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년 1953~2013 - 월북·납북 문인이 남긴 유산 ① 현대문학의 한 기둥 월북 문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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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의 연인 백석, 한국 서정시의 학교| 기사입력 2013-07-11 01:00 | 최종수정 2013-07-11 06:36정전 60년 1953~2013 - 월북·납북 문인이 남긴 유산 ① 현대문학의 한 기둥 월북 문인 전문가 16인 설문조사 한국 문학에 영향 끼친 시인 정지용과 함께 1, 2위 꼽혀 소설가는 박태원·이태준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초생달과 박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 이 시에서 제목을 따온 안도현(52)의 시 '초승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는 '당신의 그늘을 표절하려고 나는 밤을 새웠다'란 문장으로 시작된다. 백석(1912~95)을 닮고픈 안 시인뿐만 아니라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를 정점으로 하는 한국 서정시의 맥을 잇는 것으로 평가되는 장석남(48)·문태준(43) 시인도 백석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북한에 머물며 활동한 역사적 제약에도 '한국 서정시의 오래된 학교'라 불릴 만큼 백석의 그늘은 넓고 깊다. 2005년 미당문학상(중앙일보 주최)을 수상한 문태준 시인은 “백석은 궁벽한 곳으로 몰린 삶을 잘 견뎌낸 천재적 시인이었다. 내게 외롭지만 높은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백석의 『사슴』(1936)이 월북·납북 작가의 시집 중 한국 문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시집으로 뽑혔다. 자의든 타의든 북한으로 넘어간 문인들이 우리 문단에 남긴 유산을 되짚기 위해 중앙일보가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 김종회 경희대 교수)와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에 참여한 북한문학 전문가 16명 중 절반(8명)이 백석의 『사슴』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解禁) 조치 이후 관련 문인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척돼 왔지만 그들의 문학적 성취를 설문조사로 평가하기는 처음이다. 하상일 동의대 교수는 “『사슴』은 1930년대 서구적 모더니티의 수용과 토착적 전통주의의 결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시의 근대성을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백석은 서울 성북동에 있던 요정 대원각을 '무소유'의 법정(1932~2010) 스님에게 길상사로 내놓은 김영한(자야·1916~99) 여사와의 각별한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시인 중에는 정지용(1902~50)이 압도적(9명)이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향수' 중)처럼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선보인 정지용은 30년대 당시 '운문은 지용(芝溶·시인 정지용), 산문은 상허(尙虛·이태준의 호)'라는 말이 있을 만큼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정지용은 후진 양성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문예종합지 '문장(文章)'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지훈·박두진·박목월 등 청록파를 등단시켰고, 이들의 시작(詩作)은 한국 시단에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갔다. 윤동주(1917~45)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쓰며 윤동주의 시를 문학적으로 평가한 것도 정지용이었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는 “정지용은 한국 근대시에서 현대시로의 전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했다. 구보(仇甫) 박태원(1910~86)은 '의식의 흐름' 등 모더니즘적인 기법을 도입하며 한국 소설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소설가(7명)란 평가를 받았다. 박태원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최인훈(77)과 주인석(50) 등 후배 소설가에 의해 변용돼 새롭게 태어났다. 박태원은 월북한 뒤에도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남겨 “남북한 문학사에 모두 지분을 가진 작가”(김종회)란 의견도 있었다.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 이태준(1904~56)의 영향도 컸다. 순수문학을 표방한 구인회(九人會)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중앙일보 문예부장으로 일하며 박태원과 이상(1910~37)의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등 한국 현대문학을 위한 토양을 닦았다. 벽초(碧初) 홍명희(1888 ~1968)의 『임꺽정』은 한국 문단에서 대하장편 소설의 계보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임꺽정』은 민족어와 풍속사의 보고인 동시에 리얼리즘 문학의 가능성을 확보해 황석영의 『장길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이 탄생할 수 있는 초석을 놨다”고 말했다. 시인 박세영(5명)과 설정식(3명), 소설가 김남천(3명)과 김사량(3명), 한설야(2명)·안회남(2명) 등은 체제와 이념의 갈등 속에 문학적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작가로 꼽혔다.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역사 속에 묻힌 작가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균형 잡힌 시각과 폭넓은 시야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에 대한 공개와 자료 발굴 ▶남북한 공동 문학 연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설문 응답자(가나다순)=고현철 부산대 교수, 고인환 경희대 교수, 김용희 평택대 교수, 김종회 경희대 교수, 김진희 이화여대 교수, 송승환 시인·문학평론가, 오양호 인천대 명예교수, 오형엽 고려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 이명재 중앙대 명예교수, 이성천 경희대 객원교수, 이재복 한양대 교수, 최동호 고려대 교수, 하상일 동의대 교수,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북한 '애국가' 작사한 박세영, 분단 탓 서정성 저평가| 기사입력 2013-07-11 01:00 | 최종수정 2013-07-11 06:36임화·김기림·한설야·김남천 이념 대립에 남북 모두 외면 분단 이후 한국 문학도 체제와 이념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월북·납북 문인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평가를 덜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문학사의 빈 공간은 일종의 운명과도 같았다. 8·15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북한으로 넘어간 시인 중 가장 조명을 받지 못한 이로는 박세영(1902~89)이 꼽혔다(전문가 응답 5명). 박세영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 계열의 시인이면서도 전통적 서정성을 강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북한 애국가를 작사하고, 1959년 북한에서 공훈작가로 추대되는 등 김일성 체제를 지지했던 정치적 배경 때문에 한국 문단에서 부각되기 어려웠다. 이성천 경희대 객원교수는 “시각의 차이는 있지만 박세영의 작품 세계는 시기별로 사회주의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알려진 설정식(1912∼53)도 문학사에서 소외된 시인으로 꼽혔다.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이념에 치우친 현대사는 설정식의 문학적 삶을 '좌익-우익-좌익-월북-숙청'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의 삶은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진 이념 시대의 도상학”이라고 말했다. 카프의 으뜸가는 공로자인 임화(1908∼53)와 1930년대 한국 현대 시론 형성에 큰 기여를 하며 한국 모더니즘 시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기림(1908~?)은 북한으로 건너간 뒤 남로당 계열로 숙청되면서 남북 문학에서 모두 기피인물이 됐다. 시집 『오랑캐꽃』의 이용악(1914~71)도 백석과 정지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설명이다. 소설가 중에서는 김남천(3명)과 김사량(3명)이 문학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작가로 꼽혔다. 김남천(1911~52)은 문학이론가로 널리 알려진 까닭에 소설가로서의 성과가 묻혔고, 북한에서 미제 스파이로 처형된 것도 남북 모두에서 소외된 이유였다. 김사량(1914~50)은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식민지 시대에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까닭에 되레 연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설야(1900~71)는 월북 뒤 정치적 고위직에 올랐지만 곧 숙청된 뒤 남북 양측에서 외면당했다. 『금수회의록』의 작가인 안국선의 아들 안회남(1909~?)은 1940년대 강제징용 체험을 다룬 소설을 쓰며 한국 문학에 '신변소설'을 생산했다는 평을 받았다. 식민지 반봉건 사회 현실을 밀도 있게 구현한 이기영에 대해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는 “이기영의 '고향'은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중요한 성취를 이룩했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