이 줄었다. 당시엔 음악방송 시청률도 25%를 찍었다.

▽데니=그때 우리를 볼 수 있는 건 TV와 잡지가 유일했다. 케이블 방송도, 인터넷도 없었다. 보고 싶으니까 자꾸 방송국과 집에 찾아오는 거다.

―신비주의 전략도 공통점 아닌가.

▽희준=그땐 숨을수록 가치가 높아지니까. 요즘은 반대다. 최대한 노출시키려는 거 같다.

▽지원=요즘은 아이돌이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나온다. 잊히는 게 두려우니까 양으로 승부한다. 마치 마트의 물건처럼 소비된다. 우리 때는 꽤 긴 공백기가 있어도 팬들이 기다렸다.

―요즘은 온라인 중심이지만 그때 팬들은 오프라인 활동을 많이 했다.

▽희준=H.O.T. 해체한다고 SM 앞에서 시위를 했다.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너무 슬펐고 분노에 차 있었다. 그런 끈끈한 면은 확실히 1세대 팬덤이 강했다. 열정도 있고….

핫젝갓알지는 당시의 팬들을 “의리 있고 ‘똘끼’ 넘쳤던 친구들”로 추억했다. 좋아하는 오빠들을 보기 위해 방송국의 담을 넘고, 생일이면 아파트단지를 꽉 메워 생일축하 ‘떼창’을 해줬던 팬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여기저기서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식당에 가면 구석을 찾아가 벽을 보고 밥을 먹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는 고백도 했다. 1세대 아이돌이라는 사실은 이들에게 ‘훈장’이자 ‘굴레’이기도 했다.

―좋은 점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아이돌로 사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토니=그냥 H.O.T. 토니 안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체험한 거 같다. 당시 우리는 화장실도 편히 못 갔다. 다시 하라면 못한다.

▽희준=군대에 들어가 대중탕 안에서 샤워를 시작했는데 동시에 물소리가 딱 멈췄다. 돌아보니 목욕탕의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하얗다’ 이러면서…. 충격이었다.

▽데니=그 나이에 걸맞은 생활을 누리지 못한 건 참 아쉽다. 학교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소개팅도 하고….

―10년 전 전성기에 생각했던 30대의 모습과 지금은 비슷한가.

▽토니=전혀. 젝스키스, god, NRG와 함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웃음).

▽명훈=난 좋다. NRG와 비교하면 얘들은 정말 대단했으니까.

▽희준=H.O.T.도, 팬들의 힘도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난 내가 계속 신비주의 할 줄 알았다. 솔로로 록 음악을 들고 나올 때만 해도 난 듀스가 힙합을 정착시켰듯 나도 그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착각이었다. 결국 대중과 싸움만 했다.

―그럼, 지금이라 더 좋은 것은….

▽희준=대중의 사랑이 이젠 느껴진다. 과거에 H.O.T.가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실감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게 굉장히 소중하고 기쁘다.

▽토니=나도. 얼마 전 음원이 나왔는데 순위가 높진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끼리 막 기쁜 거다. ‘지금 30위야, 20계단이나 올랐어!’ 이러면서. 실시간 검색어 1위 올랐을 땐 화면을 캡처해서 나눠 봤다.

▽명훈=인터넷 댓글을 잘 안 보는데 핫젝갓알지 관련 글은 본다. 최근 본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었다. 정말 감동적이지 않나!

임희윤·구가인 기자 imi@donga.com
 

‘응답하라…’ 작가 엄마가 전화 “TV에 너랑 똑같은 애 나온다”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13-07-06 03:04 | 최종수정 2013-07-06 07:11
[토요판 커버스토리]“나를 키운건 8할이 팬클럽” 문화계 여성들의 고백

[동아일보]

▽김란주 tvN ‘응답하라 1997’ 작가-H.O.T.

“지방 출신이어서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가 적었다. H.O.T.를 좋아하면서 처음으로 공연장도 가보고 새로운 문화도 접했다. 그때의 추억은 ‘응답하라 1997’ 작업에 도움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드라마 집필에 참여한 걸 모르신다. 어느 날 엄마가 전화로 ‘야, TV에서 너랑 진짜 똑같은 애 나왔다’ 하시더라.”

▽유정아 KBS PD·뮤직뱅크 조연출-H.O.T.

“중2 때 H.O.T.가 데뷔한 후 줄곧 좋아했다. 팬클럽에 부정적인 어른을 만나면 ‘나중에 수능 만점 맞아서 인터뷰할 때 H.O.T. 팬이라는 걸 밝혀야지’ 다짐했다. H.O.T.를 좋아하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꿈을 꿨고 결국 PD가 됐다. 또래 PD 중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가 많다. ‘1박2일’ 팀에 조연출로 있을 땐 또 다른 조연출이 강타 팬, 구성작가는 토니 팬이었다. 배경음악으로 H.O.T. 곡을 자주 깔았다.”

▽조설화 공연기획사 무붕 기획팀장-신승훈

“연예기획사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부터 팬클럽 활동을 했고 대학 때는 인천·경기지역 회장도 맡았다. 사서함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오빠 생일선물’ 같은 안건을 두고 공식 모임도 열었다. 당시 팬클럽 임원에게 요구되던 적극성·리더십·책임감 등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도 필요한 것들이다. 공연기획 일을 하겠다고 꿈을 키운 것도 콘서트에 쫓아다니면서부터다. 대학원에서는 팬클럽 관련 논문을 썼다.”

▽김미나 현대미디어 홍보팀-신화

“친구를 사귈 때 신화는 좋은 계기였다. 같은 팬끼리 몰려다니며 콘서트나 공개방송에 찾아갔다. 현재 언론홍보를 하는데 기자 중에 신화 팬이 적지 않다. 팬클럽 ‘신화창조’의 공식 색상인 주황색 우비를 입고 풍선을 흔들었던 경험을 공유하면 금세 가까워진다. 신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사귀는 통로다.”

▽이윤진 tvN ‘세얼간이’ 작가-서태지

“서태지는 내 학창시절의 모든 것이었다. 현재의 절친 3명은 모두 서태지 콘서트에서 만났다. 특이하게도 4명 다 직업이 방송작가다. 방송 일을 시작할 때 서태지와 함께 작업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제 ‘대장’은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났지만, 평생친구는 남긴 셈이다.”

▽정유진 CJ E&M 홍보팀-신화

“주로 인터넷에 글을 쓰는 소심한 팬이었다. 전진과 김동완을 주제로 팬 페이지를 운영했다. 현재 해외홍보를 맡고 있는데 자료를 모으고 다듬는 일은 그때 팬 페이지 꾸미기와 닮은 게 많다.”

▽배진희 앰버린 대표-조규찬

“학창시절 PC통신 팬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나중에는 회장도 했다. 지금 음악 취향은 모두 그때 만들어졌다. 스타가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얘기하면 따로 찾아들었다. 공연 관련 일을 하며 당시 PC통신으로 교류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때가 있다. PD나 공연기획사, 연예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찍이 네트워크를 쌓았던 셈이다.”

▽김○○ 잡지기자-god

“지역과 계층, 나이를 초월한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팬클럽 덕분이다. 언니들과 어울리며 학교 밖 세상을 남보다 빨리 깨쳤다. 이제 god는 멀어졌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은 좋은 추억이 됐다.”

▽신○○ 콘서트기획사 마케팅 담당자-H.O.T.

“H.O.T.를 좋아한 이후 꾸준히 아이돌에 관심을 가졌다. 팬들의 행동 패턴을 남들보단 잘 아는 것 같다. 아이돌 콘서트 마케팅을 할 때 팬심을 잘 잡았다고 칭찬받았다.”

▽이○○ 일간지 기자-젝스키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스무 살, 은지원을 통해 허전함을 달랬다. 공개방송·콘서트에서 열광하며 사춘기 같은 열병을 앓았다. 팀 해체 콘서트에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었던 기억도 있다. 인생에서 그만큼 열정을 쏟은 경험이 있다는 건 어쨌건 좋은 일이다.”

임희윤·구가인 기자 imi@donga.com
 
 

[토요판 커버스토리]팬덤 단어장

동아일보| 기사입력 2013-07-06 03:05 | 최종수정 2013-07-06 07:02 기사원문
 

[동아일보]

자, 이제부터 정색하면 곤란하다. 그들의 용어에 담긴 풍자와 해학, 압축과 자조(自嘲)의 미를 이해하거나 포용하지 못하면 자칫 ‘진지병자’로 몰릴 수도 있다. 팬덤에서 주로 쓰이는 은어를 사전 식으로 풀었다. 팬덤별로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지만 팬덤을 넘나들며 통용되는 단어를 추렸다. 초보 팬은 이런 용어를 모르면 ‘팬질’에 심대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주요 팬 커뮤니티마다 이런 용어사전을 제작해 온라인 게시판에 공지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것을 ‘단어장’이라 부른다. (예문: 샤이니 단어장에 이거 추가해야겠네.)

팬질=팬심(팬 된 마음)으로 추동되는 일련의 활동. (예문: 팬질 시작. 팬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비슷한 말: 덕질, 덕심.

오덕=한 분야에 집중하는 사람인 오타쿠의 변형된 준말. 덕후로 변형하거나 덕으로 줄이는 게 보통.

빠순이=‘오빠’를 추종하는 여성. 팬덤 밖에 있는 이가 팬을 얕잡아 부를 때 주로 쓰임. 팬덤에서는 ‘빠’로 경량화, 중성화하거나 우아한 어감의 ‘퐈슨’으로 순화하기도 함. cf. 퐈슨심(절절한 팬심) (예문: 니가 아무리 빠순이라 불러도 내 퐈슨심은 철철 넘치는군화.)

머글=팬심이 없으며, 따라서 팬질도 하지 않는 일반인. ‘해리포터’에서 마법사들이 일반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에서 유래. 특별한 적의도 없고 팬이 실제로 우월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 종족이라는 절대적 자부심이 투영돼 있지는 않음. 다만, 심장에 팬심을 장착하지 못한 이들에게선 나올 수 없는 팬들의 결집력과 희생력, 실행력이 가히 마법사급이라는 자존감이 내재돼 있음. (예문: 머글들이 하는 얘기에 넘 신경쓰지 마삼.)

 

cf. 진지병자: 팬심 가득한 글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해석해 꾸짖는 이들을 팬이 가리키는 말. 진지병자는 대개 머글이지만 팬덤 내부에서 말 그대로 지나치게 진지한 이들이거나 초보 팬인 경우도 있음.

사생=사생활을 캐는 팬. 안방순이의 대척점에서 파파라치에 가깝게 가수의 일상을 파고드는 극렬 팬. 다수의 팬덤에서는 ‘불가촉천민’으로까지 불리며 배척당함. 사생임이 밝혀지면 팬들 사이에서 퇴출되기도. 빠르게 이동하는 가수를 추적하기 위해 사택(사생 택시)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 (예문: 나, 사생 아냐.)

안방순이=머글은 아니지만 적극적인 오프라인 활동 없이 TV 시청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만으로 가수를 응원하는 팬. (예문: 전 안방순이에 불과한 걸요.)

월도, 등도, 급도=월급 도둑, 등록금 도둑, 급식 도둑의 준말. 차례로 직장인 팬, 대학생 팬, 중고생 팬을 가리킴. 일과시간의 많은 부분을 팬질에 보내는 모습에서 착안한 용어. (예문: 너 생각보다 동안이구나. 급도인 줄 알았더니 등도네.)

반도녀, 섬녀, 대륙녀=각각 한국 팬, 일본 팬, 중국 팬. 행동거지가 바람직한 경우 높임말인 섬언니, 대륙언니로 일컫기도 함. 케이팝 팬덤이 해외로 뻗어나가며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섬녀(위 사진)와 대륙녀의 참여율이 높아졌고 반도녀를 포함한 세 국가 팬의 동선이 얽히게 됨. 일각에서는 반도의 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섬녀나 대륙녀가 벌이는 적극적인 팬질의 양태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음. (예문: 어제 단콘(가수의 단독 콘서트) 갔는데 섬언니, 대륙언니들에 둘러싸여 힘들어씀. ㅠㅠ)

새우젓(새우잦)=팬이 스스로를 자조하며 일컫는 말. 가수가 무대에서 객석을 보면 팬들이 새우젓처럼 보일 거라는 추정에서 나옴. 팬에게 가수는 하나이지만, 가수에게 팬은 무한히 많아서 개체를 일일이 인지하고 존중해 주기 힘들 정도라는 의미. 새우잦으로 변형돼 쓰이기도. (예문: 우리 새우잦들은 그저 팬아트나 보며 놀아야지.)

대포녀, 대포여신=대포처럼 크고 긴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가수의 사진을 찍는 팬. 대개 공방(공개방송) 현장에 나타나 촬영을 하며 다른 팬들에게 손수 만든 직찍(직접 찍은 사진)과 직캠(직접 찍은 동영상)을 제공. 기획사의 공식 사진 촬영 직원이 대포녀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음. 가수를 유달리 더 매력적으로 촬영하는 직원의 경우, 팬들에게서 ‘이 언니, 빠순 렌즈(빠순이의 팬심이 담긴 정성어린 촬영 자세를 카메라 부품에 빗댄 말)라도 장착한 듯’이란 감탄사를 이끌어 내기도 함. 대포녀 가운데서도 백통렌즈(스포츠 사진 기자들이 주로 쓰는 커다란 흰 망원렌즈)를 사용하는 이들은 더욱 경외의 대상이 됨. 팬의 세계에서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열애설 보도 직후가 고가의 DSLR 카메라를 저가에 구입할 적기라는 조언도 떠돎. 대포여신들이 일제히 팬질을 그만두게 돼 중고 카메라 시장에 매물이 넘칠 정도라는 뜻.

 

트위터봇, 카톡봇=트위터봇은 팬이 스타를 가장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 카톡봇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카카오톡 계정. 팬들은 봇과 대화하며 스타와 말하는 듯한 대리 만족을 느낌. 봇주(계정 운영자)는 봇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스타에 대한 정보와 말투를 숙지해야 함. 때로 연예인봇은 사칭 문제도 생겨 일부 팬클럽에서는 ‘봇 생성기간’을 정하고 시험을 통해 공인된 봇을 선발.

조공=팬이 가수에게 주는 선물. 대개 가수의 새 음반 발표나 활동 재개, 대형 콘서트 개최에 맞춰 이뤄지지만 개별적인 선물을 가리키는 수시 조공도 있음. 가수와 스태프를 위한 도시락 조공, 콘서트나 행사장에 기부용 쌀 포대와 화환을 가져다 놓는 쌀 조공이 기본. 부유한 팬은 명품 가방, 노트북 컴퓨터, 자동차를 조공품에 올리기도.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코스튬 플레이를 하듯 일반인(머글)을 가장하고 있다는 뜻. 개인용 PC나 스마트폰의 배경화면을 가족이나 풍경 사진으로 설정하고 팬질은 일과시간 이외에 하는 것 등이 있음. (예문: 내 동생, 2년 동안 일코하다 오늘 나한테 딱 걸림. ㅋㅋ)

일코해제=일반인 코스프레 해제의 준말. 자신이 특정 가수의 팬(빠)이라는 정체성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상황을 가리킴. 예를 들어, 온라인으로 주문한 가수의 브로마이드나 음반이 사무실에 배달되다 사고로 사내 구성원 앞에서 내용물이 개봉되거나, 우연히 빌려 준 노트북에 고이 저장해 놓은 가수의 사진 폴더가 동료에게 발각되면 일코해제를 당하게 됨. 가수의 새 화보 발표일에 같은 사무실로 똑같은 크기와 형태의 택배가 일제히 배달되면서 여러 구성원이 동반 일코해제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 일코해제 경험을 기술한 ‘강제 일코해제 후기’ 같은 글은 흥미로운 콘텐츠로 사랑받음. (예문: 나 오늘 엄마한테 일코해제. TV에 나온 XX 얘기하다 낼모레 걔 생일인 거까지 무의식중에 말함. ㅠㅠ)

짤방=짤림(잘림) 방지의 준말. 팬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며 자신의 글을 자르지(안 읽고 건너뛰지) 못하도록 시선 끌기 용도로 첨부하는 사진이나 영상.

악개=악성 개인 팬의 준말. 아이돌 그룹 멤버 중 유독 한 멤버에만 열광하는 팬을 그룹 전체를 사랑하는 팬이 얕잡아 이르는 말. 그룹은 물론 팬덤의 안녕에도 해악을 끼치는 이들로 간주돼 배척되기도. (예문: 악개들 고나리(관리)하기도 지쳤다.)

입구=특정 가수에게 반해 팬덤과 팬질의 세계로 들어서게 만든 계기나 순간. (예문: A-너는 입구가 뭐야? B-나? 2013년 7월 6일 음중(MBC TV ‘쇼! 음악중심’))

 

출구=특정 가수에게 실망해 팬덤에서 나가게 된 계기나 순간. 가수의 열애설은 대표적인 출구. (예문: 출구 제대로 열어 주네.)

<격언>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한번 팬질의 재미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음. 팬질을 쉬거나 좋아하는 가수를 갈아타긴 하지만 결코 팬질을 멈추지는 못한다는 뜻. ‘입구는 가수의 매력이지만 정작 팬이 중독되는 대상은 팬질 그 자체’라는 교훈이 담긴 ‘격언’.

임희윤·구가인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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