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칼럼] 조용필, 신화, 이효리가 보여준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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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칼럼] 조용필, 신화, 이효리가 보여준 것| 기사입력 2013-07-03 15:46
조용필, 신화, 이효리는 올해 상반기 가요계에서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남겼다. 조용필은 10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고, 신화는 데뷔 15년차의 아이돌 그룹이었다. 이효리는 지난 앨범 활동 중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 한 뒤 3년만에 새 앨범을 내놓았다. 조용필은 센세이션에 가까운 화제를 낳았고, 신화는 각종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이효리 역시 첫 싱글 ‘미스코리아’가 발표와 동시에 음원차트 1위를 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는 제각각일 것이다. 다만 예순이 넘은 뮤지션이 경쾌한 모던 록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섹시한 여가수 중 한명이 외모 지상주의에 비판적인 노래를 부른 것도 마찬가지다. 신화는 역동적인 군무대신 지극히 정적이고 관능적인 안무를 선보였다. 단지 콘셉트의 변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용필이 ‘Bounce’를 부르기 전까지는 10년의 시간이 있었다. ‘Bounce’ 발표 전에는 기자회견, 쇼케이스, 뮤직비디오 발표 등의 홍보를 펼치며 자신의 변화를 행동으로도 보여줬다. 이효리의 지난 앨범과 새 앨범 사이에는 채식, 봉사활동, 유기견 보호 등의 이슈가 있었다. 신화의 무대는 사실상 15년 경력이 낳은 관록 그 자체가 콘셉트였다. 그들은 오락 프로그램도 모두 함께 출연하며 그룹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KBS <해피투게더>에서는 아예 신화와 팬의 15년이 소재였다. 그들은 대중이 알고 있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대중이 흥미로워할 맥락을 만들어냈다. 음악+맥락=이야기 음악은 가수의 지난 세월이 가진 맥락으로부터 나오고, 맥락이 낳은 이야기는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결정한다. 리얼리티 쇼 출신들의 활약은 우연이 아니다. 로이킴과 김예림, 이하이는 모두 성공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박명수는 MBC <무한도전>에서 발표한 ‘강북 멋쟁이’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강북멋쟁이’에 대한 호오는 제각각일 것이다. 다만, ‘강북멋쟁이’가 <무한도전>을 통해 만드는 과정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발표 당시의 인기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조용필, 신화, 이효리는 세월이 만들어낸 행동과 선택을 통해 진정성을 확보하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리얼리티 쇼는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노래에 자세한 맥락을 부여한다. 많은 사람이 로이킴과 김예림의 성장사와 캐릭터를, ‘강북멋쟁이’의 탄생 비화를 안다. 그 맥락과 이야기가 음악에 입혀지면서, 그들의 노래는 다른 곡들에 비해 큰 경쟁력을 갖는다.
최근 아이돌 그룹이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얻기 어려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은 리얼리티 쇼 출신처럼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은 최소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해야 확실한 성장세를 보여준다. EXO는 데뷔 1년이 지나 발표한 새 앨범의 판매량이 30만장을 돌파할 만큼 팬덤이 늘었다. 다만 EXO는 데뷔 당시에 멤버들에게 판타지만화와 같은 설정을 부여했다. 데뷔 전 100일동안 다양한 티저를 만들어 홍보했다. 리얼리티 쇼에 출연시키지 않는 선 안에서, 소비자가 좋아할 수 있는 맥락과 이야기를 만든 셈이다. 방탄 소년단 같은 신인 아이돌 그룹은 데뷔 전 블로그를 통해 그들의 제작기를 알리고, 데뷔 직전에는 티저와 뮤직비디오 공개의 단계를 밟아 나간다. 그리고, 강승윤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가수는 다시 자신이 속한 그룹의 멤버들과 함께 또 한 번의 서바이벌 오디션을 할 예정이다. 자신의 팀이 이겨야, 그는 그룹으로도 데뷔할 수 있다. 그의 실질적 데뷔였던 m.net < 슈퍼스타 K >는 거대한 미디어 그룹이 제작했다. 곧 출연할 리얼리티 쇼는 현재의 소속사가 주도할 예정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K팝스타’는 지상파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가 결합한 산물이다. 오랜 경력을 가진 가수만이 할 수 있던 것을 미디어가 하고, 다시 그 노하우를 대형 기획사가 받아들인다. 가수 각각이 가지고 있던 노하우는 그렇게 점점 산업화, 표준화의 과정을 거친다. 올해 상반기는 그 변화의 양상이 대중의 눈에도 확연히 보이던 시절이었다. 백조의 마지막 노래 그래서 조용필, 신화, 이효리의 인상적인 컴백은 그들로서는 대단한 활약이었지만, 산업 전체에서는 일종의 백조의 마지막 노래처럼 보인다. 가수들은 데뷔부터 리얼리티 쇼로, 또는 기획사들이 기획한 맥락을 부여받고 활동한다. . m.net <밴드의 시대>, <쇼 미 더 머니>에는 록과 힙합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출연해 경연을 한다. 작년에는 < TOP밴드 2 >에 수많은 프로 밴드들이 참여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데뷔, 꾸준한 음원 발표와 공연활동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것은 이제 그 자체로 화제가 될 만큼 이례적인 일이 됐다. 올해에는 댄스뿐만 아니라 발라드, 포크, 록도 차트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야기와 맥락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예 차트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 미디어와 자본이 만들어낸다. 그 자체가 나쁜 일이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대중은 점점 음악을 찾아 듣는 대신 들을 이유를 제시하는 음악을 대형 미디어를 통해 듣는다. 그 현상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음악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질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신화’라 불렀던 음악의 어떤 순간들은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만약 지금도 그런 순간을 보고 싶다면, 오히려 웹툰 작가의 성공에서 찾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글. 강명석 (웹진 < ize >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