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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자유주의가 이 시대의 진보'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8
조회수
4,635
첨부파일
-

'자유주의가 이 시대의 진보'

중앙일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면의 1단기사입니다.1면1단| 기사입력 2013-07-06 00:59 | 최종수정 2013-07-06 06:45 기사원문
홀대받던 자유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자유주의를 반공 이데올로기나 시장만능주의와 동일시하며 터무니없이 폄하하곤 했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최장집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이 '진보적 자유주의' 깃발을 들어올리면서부터다. 이에 앞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창한 바 있고, 이근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초대 정책위원장은 '상생적 자유주의'를 전파해 왔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같은가 다른가. 중도 진보의 관점인 최장집, 중도 보수의 시각인 박세일은 자유주의라는 공통분모 아래 만날 수 있을까. 자유주의 논쟁을 시작한다. 첫 순서는 자유주의 재평가의 불씨를 던진 최 이사장이다. “자유주의가 이 시대의 진보”라고 했다.

 

 

자유주의 이론가, 한국에 누가 있나

중앙일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5면의 1단기사입니다.15면1단| 기사입력 2013-07-06 00:38 | 최종수정 2013-07-06 06:43 기사원문
 

이근식 교수는 '상생적 자유주의'

박세일은 '공동체 자유주의' 주창

경실련 창립 멤버로 시민운동 주도

자유주의 담론의 흐름을 추적할 때 이근식(66)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와 박세일(65)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1989년 출범해 90년 초반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약칭 경실련) 창립의 핵심 멤버라는 공통점이 있다. 94년 등장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민중주의 요소를 강화하며 시민운동의 중심 자리를 차지해 가면서 경실련이란 이름은 다소 잊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실련 출신의 주요 이론가들이 90년대 후반부터 제기해온 자유주의 이념은 시간의 흐름에도 퇴색하지 않고 있다.

 이근식 교수는 경실련 초대 정책위원장과 공동대표를 거치며 '자유주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99년 『자유주의 사회경제사상』을, 2005년 『자유와 상생』, 2006년 『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 등을 펴내며 서양 자유주의 사상을 중도적 관점에서 전파하고 있다. 이근식 교수는 자신의 이론을 '상생적 자유주의'로 부른다. 좌파와 우파의 장점을 결합해 중도적 상생을 모색해온 그의 작업은 우리 사회에서 선구적 시도였고 일종의 '진보적 자유주의'로도 분류할 수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박세일 이사장은 '공동체 자유주의' 이론 주창자다. 경실련 정책위의장과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을 거쳤다. 2006년 『대한민국의 선진화 전략』을 펴내며 이명박정부가 등장하는 데 새로운 우파의 이념적 뒷받침을 했던 그가 2008년 내놓은 책이 『공동체 자유주의』다.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기본으로 하되 평등과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파의 관심권에선 비교적 떨어져 있던 공동체적 가치와 남북한 통일의 대안까지 모색할 것을 요청한 박세일 이사장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그의 정치 활동과 맞물려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 위에 최장집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놓여 있다. 최장집 이사장 자신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진보적 관점에서 조명한 대표적 이론가로 활동해온 데다가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행보와 맞물려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있다.

 중도 우파적 자유주의를 주창한 박세일과 중도 좌파적 자유주의를 제기한 최장집. 두 사람은 자유주의라는 공통분모 아래 만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에 대해 최장집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만나야죠. 친구이기도 하고 안 만날 일은 없으니까. 내가 요즘 새로운 일(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이사장)을 하다 보니 생활 리듬이 바빠졌는데 좀 자리가 잡히면 만나려 합니다.”

 이들보다 훨씬 앞서 서양의 자유주의가 한국에 도입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후반 개화파 지식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서양 근대문명을 대표하는 이념으로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조선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서둘러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 자유주의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이념의 한 축이었으며, 무엇보다 해방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이 내세운 기본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였고, 나아가 반독재 민주화운동에도 자유주의 이념이 주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아직 이 같은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에 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자유주의 논쟁 <1> 최장집 이사장의 '진보적 자유주의'

중앙일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4면의 TOP기사입니다.14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4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3-07-06 00:37 | 최종수정 2013-07-06 06:43 기사원문
'내 머릿속 자유주의는 진보 가치 포괄 … 공존, 법의 지배, 시빌리티가 핵심가치"

새로운 진보의 이념으로 자유주의를 내세운 최장집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 안철수 의원의 전략적 파트너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그의 발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낯선 용어다.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을 지탱하는 정체성의 뼈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앞에 붙은 자유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크게 주목하지 않은 채 한국의 현대사는 흘러왔다. 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 지식인조차 자유주의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이해보다는 대개 '자유주의=반공 이데올로기'라고 단칼에 폄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70) 이사장이 새 정치를 위한 이념으로 지난 6월 19일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깃발을 치켜든 이후 나온 각계의 반응들도 대개 비슷했다. 대부분 자유주의가 진보적이냐 아니냐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었다.

 최 이사장은 고려대 정외과 교수를 지내던 시절부터 시작해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담론을 주도해온 대표적 진보 인사다. 그런 인물이 자유주의를 전면에 끌어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국 정치사상사에서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데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 주목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자유주의에 대해 냉소적이다.

 안철수 의원의 전략적 파트너로 정치권의 전면에 나선 최 이사장의 '자유주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그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1987년 6월항쟁 이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관련 담론을 주도해온 이가 최 이사장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민주주의의 공고한 발전은 정당 시스템의 정상화에 있음을 그는 줄곧 강조해오곤 했었다. 22일 광화문 연구실에서 최 이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자유주의”라며 “자유주의가 이 시대의 진보”라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된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진보적 자유주의'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 다른 이도 아닌 최장집 이사장이 자유주의를 내세웠다는 사실 그 자체의 의미가 크다고 보는데.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독재에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민주주의는 현재 정착이 된 이념이지만 자유주의는 정착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 분단국가는 자유주의 기치를 내걸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건국을 주도했던 보수 세력들은 자유주의를 냉전 체제 유지를 위한 이념으로 이용했던 것이지 진정한 자유주의를 가져온 게 아니었다. 반대로 진보 쪽에서는 자유주의를 보수적인 냉전 반공주의 이념으로만 이해하면서 수용하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양쪽으로부터 홀대받았다. 냉전 시기에 자유주의는 샌드위치 이념이었다.”

 - 산업화 과정에는 어땠나.

 “60~70년대 권위주의적인 국가중심 산업화가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됐다. 서구에서 자유주의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자율시장 원리와 접목해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자유주의가 국가주의적 이념으로 수용됐다. 이때도 진보 지식인들은 자유주의를 보수의 이념으로 생각하며 거부했다.”

 - 민주화 이후 좀 달라지지 않았나.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도입됐다. 기존 보수적인 경제를 추구했던 사회 세력들이 이제 신자유주의·뉴라이트를 내세웠다.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연결되었고 이명박정부 때까지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민주화운동을 할 때도 진보 진영의 민중주의적 흐름에서 자유주의는 생소했다. 민주화 이후 진보 세력은 마르크시즘이나 서유럽의 복지체제인 사회민주주의를 수용했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환경이 계속된 것이다.”

 - 2013년 상황은 뭐가 달라졌나.

 “이제 자유주의가 긍정적·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평등주의 가치가 퍼지고 경제발전이 되었다. 국가 권위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거나 개인이 국가 목표의 역군으로 동원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됐다. 발전의 산물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경제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경제발전 국가의 대열에 참여했다. 자유주의를 진지하게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 기존의 진보 진영에선 자유주의를 수용할 준비가 덜된 것 아닌가.

 “진보 진영에는 여전히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자유주의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경향도 있다. 국가의 과도한 중심성을 견제하면서 개인 자율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가치가 바로 자유주의다. 개인·시민사회가 더 강해져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정당도 발전한다.”

 - 한국은 보수든 진보든 집단 의식이 강한 경향을 보인다.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서구에서처럼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집단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었던 것은 환경적 조건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가주의 가치관이 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 공산주의와 경쟁하는 냉전시기였고 국가가 중심이 돼 경제를 발전시켜야 했 다. 그런데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다원주의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민주화가 됐으면 개인주의와 이익집단도 강화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경향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개인 연구실에서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최장집 이사장. -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과제가 바로 자유주의라고 말하는 듯하다.

 “내가 하려던 말이다. 진보냐 보수냐라는 구분은 해방 후 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립이 정치의 중심축이 됐다. 이것이 변할 때다. 이제는 민주냐 반민주냐를 두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민주주의를 만드느냐가 과제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는 내용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 중 형성됐던 진보·보수 이념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금 큰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됐다. 진보와 보수가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볼 때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이다. 어떻게 자유주의의 내용을 채우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 내가 머릿속에 두고 있는 자유주의는 진보의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

 - 한국 현실에서 의미 있게 발전시킬 자유주의 요소는 뭐라고 보는가.

 “내가 보는 자유주의 가치는 세 가지다. 첫째, 공존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개인이나 사회 집단이라 해도 공존할 수 있는 관용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선악으로 양분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모든 사회·정치에 확산돼 있다. 상호성이 필요하다. 둘째, 절차적 정당성이 존중받아야 한다. 상대를 인정해서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가는 절차의 중요성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의 관점이 팽배했다. 자유주의에선 법의 지배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셋째, 시빌리티(civility:예절 혹은 예의)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말과 언행이 너무 거칠고 살벌하다. 이성적 토의를 통해 타협하고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풍토를 만들지 못했다. 자유주의는 이런 것들을 진작하는 가치다.”

 - 자유주의 깃발 아래 기존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새롭게 헤쳐 모일 수 있을까.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념적으로 소통하고 뭔가 의미있는 정치적 가치를 끌어낼 수는 있다고는 본다. 경제민주화·복지 문제와 남북 문제는 한국 사회 갈등의 두 축이다. 이런 문제를 지금까지와 달리 자유주의 이념의 틀을 통해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앞으로 구체적인 과제라고 본다.”

 - 자유주의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토대를 이루는 사상이라고 봐도 되나.

 "서양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으로 출발했다. 인권과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게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전제 군주에 대응했고, 근대화의 중심이었다. 자유주의 이념 위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주의는 확실하게 진보의 이념이다. 한국에서 진보는 민주주의가 이끌었다. 민주화 되고 난 뒤에 자유주의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한국에선 민주주의를 하고 난 뒤에 '민주주의만 해서는 한계가 많구나' '어떤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에서 나온 거다. 서양에서는 자유주의 토대 위에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면 한국에서는 반대다.”


 
 - 대한민국 헌법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다. 그에 앞서 구한말 개화파들이 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자유주의 이념이 작용한 흐름을 보면 민주화 운동 이전의 자유주의 역사도 함께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일리가 있다. 그런데 구한말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생각한 자유주의, 해방 직후까지 이어진 자유주의는 사회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식인 근대화 운동가들이 서양의 진보적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를 한국 사회에서 가져 오려는 운동이었다. 서양에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이 만들어낸 부르주아지라는 신흥 중산층 계층의 이념이다. 한국은 그런 기반이 없이 서양의 선진적인 이념이라서 수용한다는 생각이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은 구체적인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 안철수 의원과 함께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밖에서 훈수 두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구체적인 한 정치인을 돕는 것보다 당파성을 초월해 얘기하는 게 좋지 않았느냐는 얘긴데 그러면 수월했을 거다. 그러나 학자로 말하는 게 좋기도 하지만 정치현실에서는 직접적인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다. 정치 현상은 양면적이다. 뭔가를 직접 하려면 당파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는 아직 시험받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존 한국 정치와 다른 경로를 통해 출현한 인물이다. 안철수가 잘하면 보수·진보로 양극화된 정치 성향을 바꾸는 데 충격을 줄 수 있다. 정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 제3의 정당이 성공한 예가 별로 없는데, 가능성을 얼마나 보나.

 “정치인으로 안철수 의원이 하기 나름이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정치 플레이어로서 안착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 사회는 양당 체제를 떠받치는 제도가 공고하다. 그럼에도 과거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당 지지가 옛날에는 대를 이어 지속됐고, 당원 비율도 높았지만 지금은 변했다. 실제 새 정당들이 쉽게 나타나고 기존의 정당들이 허약해졌다. 유럽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정당 구조와 이념을 바꾸자는 요구가 나온다. 제3당에 대한 전망은 유동적이다. 잘 안 되리란 보장도 없다. 고착 상태에 빠진 민주당을 자극해 민주당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 국정원의 선거 개입 여부,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 같은 이슈에서 제3의 길이 잘 보이나.

 “이 문제를 볼 때는 절차적 정당성, 즉 법의 문제가 중요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명백히 잘못된 거다. 민주주의의 기본 규범에 배치하는 행동이다. 이것의 정치적인 성격은 중요하고 크지만 이슈 자체가 새롭거나 큰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은 법으로 처리하면 되는 거고, 박근혜정부가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처리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NLL도 마찬가지다. 대선 시기에 남북 정상회담 발언을 이슈화하는 것은 법이 지켜지지 않은 거다. 외교가 감정적으로 다뤄지면 앞으로 남북 관계를 어떻게 외교적으로 풀겠나.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감정적인 격돌이다. 이런 이슈들은 빨리 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

 - 문서에 담긴 내용의 문제를 더 크게 보는 시각도 있다.

 "내용은 내용대로 따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는 거다. 법을 지키지 않고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잘못이다. 어쨌든 법적으로 빨리 처리하고 나서 경제민주화나 남북문제 등을 풀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소모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빨리 해결해야 한다.”

 - 손학규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손잡을 가능성은.

"잘 모르겠다. 아는 바가 없어서 말을 하기가 어렵다.”(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한나라당 소속이던 2000년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을 펴낸 바 있고, 2007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후 최장집 이사장이 그의 후원회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 진보적 자유주의를 사회민주주의와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거기(사회민주주의)에 근거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 계열에서 해야 할 과제이고 영역이다.”

 - 표현을 다르게 하는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내가 연구소 개소식을 하면서 말했는데 정당 정치인들이 이념을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치 문화는 이념을 정식적으로 이야기 안 한다. 이념 말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은 논쟁이 되기 때문이다. 좌나 우로 분류되면 사전에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념을 말할 수 없는 풍토가 있다. 이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정치 윤리에 어긋난다. 정치인들은 자기가 뭘 하느냐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

 - 최 이사장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제기하자 많은 이들이 '진보적'이라는 수식어에만 주목하는 듯하다.

 “진보적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80년 이후뿐만 아니라 지금의 경제민주화·노동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한 것이다.”

글=배영대·이상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영대.이상화.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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