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선의 심리학] 화날때 심호흡 3번… ‘우리’ 아닌 타인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8면5단| 기사입력 2013-07-06 04:02
전문가들은 억압된 사람들의 감정을 풀기 위해서는 사회와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화여대 양윤(심리학) 교수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욕구가 강해지고 남과 비교하는 경향도 커지는데 이것이 스트레스와 불만을 증폭시킨다”며 “축적된 불만과 억압은 적절한 방법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사회적으로는 스트레스 배출구 마련을, 개인적 차원에서는 감정 조절 능력을 배양시켜야 한다고 했다. 배출구란 개인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흘려보내는 장치를 말한다. 눈에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공부만이 학생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공부 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회사나 공원 등에 헬스장이나 운동기구를 더 많이 설치하는 것도 배출구가 될 수 있다.
양 교수는 “사람들 안에 쌓인 욕구와 불만은 억누른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는 억눌림을 적절히 해소하는 장치를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감정 조절 능력 조절 방법으로 심호흡을 추천했다. 양 교수는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서너 번의 심호흡만으로도 내면의 감정은 다스려진다”고 말했다.
이른바 ‘공감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람들이 타인의 눈을 피하게 된 것은 정서적 공감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세대 권수영 교수는 “한국인들은 배타적 성향이 워낙 강해 자신이 속해있는 영역의 사람들에게만 시선을 보낼 뿐 타인을 향한 응시에는 각박한 편”이라며 “학연이나 지연 등을 넘어 타인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의 입장에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늘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습관을 가지면 상대편뿐 아니라 스스로도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공감능력’이란 타인의 고통에도 함께 아파하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힘이다. 권 교수는 “공감 능력 배양을 위해서는 가정의 역할의 중요하다”며 “부모들은 자녀와의 대화, 솔직한 감정표출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불편한 시선의 심리학] 비뚠 사회 비뚠 심리… 눈길 속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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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13-07-06 04:02
지난달 21일 오전 2시.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걸어가던 임모(30)씨는 마주오던 대학생 김모(20)씨가 자신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런 폭행에 콧등이 붓고 입술이 터진 김씨는 경찰에서 “임씨 일행 쪽으로 그냥 얼굴만 돌렸을 뿐인데 갑자기 임씨가 ‘뭘 쳐다보냐’며 시비를 걸고 때렸다”고 진술했다. 서초경찰서는 임씨와 친구 3명을 특수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서울 31개 경찰서의 형사계 사무실은 매일 밤 이런 사건을 처리하느라 시끌벅적하다. 단순히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고 주먹이 오가다 경찰서에 가서야 상황이 정리된다. 자칫 잘못했다간 뜻하지 않은 다툼에 휘말리게 되는 ‘시선 처리’. 현대인의 무시 못할 골칫거리가 됐다.
이 같은 폭행 사건은 대부분 벌금형 약식명령으로 끝나지만, 간혹 정식 재판에 넘겨지기도 한다. 지난 2월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동훈)는 술집에서 옆 테이블 손님을 흉기로 살해한 조모(27)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조씨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오산의 식당에서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하다 옆 테이블 김모(32)씨가 자신을 ‘째려본다’며 주방의 흉기를 가져다 김씨를 살해했다.
‘쳐다보다’는 ‘위를 향해 올려 보거나 얼굴을 들어 바로 보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보다 강하고 부정적인 ‘째려보다’는 ‘못마땅해 매서운 눈초리로 흘겨보다’란 뜻이다. 폭행까지 이어지려면 적어도 ‘째려볼’ 정도는 돼야 할 텐데 실제 폭행당한 사람들은 “째려보기는커녕 쳐다본 적도 없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7년 서울 동대문 부근 거리에서 한 남성이 “왜 째려보냐”며 다른 남성의 얼굴에 화분을 집어던져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건 현장의 CCTV 화면을 분석한 경찰은 깜짝 놀랐다. 피해자는 그냥 얼굴을 옆으로 ‘돌렸을’ 뿐 그 남성을 쳐다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이렇게 분노하는 걸까. 사회심리학자들은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1초도 안 돼 눈길을 피하는 것이 보통 한국인이 보이는 반응”이라고 말한다. 남의 시선을 받으면 속마음을 들키거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느낌 때문이라는데,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돌리는 대신 공격을 감행한다.
이때 공격성을 배가시키는 결정적 요소가 술이다. 쳐다본다는 이유로 발생한 폭행 사건에는 거의 예외 없이 술이 등장한다. 서울 강남경찰서 박미옥 강력계장은 “억눌린 심리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쳐다본다고 맞은 이들은 이렇게 폭발한 분노에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학은 이런 분노 표출을 ‘투사심리’라고 부른다. 자신의 바람직스럽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 고통스러운 충동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째려본다고 싸우는 건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공간이 침범당하는 데서 오는 저항과 방어의 산물”이라며 “주로 본인의 감정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충동 조절이 부족해 생긴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여기에 술이 추가될 경우 대화나 말보다는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슬프게도 현재 한국사회는 쳐다본다고 주먹이 나가는 사람만 탓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됐다. 포털사이트에선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을 때 시선이 불편하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보통 사람도 남의 시선을 버거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은 마주보기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대표적 공간이다. 마주 앉은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눈은 애써 다른 곳을 응시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다. 요즘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아 남의 시선과 소리를 차단한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말에는 ‘보다’로 끝나는 어휘가 많다. 각각 뜻도 다르다. ‘째려보다’ ‘쳐다보다’ 외에도 ‘흘겨보다’ ‘노려보다’ ‘쏘아보다’ ‘건너다보다’ ‘지켜보다’ ‘둘러보다’ 등이 있다. 이런 어휘의 다양함은 시선에 무척 민감한 민족임을 보여준다. 연세대 권수영(상담코칭학) 교수는 “누군가를 보는 행위는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다”며 “낯선 사람이 쳐다보면 눈인사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를 반항과 저항의 표시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눈은 좋아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을 때 동공이 팽창한다. 불쾌하거나 놀라거나 위협받는 부정적 상황에서는 반대로 동공이 축소된다. 전문가들은 동공 팽창이 많아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여유와 용서의 ‘너그러운 시선’이 사회를 밝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동부지법은 자신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칼을 들이대고 위협한 A씨(32)에 대해 이달 중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할 예정이다. 9명 배심원은 A씨에게 과연 어떤 ‘시선’을 보낼까. 쏘아볼까, 노려볼까, 아니면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볼까.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