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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읽는가, 하루키 열풍을 읽는가

작성자
박두규
작성일
2013.07.08
조회수
4,515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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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읽는가, 하루키 열풍을 읽는가

경향신문| 기사입력 2013-07-06 16:53 기사원문
 
7월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은 시민들이 이날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김정근 기자

·평일 낮시간 대형서점에서 독자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작가 하루키. 1990년대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고정팬층은 견고하다. 그의 작품을 둘러싼 독자들의 반응은 늘 뜨겁고 문학계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30대 독자들이 이끈다는 ‘하루키 열풍’을 들여다 본다.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계산대가 네 곳 있다. 음반매장 맞은편 잡지 매장에 하나, 사회과학·자연과학·경영경제서적 매장에 하나, 외국어서적 매장에 하나, 그리고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사회서적 매장에 하나가 있다. 위치상 접근성이 가장 좋은 인문사회서적 매장 계산대에 가장 많은 고객들이 몰린다.

월요일이었던 7월 1일 정오, 이곳에서 희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인문사회서적 매장 계산대 직원 네 명 앞으로 고객들이 네 개의 긴 줄을 이뤘다. 정문 바로 옆 고객안내 데스크 앞에도 긴 줄이 뻗어 있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거대한 행렬이었다. 방송사 카메라와 취재진까지 몰려 교보문고는 북새통을 이뤘다.

전작 <1Q84>보다 예약 판매량 3배

독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책을 들고 서 있었다. 흰색 표지에 작가 이름과 제목이 세로로 인쇄돼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날 한국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 장편소설이다. 이날 정각 12시부터 출판사(민음사)와 교보문고가 시작한 신작 판매 이벤트에서 이 책은 10분 만에 100부가 팔렸고, 하루 만에 5700부가 팔렸다. 6월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예약판매를 진행한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4년 전 화제를 모았던 전작 <1Q84>에 비해 예약판매량이 3배가량 앞선다고 밝혔다.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평일 낮시간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서점에 독자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작가는 없다. 최근 비슷한 사례는 지난 2009년 9월 9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팝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이라는 비틀스의 리마스터 앨범을 판매하던 날의 풍경뿐이다. 이날 교보문고 풍경은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국내 출간 이후 1990년대를 정점으로 단단하게 형성된 하루키의 고정팬층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응집력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줬다.

최원호 인터넷서점 알라딘 해외소설 MD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조앤 K 롤링이 마케팅 파워에서 하루키에 비견할 수 있을 텐데, 롤링은 <해리 포터>의 경우에만 그렇다. 대중음악의 스타와 비교하자면 마이클 잭슨 정도가 아닐까”라며 “<상실의 시대> 이후에 소개된 하루키 소설들은 설정 자체가 환상적인 성격이 있어서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하루키의 출세작인 <상실의 시대>처럼 드라마가 있고 대중성이 있는 작품이어서 이전의 하루키 소설과 거리가 멀어졌던 독자들도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직장인 신성현씨(32)는 1일 새벽부터 줄을 섰다. 6시30분 교보문고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신씨는 선착순 10명에게만 판매하는 저자 친필 서명본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일반 독자에게 하루키의 대명사인 <상실의 시대>는 1989년에 정식으로 출간됐다. 한국 문단에서는 1992년 출간된 박이문 작가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이인화 작가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하루키 표절 논란에 휘말리며 포스트모더니즘 논쟁까지 불러일으켰지만, <상실의 시대>가 정작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10만부가 팔린 1994년의 일이다.

“장편보다 단편, 단편보다 에세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남다른 취향’을 문화적 세련의 징표로 삼았던 ‘신세대’ 문화는 하루키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찾아냈다. <상실의 시대>와 하루키는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개인’과 ‘문화적 취향’이 들어섰던 1990년대 청년들에게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2000년에는 광고에까지 등장했다. 기차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 여성에게 남자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노르웨이 숲에는 가보셨나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현대전자 휴대전화 광고였다. <상실의 시대>는 이 해에 베스트셀러 정상을 차지했다. 신성현씨는 이 광고가 등장한 2000년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상실의 시대>나 하루키에 대해 잘 몰랐다. 그는 2004년 <해변의 카프카>(2003년 국내 출간)를 읽고 하루키의 팬이 됐다. “교보문고에 진열돼 있던 책을 파란색 표지에 이끌려 샀다. ‘하루키’라는 이름이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키의 팬들 중에는 “(하루키의 매력은) 장편보다는 단편, 단편보다는 에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신씨는 “제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장편에서 받은 모호한 느낌과 비교해 단편이나 에세이는 내용이 명확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팬들에게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의 작업방식, 취향, 일상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다.

하루키 붐은 하루키가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미국 작가들의 국내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위대한 개츠비>다. 2000년대 이후 가장 주목받는 평론가 중 한 사람인 신형철 평론가는 <느낌의 공동체>(2011)에서 이렇게 썼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영문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독자들 중에서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덕분에 비로소 이 작품을 손에 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3장에 이런 대목이 있지요. 갓 대학에 입학한 주인공이 교정에서 그가 그토록 아껴 마지않는 피츠제럴드의 저 책을 세 번째 다시 읽고 있을 때, 선배 나가사와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군.’ 이런 문장을 읽고 당장 <위대한 개츠비>를 사러 가지 않고 버티기란 어려운 노릇입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젊은 작가들의 참신함, 그 없이 가능했을까”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 트루먼 커포티,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 작가들의 열렬한 팬인데, 이들 작가의 작품이 한국 독서시장에서 작게나마 일정한 존재감을 지니게 된 데는 하루키 팬층의 존재가 한몫 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알라딘의 집계에 따르면, 하루키 신작 구매자의 절반(예스24 55.6%, 알라딘 52.6%)이 30대다. 예스24 기준으로는 그 중에서도 여성 구매층이 남성보다 약 10%포인트 더 많았다. 7월 1일 1시 교보문고에서 열린 하루키 신작 낭독회에 ‘독자 낭독자’로 참여한 천현정씨(33·여)는 고등학생이던 1997년에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하루키와 만났다. 첫인상은 하루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성에 대한 과감한 묘사’가 “고교생이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좀 야하다”는 것이었다. 미야베 미유키, 마루야마 겐지, 나쓰메 소세키 등 일본 작가들을 좋아한다는 천씨가 느끼는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보편적인 상황을 다른 소설가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7월 1일 오후 교보문고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원식 기자

흥미로운 것은 하루키만큼 독자의 반응과 문학계의 반응이 큰 격차를 보이는 작가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하루키라는 이름 주위에는 독자들의 뜨거움과 문학계의 차가움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해석상의 대립지대가 존재한다. 독자와 문학계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상은 1990년대부터 일관되게 관찰되는 모습이다. 1992년에는 한국 작가들 중 일부가 하루키 문학의 무국적성을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1998년 <문학과 인식> 가을호에서 문학평론가 이경훈 교수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류 등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을 편집증적이고 물신숭배적으로 숭상하고 즐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루키 소설의 문학성에 대한 폄훼는 비단 한국 문학계만의 사정은 아니었다. 199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주최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한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은 “(안보투쟁으로 사회가 들끓던 일본의 1960년을) 아무것도 없었던 해로 치부하는 것은 의도적인 정치적 무관심이다. 한국에서 하루키가 열렬히 읽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06년 9월 교수신문이 한국의 젊은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하루키는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가장 과대평가받는 작가’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조영일 평론가는 2011년 9월 교수신문에 쓴 글에서 “(작가들은) 개인적으로는 (하루키를) 즐겨 읽지만, 표가 나게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분위기 같은 게 존재하는 셈이다. 즉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수준 낮음’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한국문학의 자기분열”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높은 평가를 받는 젊은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참신함’, ‘새로움’, ‘세련됨’, 그리고 ‘약간의 도덕적 의무감’ 등은 어떤 의미에서 하루키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들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어쩌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키에 감염됐는데, 이제껏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즉 철저히 그것을 억압해온 것이다.”

1990년대에 하루키 문학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소설, 성적 코드를 포함하고 있는 대중문학으로 평가됐다. 비평적으로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견해가 문단의 지배적 분위기였다. 2000년대 이후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하루키에 대한 문학계의 무관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키에 대한 진지한 비평적 논의가 멈춰선 자리에서 3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하루키의 진화를 확인하고 있는 것은 독자들인 듯하다. 고경태씨(29)는 중학교 3학년 때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좋아하던 여학생이 그 책을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표지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내용이 궁금해서 읽었다.”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고씨는 강한 흡인력을 느꼈다고 했다. 하루키만의 문장력과 수사법에 매료된 그는 그 이후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 됐다. “하루키의 책은 빌려서 읽은 적이 없다. 그의 책만은 반드시 사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 1일 직장에는 휴가를 내고 교보문고에 새벽부터 줄을 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장편, 단편, 에세이를 포함해 하루키의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그는 하루키가 쓴 인상적인 문장들을 거의 그대로 외우고, 하루키에 대한 비평도 빠짐없이 찾아 읽는다. “하루키 작품의 선인세가 10억원을 넘어가는 게 정상이냐라거나 작품이 다소 동어반복적이라고 하는 비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어느 유명한 평론가가 하루키 작품을 ‘쓰레기’라고 폄훼한 건 의외였다. 기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차이를 들어 작품의 질까지 운운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본다. 하루키가 작중에서 특정한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걸 허세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하루키가 언급한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따로 공부하면서 전에는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든다.”

묘사에 새로움 없어… 20대 독자 감소

하루키는 일상의 소소한 상처를 지탱해주는 감성적 버팀목이자 같은 작가의 작품세계에 깊이 공감한다는 이유만으로 성별·직업·연령을 뛰어넘어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게 해준 통로였다고 고경태씨는 말했다. 그가 보기에 올해 예순셋이 된 작가 하루키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루키는 1995년 고베 대지진과 사린가스 테러사건 이후 동시대 일본의 현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사린가스 테러에서 착상을 얻은 <1Q84>에서는 스토리텔링이나 구성력에서도 압도적인 흡입력을 보여줬다. 이번 신작은 스케일은 작아졌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깊어진 것 같다.”

하루키 고정팬층이 앞으로도 두껍게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알라딘 집계에 따르면 사전예약 구매자 연령대는 4년 전 <1Q84> 때의 34.5세에서 36.6세로 높아졌다. 1990년대에 20대였던 40대 구매율은 30대의 절반 수준이다. ‘하루키 세대’로 불리기도 했던 40대가 퇴장하고 30대가 하루키 열풍을 견인하고 있는 셈인데, 그 뒤를 받쳐줄 20대 구매율은 4년 전에 비해 12%포인트 낮아졌다. 직장인 김정아씨(28·여)는 ‘하루키 스타일’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데서 이유를 찾았다. “하루키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악을 듣고 무슨 옷을 입는지 상세하게 묘사하는데, 그런 게 이젠 우리 일상이기 때문에 그다지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에 대한 묘사도 요즘 애들이 보면 오글거리는 수준이다. 하루키 소설의 개인주의, 서구취향, 음식, 패션 등이 우리 세대에게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하루키의 호소력이 어느날 급작스럽게 소멸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는 “하루키 소설은 메트로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도시인들의 내적 공허감과 소통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건 보편적인 주제이고 현대적인 주제”라며 “지난해 중국에서 <상실의 시대>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1Q84>보다 20년 전에 나온 소설인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중국의 자본주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하루키의 도시적 감수성이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루키 열풍은 한국 문학의 상대적 빈곤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하루키를 비판할 수 있지만 거꾸로 왜 한국 작가들이 하루키를 극복하지 못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루키는 막상 읽어보면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새로운 작가층은 얇고 기존 소설 독자들은 고령화로 떨어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키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그의 새 소설에 급격하게 쏠리고 있는 건 아닐까.”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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